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人]역사(驛舍)의 시대건축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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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12.06. 조회수 983
칼럼

기차역은 항상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별의 슬픔도 재회의 기쁨도 이곳에서는 일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驛舍)건물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중요한 공공건축물이다. 1814년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여 철도의 종주국이 된 영국은 이미 1825년부터 철도건설을 시작하여 1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899년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 구간의 경인선 철도 33.2km를 시작으로 11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철도건설 시기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는 철도역사 건물이 얼마나 그 시대의 건축정신을 대표하고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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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판크라스 역 유로스타 열차 승강장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의 시대건축정신

영국 런던의 중심역 중의 하나인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역은 런던에서 요크셔 지방으로 가는 기차의 출발역임과 동시에,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을 잇는 고속열차 유로스타(Eurostar)의 출발역이다. 1868년에 완공되어 영국의 빅토리아식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한때는 여행작가인 사이몬 칼더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고 칭송했을 정도로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는 런던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의 전면은 조지 길버트 스코트(George Gilbert Scott)가 설계한 미드랜드 그랜드 호텔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역사 보수작업 및 확장이 이루어져 15개의 플랫폼과 쇼핑센터, 버스정거장 등 공공공간이 확충되었고, 인접한 킹즈 크로스(King’s Cross) 역사 주변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하여 런던 도심부의 거대한 철도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2007년에는 유로스타 역이 개통되어 국제철도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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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 서울역사의 시대건축정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역은 일제식민통치를 받던 1922년 착공되어 1925년에 준공된 혼합 조적조건물이다.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던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한 이 건물은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적없는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치고는 왜색이 나지 않는 이유는 당시 일본도 서양건축 양식을 모방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비잔틴풍의 돔은 4면을 잘라서 채광창으로 만드는 등 전통적인 돔과는 다른 특색이 있는 구조이다. 이 건물에 대해서는 “건물의 비례가 부담을 주지않고 꾸밈이 없어 좀처럼 싫증나지 않는 훌륭한 건물”이라는 호평과 “한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역사로서 한국적 건축양식을 보여주지 못한 졸작”이라는 혹평이 동시에 존재한다. 2004년 KTX 개통을 계기로 쇼핑과 여행을 겸한 복합역사로 거듭 태어났고, 버스환승센터가 만들어져 KTX, 지하철, 버스를 연결하는 교통환승센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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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충주의 양식의 구 서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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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앞 버스환승센터 (출처: 연합뉴스)

소도시를 대표하는 레치워스 전원도시와 안동시의 기차역사

영국의 레치워스 전원도시(Letchworth Garden City)는 에베네저 하워드 경이 주창한 전원도시 이론에 따라 건설된 세계 최초의 전원도시이다. 전원도시 건설 초기인 1903년에 개통된 레치워스 기차역은 1912년 현 위치에 새 역사를 지어 이전하였으며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 Style) 양식의 건축물로 보존2등급 건물로 지정되어 있다. 미술공예운동 양식은 산업혁명의 물결속에서 가구를 비롯한 일용품과 건축물에 범람하기 시작한 값싸고 저속한 기계생산 공예품을 부정하고 수공업적 방법으로 예술적 정취를 지닌 건축물을 짓고자 했던 운동이다. 이러한 양식을 반영한 레치워스 전원도시 역사는 인구 3만 도시의 규모에 걸맞게 아담한 크기로 전원도시 주변건물과 잘 어울려 단출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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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레치워스 전원도시 기차역사 전경

반면에 한국의 정신문화 수도로 일컬어지는 경북 안동시의 기차역사는 콘크리트 박스 건물로서 역명을 알리는 간판을 떼어내면 어느 역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적불명이다. 우리나라 지방도시 기차역사 대부분이 이러한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역 광장을 나서면 4차선 정도의 대로가 좌우를 가로지르고 역 주변에는 4~5층 높이의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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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시의 기차역사 전경

도시의 얼굴이자 역사(歷史)를 대변하는 기차역사(驛舍)

기차역사는 도시의 모든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고 기억하는 대표적인 공공건축물이다.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에게는 방문하는 도시의 얼굴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철도여행을 위한 단일용도의 건축물이었으나 현대에는 고속철도, 일반철도, 지하철 그리고 버스 및 택시 등 다양한 교통수단의 환승센터이자 쇼핑 및 위락시설의 복합공간으로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역사 건물은 그 도시의 역사를 머금은 대표적인 건물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시의 기차역사 건물이 선비문화를 대변하지 못하고,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한눈에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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