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평화를 묻다] 적토(赤土)에 흩뿌려진 커피향, 쁠레이꾸(Pleiku)

관리자
발행일 2012.10.08. 조회수 523
칼럼

적토(赤土)에 흩뿌려진 커피향, 쁠레이꾸(Pleiku)



김삼수 정치입법팀 팀장
tongil@ccej.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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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이 막 시작되는 때로 기억한다. 방현석 선배와 처음 만나서 술 한잔 기울였던 기억. 아마도 방현석
선배는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이라 그 당시 무슨 얘기를 그렇게 구성지게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라는 소설책에 친히 자필 사인을 해주었고, 내 이름을김상수라고
적었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기억의 전부다.



 



 방 선배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상처와 우리의 부채의식을 적나라하게 그리기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내가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그
책을 읽었던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베트남을 여행하기 전 지난 시기의 고난과 분쟁의 흔적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 많이 남아있으리라
여겼다. 베트남 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자국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늘 따라다녔고, 마지막 왕조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렸다. 1955년부터 근 20년 동안 진행된 베트남 전쟁까지 아픈 경험과
치열한 생존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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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무거워진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트남으로 떠나보자.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의 동부에
위치하며, 북 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동남아시아
본토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고, 해안선의 길이가 3250㎞에
달한다.



 



 베트남의 곳곳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이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여행자들은 보통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어 여행에 나서고 있다. 어디를 갈지 숱하게 고민했지만, 여름 성수기에 그 어렵다는 항공권을 확보한 이후 자연스럽게 남부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지도를 펴놓고 꼭 가 보고 싶은 곳을 체크해 나갔다. 언제나 설레는
순간이다. 베트남은 열대몬순기후로 고온다습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해안 관광도시가 아닌 내륙의 고산도시를 찾아 나서보자.



 



 최종 목적지를 쁠레이꾸(Pleiku)
하고 루트를 잡는다. 호치민-달랏-벤마투옷-쁠레이꾸-나짱-호치민.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쁠레이꾸와 관련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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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알게 된 쁠레이꾸에 대한 정보는 대략 이렇다. 19, 14, 25호 국도 삼거리에 위치한 쁠레이꾸는 전형적인 원시 밀림지대 지아라이(Gia Lai, 해발 800m의 중남부 고원지대)의 행정수도이다. 지정학 상으로 뀌년(Quy Nhon)에서 170km, 호치민에서 541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780m
의 고산 도시이다. 전 국토의 21%
담당하고 있는 거대한 수력발전소와 베트남 전국에 신선하고 맑은 산소를 공급하는 300만 헥타르에 이르는
원대한 야생원시림이 있는 곳이다.



 



 또한 1965년 이곳에 주둔한 미군 특수부대
캠프가 게릴라 공격을 받았고, 최초로 주둔한 미 공군부대가 습격을 받는 등 베트남전쟁 때 수많은 격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쁠레이꾸 부근 중앙산지에는 바나르족, 자라이족
등 고산족들이 살고 있는데, 베트남전쟁 때 미군 특수부대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외국인과의 접촉을 규제했다고 한다.



 



 여정은 험난하다. 벤마투옷에서 쁠레이꾸까지
의 로컬버스는 25인승 소형버스가 대부분이고, 200km 남짓을 5시간 달려야 한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많이 유실되어 있지만
복구공사는 언제쯤 이루어질지 가늠하기 힘들고, 중간중간 도로 위에 쓰러진 나무들을 위태위태하게 피해
다녀야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수많은 오토바이도 조심스럽게 피해 다녀야 한다. 물론 편안한 항공편도 있다.



 



 쁠레이꾸로 가는 길에서는 드넓은 커피 농장과 채취통을 달아놓은 고무나무 플랜테이션 (plantation)을 볼 수 있다. 식민지시절부터 시작 되었지만, 지금은 이 지역의 주요한 환금작물로 자리 잡고 있다. 쁠레이꾸에
다가갈수록 풋풋한 숲 내음과 함께 대지를 가득 채운 적토(赤土)가 눈 에 들어온다. ‘신비한 고원도시라고 칭했던 선험 자의 말이 떠오른다.

 



 쁠레이꾸의 첫 인상은평온이다. 많은 소수민족 유적지와 오래된 사찰, 식민지 시절의 성당과 교회 등이 혼재되어 있고, 한창 공사중인 호치민
광장과 중심거리인 흥붕거리는 분주하고 소란스럽지만, 저마다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따뜻한 인정으로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오지 않아서인지, 어딜 가더라도 수줍어하면서도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리고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기분 좋은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쁠레이꾸에 가게 되면 자전거를 빌려 여유롭게 돌아다니기를 추천한다. 고원 평야지대라 힘들게 올라야 하는 언덕도 별로 없고, 해안 도시들처럼
찌는 듯한 무더위도 덜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이곳저곳 그들의 소소한 일상으로 빠져들다
보면, 반갑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는 호디엔홍 호숫가에서 따뜻한 카페쓰아다(Caphe Sua Da) 한잔의 여유로움을 즐겨보기
바란다. 만 약 여행일정이 넉넉하다면 교외로 나가 야생 원시밀림을 탐험해도 좋고, 푸끙폭포(Thac Phu cuong) 등 밀림 속 시원한 폭포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일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현재와 유사한
국명을 1천년 이상 유지한 나라는 베트남이 유일하다고 한다. 중국의
영향으로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한 영향이라는 분석도 많지만, 그만큼 베트남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강했던 것도 한 이유이다. 베트남은 지금 과거의 아픈 기억을 오늘에 맞게 끊임없이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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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넘치는 호치민의 풍경, 최고의 휴양도시로 거듭나는 달랏, 커피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벤마투옷, 고요하면서도 인정 넘치는 쁠레이꾸, 해안
휴양도시의 대명사 나짱 등 베트남은 강렬한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인상과 새로운 감흥을 전해주고 있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연신 울려대는 경적소리, 바람에 하늘거리는 아오자이 속에서 한번쯤 시간을 잊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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