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人] 도시경관(都市景觀): 볼 권리와 보여질 권리

관리자
발행일 2014.02.11. 조회수 1158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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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엽서에 나타난 세계 유명도시의 이미지

 



바야흐로 도시경관의 시대이다. 2013년 8월에 전면개정된 경관법에 의하면 인구 10만 이상
의 도시는 의무적으로 경관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들의 도시
경관에 대한 의식수준은 아직 후진국에 가깝다. 왜 도시경관을 가꾸어야 하는지, 무엇이 소
중한 경관자원인지, 그러한 경관자원을 어떻게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도시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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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의 주요 경관자원인 세인트폴 성당과 밀레니엄 브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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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시의 경관관리 방법(1) : 세인트폴 성당 돔이 보이도록 건물높이를 규제하는 시뮬레이션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국회의사당, 뉴욕의 자유여신상은 세계적인 대도시의 대표적 이미지다. 외국여행을 할 때 흔히 사오는 그림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 도시의 대표선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자기 도시에 대한 이미지와 그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느끼는 이미지에는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매일 보아오던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은 너무 친근해서 오히려 도시이미지의 대표 선수가 되지 못한다.

 

미국의 도시건축가인 케빈린치는 보스톤, 로스엔젤리스, 저지시티 등 미국의 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고 인지도(認知圖)1)를 분석하여 도시 이미지의 5대 요소2)를 도출했다. 그 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알기 쉬운 요소가 이른바 표식(標式)이라고 번역되는 랜드마크(landmark)이다. 대체적으로 높이 우뚝 솟아있거나 크기가 매우 큰 요소, 형태나 양식이 독특한 요소, 재료나 색채가 이질적이어서 금방 눈에 띄는 요소를 말한다.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이 세계적인 도시와 비교할 때 서울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될만한 랜드마크가 별로 없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은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있어 파리의 개선문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남산타워는 서울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는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서울 시민들에게는 왠지 낯설다.

 

경관자원 : 볼 권리와 보여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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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시애틀의 경관자원 관리 : 스페이스 니들 전망탑을 향한 조망축 관리


한국전쟁 때문에 폐허로 변한 우리의 도시에는 건축, 도시, 조경 분야에서 자랑할 만한 도시경관 요소가 거의 없었다. 전후 복구와 경제 재건 때문에 그동안은 도시경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도시의 품격을 따질 정도의 여유는 찾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첫 출발점은 역시 볼 거리를 찾아서 가꾸는 일이다. 전문용어로‘경관자원의 발굴과 관리’이다. 경관계획을 수립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경관자원의 조사 및 분석이다. 대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중요한 경관자원을 선정한다. 이후 이렇게 선정된 경관자원을 어떻게 보전하고 관리할 것인지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경관자원에 대한‘볼 권리’이다. 내가 사는 주택이나 중요한 공공장소에서 한강이나 남산, 북한산 등을 바라볼 수 있는 권리가 기본권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비로소 경관이 도시계획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중요한 건물과 조형물을 포함하는 인공경관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에게 ‘볼 권리’가 있다면 도시는‘보여질 권리’가 있다. 내가 가진 중요한 경관자원을 뽐낼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항상 외국이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관자원의 관리에 있어서 우리가 눈여겨 볼 외국사례 둘을 꼽으라면 영국 런던과 미국 시애틀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런던의 사례를 살펴보자. 런던이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된 일등공신은 단연코 도시 경관자원의 철저한 관리정책일 것이다. 런던시에서는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경관 자원의 하나인 세인트폴 성당이 주요 조망점에서 잘 보이도록 시각통로를 열어주고 건물의 높이를 규제한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계탑 빅벤(Big Ben)이 있는 국회의사당은 물론 약 10마일(16㎞)이나 떨어진 리치몬드 공원에서도 세인트폴 성당의 돔을 볼 수 있다.


런던에서 가장 중요한 경관자원이 세인트폴 성당이라면 미국 시애틀의 랜드마크는 1961년에 지어진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라는 184m의 전망탑이다. 전망탑으로 따지면 N서울타워(남산타워)보다 훨씬 낡았고 보잘 것 없지만 스페이스 니들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애틀시에서는 시민들이 자주 모이는 동네의 조그만 공원에서도 이 전망탑이 잘 보이도록 조망축을 설정하여 건축물을 규제하고 있다.

 

경관규제 : 이상과 현실의 사이

도시의 중요한 경관자원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시민은 없겠지만 막상 경관관리 정책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되는 순간 입장은 달라진다. 조망축 때문에 내 땅에 짓는 건물의 높이나 용적이 제한받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조망축 보호를 위하여 나의 재산권이 희생되는 것에 반발한다. 도시계획 도로처럼 공익성이 뚜렷한 공공사업에서도 개인의 재산권 침해에 반발하는 마당에 하물며 다른 사람의 볼 권리를 위해서 나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것을 참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정서다. 아직 경관에 대한 가치인식이나 조망권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인구 10만 이상의 모든 도시에서 법이 정한 경관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여 시행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도시의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법과 제도가 정비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도시경관에 대한 시민의식의 고양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 때 서울시가 세계디자인 수도로 지정되어 도시경관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행했지만 일과성에 그치고 말았다. 경관자원을 발굴·관리하고 경관계획을 수립·시행하는 등 도시경관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시장의 정치적 공약과 상관없이 시민운동으로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경관법의 전면개정과 함께 우리나라의 새로운 경관시대를 여는 선진화된 시민의식을 기대해본다.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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