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과 영악한 수재들

관리자
발행일 2009.06.08. 조회수 520
칼럼

권영준 경실련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경희대학교 국제경영학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온 국민의 아픈 마음과 추모를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떠났다. 참으로 드문 현상이다. 임기 중반 이후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했던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찌 이리도 크단 말인가. 그것은 그가 비록 기대만큼의 성공은 못했다 하더라도 역사상 가장 민주적 정치지도자요 서민들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의 죽음에 오열하고 비통해 하는 것이다. 일부 영혼도 가슴도 없는 자들은 자살한 분에게 무슨 국민장이 필요하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누구도 결코 자살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현실에서 굴복하느니 극단적인 방법이더라도 현실의 벽에 피흘려 항거할 때 역사는 이를 자결(自決)이라고 부른다.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바보


구한말 친일대신들과 대립하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다 시종무관장의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백관을 인솔하여 대궐에 나아가 이를 반대하던 중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조용히 자결했던 민영환을 우리는 충정공이라 부른다. 또한 1907년 고종의 밀사로서 헤이그에 갔다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고 만국에 항거하는 뜻으로 할복 자결이라는 죽음을 택한 이 준을 역사는 열사라 부른다.


결코 노 전 대통령의 자결을 가볍게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가 꿈꾸었던 패거리정치 개혁, 지역구도 혁신, 다같이 잘사는 공동체, 그리고 평화통일의 염원이 그의 임기와 함께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을 그는 보았다. 더욱이 그가 원했던 서민과의 대화조차 가로막고 비열한 파렴치범으로 몰고간 현실정치의 잔인한 역습과 보복에 온몸을 던져 항거하고 싶었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현실을 뛰어넘고 역사의 평가를 서둘러 받고자 했던 것같다.


사실 필자도 지난 참여정부 5년 내내 ‘공적 감시’라는 책임감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었는데, 그것은 때로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었고 나아가 자기 가족이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것이었지, 결코 그를 마음에서 지우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1988년 부산 동구 출신 초선의원 노무현이 국회에서 설파했듯이 그가 꿈꾸는 세상은 ‘가난하고 세상을 혐오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살아서 못이룬 그 꿈을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충격을 통해 남은 자들에게 강한 유지로 남기고 떠났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별명은 바보 노무현이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가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정치적 원칙을 지키는 속깊은 바보들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득을 볼 수 있을까 잔머리를 굴리는 약삭빠르고 영악한 지도자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만을 아는 영악한 지식인과 지도층들


국민들은 바보에 감동했었다. 그리고 그런 원칙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더 잘해서 반드시 성공하기 바랐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아직도 자신만을 아는 영악한 수재들과 사회 지도층들의 득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그런 자들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산분리를 주장하다 정권교체 후 즉각 입장을 바꾼 영악한 지식인들, 제2롯데월드는 국가안보상 심각한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던 입장을 180도 선회한 곡학아세 전문가들, 사법부의 개혁을 통해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던 헌법적 독립권한을 정부에 송두리째 갖다 바치고 자리보전과 출세에만 눈이 먼 영혼없는 법원 수뇌부들, 회사재산을 사유재산처럼 처분하고 상속증여를 탈법적 방법으로 해도 면죄부를 발하는 대법관들, 이 때문에 언제든지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는 재벌총수들,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스러기라도 던져주면 감읍하는 영혼없는 관료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이 글은 내일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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