'경제효과’의 허울과 지방자치의 본질

관리자
발행일 2008.11.13. 조회수 530
칼럼

 소순창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지방자치학회에서 지방행정구역의 개편효과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논문 내용은 “현재 230개의 지방자치단체를 52개로 통합하면 매년 수조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적 효과를 논하면서 적정 통합 자치단체의 수를 52개로 전제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어설픈 셈법이다. 경제적 효과만을 생각한다면 왜 30개는 안 되고, 10개는 안 되는가. 자치단체를 몇 개로 줄이면 몇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것은 경제지상주의적 접근방법이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민주적인 결정절차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왜곡되는 비민주적인 결정에 의해서 손해볼 수 있는 비용이나 지역주민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수조원의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학회 참석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나친 성장 위주의 경제를 추진하는 현 정부에서 ‘5+2 광역경제권’을 제기하더니, 이를 근거로 중앙집권론자들의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이 지방자치의 본질적 가치인 양 주장하는 근거 없고 알량한 숫자놀이에 지역 및 지역주민을 위한 민주적 가치는 외면당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인 ‘민주성’을 외면하고, 오로지 ‘경제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중앙집권화의 논리에 자리를 내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이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대하여 이상하리만큼 협력적이다. 학계나 시민단체가 냉정하고 부정적인 것에 비하면 정치권의 논의는 과열된 모습이다. 왜 유독 지방행정구역 개편 논의에서는 여야가 서로 일치하는가. 그들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같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권은 ‘도’를 폐지하고 시·군을 통합하면 ‘도’의 개념이 희미해져 지역주의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역주의는 단순히 지역적, 공간적 개념이 아니고 역사적, 문화적인 배경에 의해서 지역주민들의 마음에 내면화된 것이다. 공간적 구조의 재배치를 통해서 없어질 리 만무하다. 백보 양보해서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3∼4개 자치단체를 통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통합 자치단체에서 지역주민들의 자기 고향(시·군)에 대한 애정이 새로운 소지역주의로 나타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지내온 주민들이 서로 다른 주민들과 하나 되지 못하고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지역에 따라서 후보자들이 지역주민들을 이간할 것이고, 지역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리하고 차별할 것이다. 또 지역주민들은 지역 내의 혐오시설 및 선호시설을 둘러싸고 대립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용은 그야말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또 이번 지방행정구역의 개편내용은 제도적 보완의 수준이 아니라, 국민투표까지 불사해야 하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더불어 정부에서 ‘시·도’를 없애고 그 위에 국가기관인 ‘행정청’을 두자는 것은 지방자치를 무력화시키려는 ‘과거회귀적인 사고’다.


지방자치를 경제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결국 지방자치를 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과거로의 회귀’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의 중요한 가치인 민주성, 민주적인 절차, 지역주민의 이해관계 보장 등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의 본질적 가치인 민주성과 경제성이 함께 균형적으로 논의되어 합리적인 논의와 대안의 도출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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