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진은 행복하다

관리자
발행일 2008.04.07. 조회수 1874
스토리

지인진이라는 권투선수가 있다. WBC 페더급 챔피언이었던 그는 타이틀을 자진 반납하고 지난 2월 24일 K-1 데뷔전을 치렀다. 권투선수 지인진이 아닌 이종격투기 파이터 지인진으로 거듭난 것이다.


권투를 사랑한 그가 더 험난한 이종격투기 세계로 뛰어 들었을 때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권투 챔피언으로의 삶은 일천만원 정도의 타이틀 대전료, 고작 일년에 한두 차례의 시합 등 엄청난 생활고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이었다. 마지못해 이종격투기 파이터로 전향했지만, 그에게는 돈을 벌어 권투 꿈나무를 육성하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종격투기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했다. K-1에서도 챔피언이 되는 게 현재의 목표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챔피언이 되면 부와 명예를 누릴 줄 알았지만 환상이었고, 오히려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과 목표가 있었을 때가 더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챔피언이 되기 위해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나이 올해 36살이다.


“세상에는 불행과 행복이 있습니다. 불행은 과거만 떠올리고 집착하는 것이고, 행복은 미래를 보고 희망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지인진의 말이다. 그는 과거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 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당장은 K-1 챔피언이지만, 권투를 사랑하기에 다시 권투 꿈나무를 육성하고자 하는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지인진이 화려한 타이틀에만 얽매이고, 지금껏 해왔던 권투만 고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이 말을 다시 물으면, 당신은 미래의 희망을 품고 사는가? 이렇게 될 듯 하다. 요즘 지인진의 말들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시민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을 하면서 지금껏 미래의 희망이 이렇게 암울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시선을 잠시 한반도로 돌려보자. ‘통일’이 민족적 과업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창한 수사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저, “한반도야 너는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한반도는 행복할까? 대운하라는 악령이 곧 사지를 절단 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이미 잘려진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한반도도 희망 가득한 미래를 꿈꾸며 아름다운 행복에 젖어 있었던 시기가 불과 얼마 전이다.


바다길이 뚫리고, 땅길이 뚫리고, 하늘길이 뚫렸다. 잘려진 허리를 잇고 그렇게 한반도는 다시 비상(飛上)의 몸부림으로 행복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최근 “핵포기없는 개성공단 확대없다”, “핵공격 위협시 북핵기지 선제공격” 등 강경발언들이 쏟아지면서 대립과 반목의 불행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북측이 개성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이하 경협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는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해서 전원이 철수했다고 한다. 경협사무소는 분단 이후 최초로 북측에 개설된 남북 당국차원의 상설기구다. 여기서는 민간 사업자에게 대북 교역 및 투자 정보를 얻고, 직거래를 가능케 하고, 경협문제를 상시 협의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외부에서 발생하는 사태와 상관없이 개성공단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주지하다시피 개성공단은 중국의 저가공세에 대응하는 전진기지로 삼아 우리 중소기업의 활로를 찾아주고 남북이 모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건설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개성공단 3단계 조성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2012년부터 남측에는 연간 24조 4000억 원, 북측에는 연간 6억 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남측에 10만개, 북측에 7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분석했다. 개성공단은 2012년까지 3단계에 걸쳐 모두 850만평이 조성된다.


한국은행은 또한 개성공단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57.5달러로 중국(100~200달러)이나 남한(423달러)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개성공단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은 남한에서보다 경상이익이 2~7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시장경제를 익히고 개성공단에서 번 돈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하면 남북 경제력 격차가 완화돼, 결국 통일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끊임없이 말했던 사람들이 그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려고 하고 있다. 답답하다. 미래를 보는 현명함이 절실하다.


애써 키워왔던 평화와 상생, 그리고 행복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해보는 미덕도 발휘했으면 한다. 한반도 평화라는 잘 익은 결실을 얻기 위해 그 동안 공들인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인진은 가족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험난한 이종격투기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행복을 위해 개척해 놓은 길을 다듬으며 완성해 가면 된다. 하지만 그런 길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려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만 한다.


또한 지인진은 사각의 링에 올라 상대를 쓰러뜨러야만 챔피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왜 상대를 쓰러뜨리려고만 하는 걸까. 분명 잘못한 게 있다면 다그치고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것은 함께한다는 전제가 수반될 때 가능한 것이다. 지금처럼 상대를 부정하면서 함께 갈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면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


지금 지인진은 행복하다. 나도, 너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그 행복의 길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김삼수 경실련통일협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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