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산책] 종로5가에서 혜화로터리까지

관리자
발행일 2023.02.03. 조회수 34675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1,2월호-우리들이야기(3)혜화산책]

종로5가에서 혜화로터리까지


오세형 경제정책국 부장


월간경실련의 ‘혜화산책’ 원고 의뢰를 받았다. 이렇게 기쁠 수가. 운동 사업에 대해서는 한없이 쓰기 힘든 월간경실련 원고이나 간만에 운동사업이 아닌 주제여서 흔쾌히 감사하게 써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역시 어떤 글이든 한 줄 쓰기 쉽지 않은 법.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씌여진 시”가 생각났다. 인생은 살기 어려운데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했으니 수필이든 시든 쉽게 안 쓰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누구나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플 수 있어. 그러나 심장이 뜯겨져 나간 사람 앞에서 아프단 소리는 말아야지. 그건 부끄러움의 문제니까”
- 드라마 ‘미스터션사인’ 중에서 -

뒤늦게 넷땡땡 OTT에서 ‘미스터션사인’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다. 위의 대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진정으로 악쓰고 울어야 할 사람들은 외면당하고 내동댕이쳐지고 세상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야 하는 반면에, 힘 있고 배부른 자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외침은 확성기를 통해 더 크게 들리는 듯하여 매우 씁쓸하다.


하여튼 ‘미스터션사인’이라는 드라마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 가운데 하나인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다. 대학로 인근에도 인접한 시기와 관련이 있는 장소들이 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안쪽 지역인데다 창덕궁과 성균관도 가깝고 광화문이나 종로에도 가까우니 그 구한말이나 광복 이후 분단 초기에도 꽤나 번화한 장소였으리라.


종로5가역 3번 출구를 나와서 걸으면 ‘김마리아 활동터’라고 버스 내 정류장 안내방송에서 소개되는 곳이 나온다. 김마리아 독립운동가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고,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오고, 3.1운동을 함께 주도했으며 일제의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독립에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후학 양성에 힘쓴 분이다.


계속해서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김상옥 의거터’라고 소개되는 곳도 나온다. 김상옥 독립운동가는 의열단원이었으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들을 사살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는 김상옥 의사의 동상이 있다. 효제초등학교와 연동교회를 지나 이화사거리까지의 그 어디에서 대한의 독립을 위해 힘쓴 두 분의 발자취를 새삼 떠올려 본다.


이화사거리에서 낙산 방향으로 주택가 골목을 지나 찾아가면 ‘이화장’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8.15 광복 직후부터 살았던 곳이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구상하고 발표한 조각정이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역사인식이나 역사지향의 차원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보면 답답하다. 그래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직무 중에 귀거했던 곳이니 한 번쯤은 가보는 것이 어떤가 한다.


어렸을 적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생각난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조선총독부였고 중앙청이었으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건물 철거 여부였다. 나는 기술적으로 전부를 땅속으로 가라앉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안을 지지했었다. 아픈 역사,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니 와신상담하듯이 계속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일제식민지 시기 건축된 다양한 근현대 건물들이 오히려 잘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저 건물은 철거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바뀌었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철거되어야 할 건물도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면서는 도로 맞은 편에 ‘학림다방’이 있다. 서울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 가치가 있는 자산을 선정하는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since1956’이 주는 존재론적 무게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헌책방에서 구한 학생운동사 서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학림사건’이 이 다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이 나는데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고. 시그니처 메뉴는 비엔나커피다.


마로니에공원을 지나 혜화로터리에 다다르면 한성대 방향으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이 있다. 대한민국의 신부님들을 양성하는 학교로 시작하여 현재는 서울대교구 본당 사목을 담당하는 사제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학사님*들을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에는 뵙기 힘든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 기억에 검은 양복 스타일로 우르르 몰려다녀서 언뜻 보면 ‘조폭’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한 분 한 분 ‘성인(聖人)’처럼 보였었다. 대한민국 가톨릭에서 명동성당 못지 않게 유서 깊은 곳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일반 방문은 안 되고 1년에 한 번 개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혜화로터리에서 경신고등학교 방향으로 혜화로를 따라 조금 가면 ‘장면 가옥’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항거로 4.19혁명이 일어났다. 그러한 혼란과 기대의 시기에, 의원내각제가 도입되기도 했던 시기의 국무총리가 장면이다. 지금은 뭔가 영감을 주기보다 그냥 오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 당시 매우 긴박했던 시대를 지낸 역사적 장소이니 이 또한 한 번쯤은 가보는 것이 어떤가 한다.


종로5가 1호선 3번 출구에서 혜화로터리까지 1.5킬로미터 정도 된다. 이제 출출할 때가 되었다. 배가 고프다면 혜화로터리 인근의 ‘혜화칼국수’에 들려서 국시 한 그릇 하시길 권한다. 여유가 있다면 ‘생선튀김’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국시 한 그릇 먹으러 가야겠다.


* 가톨릭에서 신학교에 다니는 예비 사제들을 높이는 차원에서 관례적으로 부르는 명칭.
※ 참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나의독립영웅’ 동영상 목록(3화 김마리아, 9화 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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