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이집트처럼?? 붕괴론 점입가경

관리자
발행일 2011.02.25. 조회수 417
칼럼


김근식 교수(경남대.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던가? 절기는 봄을 향하지만 완연한 봄은 아직 멀어 보인다. 빙하기로 돌아간 듯한 맹추위를 뚫고 입춘이 지났건만 여전히 한반도에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남북관계 냉각기를 넘어 연초 북의 대화 제의로 어렵사리 성사된 예비군사회담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천안함과 연평도를 먼저 다룬 다음에야 이후 회담이 가능하다는 남측의 주장과, 기타 군사적 의제를 천안함 및 연평도와 함께 다루자는 북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결국은 차기 회담 일자도 잡지 못한 채 남북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측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의제의 선후 문제로 본회담을 깨기보다는 어차피 그 의제를 다루기로 한 만큼 본회담을 성사시킨 후 그 자리에서 북측의 시인과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이 누가 봐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측의 시인과 사과가 전제조건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본회담 개최마저 거부하고 만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측이 기존의 천안함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기는 힘들다. 이미 유엔 안보리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대남 검열단 요구에서, 중국에게 설명하면서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천안함과 무관함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터에 이제 와서 자신의 소행을 시인하고 사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시인 요구는 북으로서 수용 불가능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 조건을 본회담 성사의 전제로 고수하는 한, 논리적으로 남북대화는 성사되기 힘든 구조였다.

이를 알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시인 사과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대북 전제조건으로 내걸었고 아예 예비회담에서부터 이에 대한 북측의 굴복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북은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 북이 천안함과 연평도를 의제로 수용하는 양보까지는 가능했지만 천안함 시인 및 사과를 미리 확인하겠다는 남측의 주장에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다. 상대방이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 회담 성사와 연계시킨다면 그것은 결국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진전을 위해 남북대화의 필요성에 동감한다면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면서도 일단 회담은 성사시키고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하면서 대북 조건의 관철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조건은 사실상 회담 '성사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회담 '거부를 위한' 조건이 되고 만 셈이다. 조건부 회담에서 회담보다 조건이 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붕괴 임박 근거 하나 추가요?

북의 대화제의와 의제 양보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진정성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내세워 남북대화의 성사 여부에 개의치 않는 정황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북한붕괴 임박론이라는 정세인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연평도 포격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부쩍 급변사태와 통일임박론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대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미중 정상회담을 바로 앞두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 공영방송에 나와 '북한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과 중국이 조성해놓은 남북대화 분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화답인 셈이었다.

북한 붕괴 임박론에 사로잡히면 당연히 북한의 대화제의는 내부적 위기상황의 소산이고 경제위기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 된다.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북이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세게 밀어붙여도 될 것이라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의 안이함도 바로 북한붕괴 환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집트 민주화를 목도하면서 보수진영은 또 다시 북한붕괴론이라는 주관적 기대에 한껏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북한이 붕괴 직전의 위기상황일까? 후계체제가 불안하고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급변사태가 임박하고 있는 걸까?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체제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북이 붕괴한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다. 붕괴 촉진요인과 함께 북에는 붕괴 억제요인이 공존하고 있다. 체제 불안정성과 동시에 체제 안정성이 내재화되어 있다.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가 위기임과 동시에 그 공백을 민간주도의 시장기제가 채워가면서 역설적으로 경제난을 그럭저럭 버티게 하고 있다.

북한이 붕괴한다는 기대와 당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동독 붕괴와 독일통일 당시에도 북한붕괴론은 난무했고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에도 모든 전문가는 길어야 3년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정일 와병시에도 북한붕괴는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이제 이집트 민주화를 맞아 또 다시 북한 붕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20년 넘게 북한붕괴론이 난무했지만 북한은 지금 존재하고 있고 김정일 체제는 3대 세습을 진행시키고 핵무장력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해 북은 주체철을 만들어 냈고, 오랜 염원이던 비날론 공장을 재가동했고, CNC라는 컴퓨터 자동화를 진전시켰다고 선전하고 있다. 물만 흐르면 막아서 소형발전소를 만들고 전략을 찾아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나름대로 버틸 만 하다는 자신감의 표현들이다.

남북관계를 끊고 대북지원을 중단하면 북이 힘들어할 것이고 결국 체제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역시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에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지 않을 때 북은 그만큼 중국으로 더 다가갔다. 북중 교역 규모는 해마다 사상최고를 경신하고 있고 중국의 동북3성 개발계획은 이제 국가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다. 지난 해 김정일 위원장의 연속 방중 역시 남북관계를 대체하는 북중협력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현실은 북한의 붕괴가 임박하거나 급변사태가 도래하거나 통일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관계의 대체재로서 북중연대를 심화시킴으로써 안전보장과 경제협력을 보완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항전의 결의와 자신감을 다지면서 대미 북핵협상과 대남 전략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UEP와 원심분리기를 공개하고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과시한 후, 연초부터 북이 대미 대남 대화제의를 잇따라 하는 것은 바로 붕괴임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오히려 버틸 만하다는 정세인식에서 나온 전략적 접근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

비현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모처럼 마련된 대화국면에서 가당치도 않은 조건을 내세워 사실상 정세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크게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한국을 제외하고 북·중·미간 협상 국면이 진전됨으로써 이른바 이명박표 왕따로 전락할 가능성이 유력한 첫 번째 경우다. 2011년 한반도는 이명박 정부를 빼고는 모두가 협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 입장은 어찌됐든 협상이 필요하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직후 김정일 위원장의 성급한 오버 즉 너무 이른 로켓 발사로 인해 북미간 상호신뢰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서 추가 핵실험과 대북제재의 악순환에 빠졌고 거기에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조에 휩싸여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무결심의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지난 해 말 헤커 박사가 목격하고 온 UEP와 원심분리기는 더 이상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이란에 이어 북한까지 플루토늄도 모자라 우라늄 농축을 하게 된다면 오바마의 핵없는 세상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6자회담이 가동되고 북한과 협상이 진행중일 때는 그나마 북핵문제가 관리되고 통제되고 있었다. 대화의 틀이 깨지고 협상이 중단될 때 북핵문제는 통제불능의 최악으로 진행되고 만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지난 해 천안함과 연평도를 겪으면서 한반도의 과도한 긴장고조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결코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1년 들어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안정이 중요하고 남북대화와 북핵협상이 필요함을 수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미 중국은 북한의 강경도발과 핵능력 증대를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최근 대북입장과 관련한 내부 논쟁을 거쳐 결국은 북한을 안고 가야한다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2009년 로켓발사와 추가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미국을 지지함으로써 북중관계가 악화되었고 오히려 북한의 모험주의적 행동이 더 강화되었다는 현실적 경험에서 중국은 불가불 북한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초에 미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의 필요성과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양국이 합의한 것은 한반도 긴장고조와 남북의 극한 대결이 결코 미국과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동북아 전략과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북한 역시 북중 연대를 토대로 장기항전의 조건을 구비한 만큼, 전략적 무시로 일관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원심분리기를 공개함으로써 북핵 협상으로 유도하는 한편 중국과 미국이 합의한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최근의 잇따른 남북대화 제의도 본심은 북핵협상 이전에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절차적 노력이거나 성의표시용 생색내기의 성격이 강하다. 이명박 정부가 화답해서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북으로서는 손해볼 게 없고 남북대화가 남측에 의해 거부된다 해도 성의는 다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을 거치지 않고 직방 워싱턴으로 갈 수 있는 핑계가 될 것이라는 심산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 북한 모두 대화의 분위기에 공감하고 있고 특히 북핵 협상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화 거부에도 불구하고 대화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 오바마 정부가 또다시 이명박 정부 편을 들고 남북대화와 북미협상 모두 좌초되고 마는 경우도 상정해볼 수 있다. 남북관계 진행과정에서 북한의 강경대응이나 무리한 언동이 돌출함으로써 정세악화의 책임을 북한에 전가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도저히 북한과의 협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1994년 초 북미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요구로 남북특사 교환을 어쩔 수 없이 논의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김영삼 정부의 강경 입장과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터져 나옴으로써 급기야 한반도 정세가 급랭했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불안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화거부 입장이 지속되고 이 과정에서 북의 돌출 발언과 극한 행동이 유도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강경대결로 치닫게 되면 북미대화와 북핵협상 국면도 한순간에 얼어붙게 되는 한국발 쓰나미의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에 역행하고 또 다시 긴장과 대결의 기싸움으로 몰고 간 역사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처럼 조성된 대화국면을 끝까지 거부하고 그 흐름을 역류시키려 한다면 한반도 긴장의 결과는 북한의 추가도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뜻대로 대화국면은 좌초되었지만 그 결과는 감당하기 힘든 긴장고조일 수밖에 없고 이 역시 이명박 정부에겐 정치적 실패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남북관계를 냉각시키고 북핵 정세를 악화시켜 북한이 폐연료봉을 꺼내려 하고 클린턴 정부가 북폭을 준비했지만 결국 한반도 긴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터 전 대통령 방북으로 북미 협상의 물꼬가 트이고 북핵문제는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는 오랫동안 소외와 고립의 과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김영삼 정부와 같은 무지몽매한 선택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오랜 겨울 끝에 따뜻한 봄을 희망하는 모두의 바람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섭리에 맞설 수는 없다. 기어이 한반도의 봄은 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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