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주의에서 호혜주의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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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1.28. 조회수 481
칼럼

서보혁((사)경실련통일협회 이사,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연구교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취임했을 때 남한 여론이나 북한에서는 대북정책에 일정한 변화는 있겠지만 남북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대선 때 구호로 쓴 ‘비핵·개방·3000’ 구상이 MB정부의 실제 대북정책 방향으로 제시되면서 우려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구상은 북핵문제 해결을 대북정책의 전면에 내걸면서 남북관계 전반을 북핵문제에 연계시켜놓았다. 북핵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관계 발전은 없다는 강력한 정책의지(?)를 나타냈는데, 이는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혀졌다. MB정부의 대북정책은 2007년 10.3합의 이후 북핵 불능화를 거쳐 최종 폐기 단계로 진입을 시도하던 6자회담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도 제동을 걸기 시작하였다.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은 2008년 등장한 MB정부의 대북정책은 당시 임기 1년을 남겨놓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흡사해보인다는 점이다. MB정부와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당근보다는 채찍을, 상대와의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접근을 선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 부정(소위 Anything But Clinton, Anything But Rho)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MB정부는 부시정부가 임기 말 압박에서 대화로 대북정책을 전환시킨 점, 곧 일방주의 외교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지 않았다. MB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를 조금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대북정책이 실패할 수 있다는 예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분단 이후 어떤 정부에서도 남북관계는 대화와 갈등이 부침을 거듭하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노태우 정부 이후 남한의 대북정책이 일방주의와 압박을 기조로 출발한 정부는 MB정부뿐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3년 동안 두 가지 패턴의 남북관계가 발견된다. 그 하나는 남북 대화가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고 설령 이루어진다 해도 관계 발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양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대화의 계기는 몇 차례 있었지만 일회성에 그치고 남북관계 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과 뒤이어 고 김대중 대통령 조문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의 이명박 대통령 예방이 있었지만 MB정부는 이를 금강산 관광 재개나 당국간 대화 재개의 추진력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또 제17, 18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09년 9월 말-10월 초, 2010년 10월 말-11월 초에 각각 일회성 행사로 끝나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데 정부의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2010년 2월 개성공단과 금강산·개성관광 관련 2개의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결렬되었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의 가늠자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내세우고 있는데 비해 MB정부는 고 박왕자씨 피격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회장과의 면담에서 확약한 바 있다. 결국 MB정부는 북에 현금이 들어가 그것이 김정일 정권의 연장에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해서 성사되지 않는 것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것도 (북핵 우선 해결 입장과 함께) 그런 맥락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패턴은 대립과 불신이 쉽사리 가시지 않고 오히려 대결로, 급기야 물리적 충돌로 비화하는 현상이다. 2008년 7월 11일 남측의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은 물론 남북 교류와 대북지원도 거의 중단되었다. 2010년 2월 개성공단 실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개성공단내 남측 자산동결과 근로자 억류 등 강경조치로 대응하며 남북간 긴장을 의도로 고조시켜 나갔다. 한편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나자 남한이 북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유엔 안보리와 한미 동맹관계 등을 이용한 다각적인 대북제재는 경색되어온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그런 남북간 대결 상태를 전쟁 직전의 상태로 끌어올려 놓았다.



남북관계 악화로 북한경제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장기적으로 우리정부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혜관 통계 따르면 2010년 11월까지의 북중무역 규모는 이미 이전 해 무역액 26억 8,073만 달러를 넘어선 30억 5,655만 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북한의 대중의존도 심화 경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그리고 남북관계의 경색 등 상황적 요인이 작용하여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경제협력기금 집행률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노무현 정부 말년인 2007년 순수사업비의 82.2%를 기록하다 2008년 현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18.1%로 급락하기 시작해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남북협력기금 지출액은 862억 5천만 원으로 순수사업비의 7.7%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리하면 지난 3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천명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효과적인 정책을 전개하기는커녕 자기만족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결과 남북관계를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 국민을 불안으로 몰고 가고, 정부의 대북정책 연속성을 부정하고 정책 불신을 초래하였다. 그 근본 원인에는 ‘실용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일방주의 정책,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이념적 접근이 작용하고 있다. MB정부는 내외에 천명한 대북정책 원칙 ‘실용주의’를 걷어차고 ‘이상주의’로 전향하고, 비현실적인 ‘비핵·개방·3000’을 고수하여 북한의 핵보유 능력을 강화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더 멀게 하고, 북한을 남북관계 발전의 동반자가 아니라 압박의 대상으로 삼아 한반도의 안정을 해쳤다. 그 결과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 바른 남북관계 정립, 통일 대비 등을 부르짖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2011년 통일부 업무계획)는 공허해보이고, 심지어는 남북관계 퇴행의 책임을 은폐하는 언변으로 보일 뿐이다.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자기예언과, 협력보다는 제재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와 한반도 안정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지난 3년 동안 위험을 감수하며 알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을 고수한다면, 집권 5년 내내 남북관계 악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환경 조성이라는 남한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 방향을 훼손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만약 MB정부가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으려면 다음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민간교류협력 보장과 인도적 지원을 통한 신뢰구축 노력을 전개하여 다음 정부가 본격적인 남북관계 발전의 길로 나아갈 초석을 닦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의 길은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남북간 기 합의 사항의 이행을 포함하여 평화 공영의 길을 마련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남한의 대북정책 목표는 남북관계를 통해 달성해나가야 한다. 일방적 접근은 비현실적이고 역효과를 초래한다. 호혜적 접근은 북의 신뢰를 살 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자주평화통일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유용하다. 정책 선택은 정권이 하지만 평가는 역사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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