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반지하뿐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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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28. 조회수 6766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 [시사포커스(2)]

반지하뿐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해야


윤은주 도시개혁센터 간사



정부의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무심함이 만든 참사

지난 8월 폭우로 관악구 반지하 주거민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상도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50대 여성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반지하 주거민 사망 사고는 우리 사회가 주거 취약성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사회복지 전달체계, 도시 재난대응체계, 취약계층 주거 안정성 문제가 결합된 사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집중호우가 지속되면 취약지역의 노후 반지하 공간이 어느 정도나 침수될지 재해시뮬레이션을 실시하여 침수에 미리 대비하는 등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대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저소득층을 안전 취약계층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의 안전강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실련은 8월 10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무심함으로 이런 참사가 일어났음을 규탄하며 저지대 및 상습침수지역 서민주거에 대한 대책을 당장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우선 노후한 다가구/다세대 주택지 중심으로 반지하 주거 공간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장기적으로 반지하를 비주거용도로 전환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는 거주공간의 물리적 상태, 재해 취약성 수준, 점유자의 경제적 상황, 점유자의 건강 상태, 취약한 거주공간이 점유자의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 등 다각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반지하 주거공간은 고시원 등 준주거 시설과 더불어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선택하는 마지막 주거 수단이다. 하지만 반지하는 재해에 취약하고, 거주환경(대기환경, 습도, 악취 등)이 열악하고, 외부로부터 프라이버시가 유지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거주민의 정신건강이 악화되므로, 고시원보다 질이 더 좋지 못하다. 장기적으로는 주거 기능을 하지 않아야 할 공간이므로 사람이 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에 대해서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원하에 주거 이전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한편, 이주가 이루어져 해당 반지하 공간이 비게 되면 주택 소유자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후 해당 반지하는 비주거용으로 용도를 변경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노후 반지하/준주택 밀집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저렴한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시, ‘반지하 금지’ 선언보다 예산 확보 및 구체적 로드맵부터 제시했어야

서울시가 지난 8월 10일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발표하자 논란이 일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가구수는 32만 7320가구(2020년 기준)이다. 서울 20만 849가구, 경기 8만 8936가구, 인천 2만 4207가구 등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서울이 61%로 가장 많다. 장기적으로 반지하를 비주거용도로 전환한다는 방향은 맞지만, 서울시 발표는 성급했다. 20만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공주택 혹은 저렴한 주택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지하를 짓지 못하게 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한 것은 반지하 거주민들의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들이 반지하를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다. 2018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지하에는 기초생활수급자 가구가 29.4%, 소득하위 가구 15.5%, 장애인이 있는 가구 15.5%, 청년가구 12.3% 등 정책 배려대상 가구가 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지상으로 거처를 옮기려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하거나 반지하 임대료보다 훨씬 비싼 임대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런 사회경제적 이유를 간과하고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정책부터 발표하는 것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더 큰 혼란과 고통을 주게 된다.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하고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쉽다. 예산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서울시는 반지하 금지 선언부터 할 게 아니라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정책에 대한 예산 확보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반지하 거주 가구들의 이주대책 마련을 우선해야 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8월 16일 향후 20년 간 도래할 258개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으로 23만호 이상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충분히 나오지 않을 우려가 크고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하며 공공임대 재건축으로 확보한 추가 물량을 분양해서 팔겠다는 계획도 타당하지 않은데다 개량해 쓸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30년이 지나면 재건축하겠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반지하뿐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대책 필요

서울시도 국토부도 반지하 거주민들이 목숨과 생활 터전을 잃는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반지하뿐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실련이 지난 5월 18일 발표한 기초지자체별 주거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 중 2015년 대비 2020년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호텔여관 등 숙박업소의 객실, 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 판잣집비닐하우스, 기타 시설)에 거주하는 20~34세 청년가구의 수가 증가한 곳은 132곳(58%), 65세 이상 노인가구수가 증가한 곳은 223곳(97%)에 달했다. 이처럼 주택이외의 거처 가구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노출되는 가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고시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2명의 고령자가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으나 여러 개의 방이 밀집해있고 통로가 좁아 인명피해를 막지 못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7~2019년 3년간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총 114건으로 25명(사망 8명, 부상 17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처럼 공식적인 주택은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주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준주택(특히, 고시원과 같은 다중생활시설)에 대한 물리적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전국적 실태조사를 통해 시설 유형, 건물 노후수준, 내부 시설 노후수준에 따라 차별적인 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재난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 향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집중호우 강도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번과 같은 반지하,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지하뿐 아니라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 주거취약계층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반지하에 대한 높은 관심이 정치적 대응에 그치거나 졸속 단기 대안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실련은 시민의 안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성급한 대책 발표보다 취약계층의 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예산확보 등 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지 감시하며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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