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선언문

경실련
발행일 2024-05-14 조회수 39584

<취지선언문>
“우리는 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발기하는가?”
(1989.7.8.)


 지금 각 분야의 사람들, 시민들, 청년들이 모여 경제정의를 이룩하기 위한 시민운동단체를 발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이 구상을 함께 토론하고 이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사람도 있지만 신문이나 라디오를 듣고 경실련의 아이디어에 크게 공감한 나머지 멀리 울산이나 대구에서부터 참석한 분도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 분야는 천차만별로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재산 소유정도의 차이도 매우 큽니다.

 이 자리에는 상당히 큰 기업의 대표이사도 와있지만 반면에 하루라도 일을 안 하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노점상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분들이 집에 돌아가 편히 쉬어야 할 토요일 늦은 오후에 단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부정의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하루바삐 척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동 인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 정의를 위한 시민운동을 보고 "당장의 민주주의 실천과 노동자들의 권익 옹호, 그리고 통일의 과제가 있는데, 당신들이 이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아니오, 우리는 바로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고 산업평화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이야말로 사실은 경제 성장과 복지, 민주주의와 통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실제로 요즈음 부동산 투기 문제의 심각성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토지 소유자의 상위5%가 전국 민유지의 65.2%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지난 20년 간 물가는 11.5배가 뛰었는데 땅값은 170배가 뛰었으니 토지소유에 의한 불로소득의 엄청남은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한편에선 부동산 투기로 생긴 졸부들이 과소비와 향락, 퇴폐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천정 모르고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은 채 절망하고, 국민 도의는 땅에 떨어졌으며 한국 경제는 주택. 토지값 폭등으로 인한 노사 분규의 격화와 국제 경쟁력 약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두 개의 계급만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주택 소유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무주택 계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제적 부정의와 망국적 불로소득의 척결 없이는 우리는 한 발짝도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고, 또한 우리는 이 땅의 안보를 걱정하는 보수 세력에게도 지금의 격심한 경제적 부정의가 척결되지 않는 한 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밖에는 해결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아무리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고 해도 경제 정의를 수립하는 과제를 한시도 늦출 수 없기에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공동 인식이 있다면 마로 이러한 경제 정의를 수립하는 일을 정부나 국회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이젠 시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항상 가진 자를 더욱 살찌우고 못가진 자들은 더욱 가난하게 해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여든 야든 가릴 것 없이 가진자들, 권력쥔 자들의 로비엔 항상 맥을 못 추고 결과적으로 거의 항상 가진자들의 편만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들 '보통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회비를 내고 단체를 꾸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제적 부정의 실상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고발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 하나하나에 대한 빈틈없는 대안도 학자의 머리에서 보다는 시민들의 생생한 실제 경험에서 더욱 확실히 찾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토지는 소유하면 무조건 돈 버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어도 득이 안 되는 그래서 꼭 필요한 면적 이외에는 가지려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진 대안을 입법화하기 위한 캠페인을 할 사람도 바로 시민입니다.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꼼짝없이 입법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은 할머니, 할아버지, 유모차를 끄는 아기엄마 할 것 없이 모든 시민이 쏟아져 나와 여의도 광장을 꽉 메우며 평화 행진을 할 때에만 생길 것입니다.

 

Attachments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