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외판매,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해야

관리자
발행일 2011.06.23. 조회수 439
칼럼






정승준 <경실련 보건의료위원>



 



현재 보건의료는 과거와 달리 쌍방향 정보교환으로 이뤄지고 외국에서는 이를 반영해 다양한 자가치료 인프라를 구축중이다.


 


올해 들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던 보건복지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일반약 약국 외 판매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지난 20여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제자리걸음으로 끝난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심야시간, 공휴일, 또는 외지에 여행을 갔을 때 경미한 증상이지만 그냥 참기에는 불편하고 간단한 상비약은 없고 응급실에 가기는 망설여지면서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관한 논의는 가장 먼저 ‘의약품의 안전성이냐, 국민의 편의성이냐’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 보건의료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성·접근성·비용 모든 측면에서 효율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의약 정책을 만드는 것이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의약품 안전성 측면만을 보면 약사법과 일반약 분류기준에서 일반의약품은 ‘오·남용의 우려가 적고 부작용이 비교적 적고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보된 의약품으로, 주로 가벼운 의료 분야에 사용되며 일반국민이 자가요법(self-medication)으로 스스로 적절하게 판단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국민이 약국 외 판매를 원하는 품목은 가정상비약 수준의 의약품 정도이다. 그럼에도 일부 약사는 어떤 회사의 드링크류는 카페인이 함유돼 있어 심장 등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 드링크 한 병에 포함된 카페인은 약 30㎎으로,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에 들어있는 양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의약품 사용 실태를 보더라도 일반 가정의 약 90%가 가정상비약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별한 복약지도 없이도 가정상비약을 사용해 일정 정도의 자가치료를 행하고 있다. 식약청 자료를 보면, 2000~2008년 발생한 가정상비약 부작용 사례는 간 손상이나 위장출혈 등 17건이 보고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약사가 의사의 처방을 오독해 처방보다 5배 많은 함량의 전문의약품을 조제해 사망한 사고가 최근에 일어난 바 있다. 2008년 기준 조제 건수가 총 4억2000만건이 넘으며, 이 과정에서의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국민이 약 복용의 안전성에 우려하는 것은 그런 데서 생긴다.


 


국민의 70~80%가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를 요구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의식수준의 향상 및 다양한 건강정보 접근성 확대, 자기 건강 결정권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발생한 자연적인 현상이다. 과거의 의료가 일부 전문인의 독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면, 현재의 보건의료는 개개인이 자기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쌍방향으로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환하면서 이뤄지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를 반영해 다양한 자가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세계보건기구는 자가치료를 “자신의 책임 아래 경미한 신체의 부조는 자신이 치료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약품 접근성의 확대, 사회적 차원의 건강 캠페인, 건강 증진 프로그램 활성화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8년 11월 기준 전국 약국 2만831곳 중 8.4%인 1752곳만이 군 단위의 지역에 분포하고, 전국의 215개 기초행정구역(1개 읍과 214개 면)에는 최소한의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등 실질적인 국민 편의 및 자가치료 환경은 열악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는 가정상비약을 약국 외에서 팔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의사 처방약)-일반의약품(약국 판매약)’으로 돼 있는 의약품 분류기준에 ‘자유판매약(약국 외 판매약)’을 넣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약사법 개정이라는 국회의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직 이 논의는 진행중이며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욱 요구되는 때다. 이 논의를 시작으로 보건의료의 주체인 국민이 중심이 되어 국민이 요구하고 원하는 보건의료 체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 신문 6월 14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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