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人] 광장(廣場)의 공간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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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7.24. 조회수 919
칼럼



[도시人] 광장(廣場)의 공간정치학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계획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류중석 - 2013년 7_8월호 - 사진1.스페인광장(출처_류중석).JPG

▲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Rome)

 

비싼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광장은 영화와 문학작품에 단골로 등장한다. 작가 최인훈은 그의 대표작 「광장」에서 집단적 삶, 사회적 삶을 상징하는 광장과 개인적 삶, 실존적 삶을 상징하는 밀실을 대비시킨다. 남한은 타락한 밀실의 세계, 북한은 집단적인 광장만을 강요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은 그레고리 펙과 로마의 스페인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주의 신분을 벗어나 서민생활을 맛본다. 이렇듯 광장은 빈부의 격차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시민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공공간이다. 이러한 광장의 공공성 때문에 도시계획을 할 때 도시의 중심부에 광장을 계획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광장이 잘 발달한 대표적인 나라가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의 광장은 주로 성당이나 관공서를 끼고 그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도시생활의 중심공간으로서 만남과 교류, 축제와 행사의 장소로서 시민들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시에나의 캄포광장은 13세기 시장이었던 곳에 시청 건물(현재는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중심광장이 되었다. 부채꼴 모양의 바닥은 중세시대 시에나 지역을 통치하던 9개의 의회(council)를 기념하고자 9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류중석 - 2013년 7_8월호 - 사진2.Piazza-del-Campo-italy-(출처_www.fanpop.com).jpg

▲ 이태리 시에나의 캄포광장(Piazza del Campo, Siena)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광장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agora), 로마시대의 포럼(forum)은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공간이었다. 아고라나 포럼 주위에는 신전이나 사원, 도서관, 목욕탕 등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시설들이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다.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역할도 하면서 재판이나 집회가 열리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군국주의 시대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광장은 정치적, 군사적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 변하게 된다. 통치자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넓은 광장을 조성한 것이다. 북경의 천안문 광장, 평양의 김일성 광장 등이 좋은 예이다. 우리에게도 한 때 이런 광장이 있었다. 바로 여의도 광장이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류중석 - 2013년 7_8월호 - 사진3.여의도광장 국군의날 (출처 blog.naver.com_chiwoo0624).jpg

▲ 1987년 10월 1일 여의도 광장에서 펼쳐진 국군의날 행사

 

여의도 광장, 군사퍼레이드 장소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서울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여의도 광장은 김포공항이 지어지기 전까지 공항으로 쓰였다. 공항 활주로 기능 때문에 길쭉한 모양의 아스팔트로 덮힌 삭막한 광장이었다. 해마다 국군의 날이 되면 이곳에서 국력을 과시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이곳에서 펼쳐지곤 했다. 여의도 광장은 서울에서 수백만의 시민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파를 초월한 부활절 연합예배 장소로 이용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을 위한 대규모 종교행사가 거행된 곳이기도 했다. 1972년 여의도 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5·16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여의도 광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7년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 태어나 현재는 여의도 공원으로 불린다. 2012년 12월 24일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독신남녀들이 짝을 찾기 위한 대규모 민간행사인 ‘솔로대첩’ 행사가 여의도 공원에서 개최되어 과거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여의도 광장이 시민들을 위한 공간인 여의도공원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류중석 - 2013년 7_8월호 - 사진4.서울시청앞광장_월드컵응원(출처_moneymonkey.tistory.com).jpg

▲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 서울시청앞 광장은 차도까지 응원단으로 가득 찬다

 

여전히 아쉬운 서울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

 

서울의 도심에 변변한 광장이 없다는 것은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서울로서는 매우 가슴아픈 일이다. 아쉽지만 서울시청앞 광장이 임기응변적으로 중심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청앞 광장은 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여 접근성이 떨어지고 차량소음으로 시끄럽기까지 해서 그다지 매력적인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에 관한 좋은 기억이 있다. 시에나의 캄포광장처럼 건물로 위요된 고요하면서도 아늑한 광장은 아닐지라도 필요하면 차량을 통제해서 차도까지 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어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사불란한 응원을 통해서 시민들은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응원을 통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시민들이 평상시에 편하게 와서 쉬고 즐길 수 있는 광장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광화문 광장도 마찬가지다. 국가 상징거리인 광화문은 목숨을 걸고 건너가야 할 정도로 차도가 너무 넓어서 문제가 되었던 공간이다. 여기에 가운데 차선을 이용하여 너비 34m, 길이 555m의 역사문화 체험광장이 조성된 것이 2009년 8월의 일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어 학생들에게 역사문화 체험과 교육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한여름에 뙤약볕을 피하기도 어렵고,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마땅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차량소음 때문에 시끄럽고 주의가 분산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월간 경실련 도시인 원고 - 류중석 - 2013년 7_8월호 - 사진5.광화문광장(출처_wow.seoul.go.kr.JPG

▲ 국가상징거리에 조성된 광화문 광장

  

서울 도심중의 도심인 광화문과 시청 부근에 여러 가지가 불만족스럽기는 하지만 두 개의 광장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과거의 광장이 독재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정치적 공간으로 이용되었다면, 오늘날의 광장은 시민들이 편하게 와서 쉬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공간정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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