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분양원가 공개 반대 7가지 이유’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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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4.03.02. 조회수 1014
칼럼

 


 임덕호(한양대학교 디지털경제학부 교수)


  


  지난 2월 18일 정부는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한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통해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7가지 경제적 근거를 제시했다(매일경제, 2004년 2월 19일자). 그러나 최근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분양원가 공개요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근시안적이고 너무 안이하다는 생각에 실망을 넘어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분양원가 공개가 경제적 논리에 반하며 매우 위험한 정책수단이라고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소위 “매우 위험한 정책수단”이란 분양원가를 공개할 경우 주택업계의 폭리가 사실로 입증되고, 그 결과 분양가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그래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현재의 주택시장구조가 경제적 논리에 합당하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참을 만큼 참아왔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경제적 논리를 주장하기 전에 오죽하면 소비자들이 원가공개를 요구하고 나섰겠는가, 그리고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부터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백번천번 양보를 하더라도 “분양원가 공개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성급히 결론부터 내리기 전에 지극히 비정상적인 주택시장구조를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경제적 논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주택을 일반 상품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주택은 국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과 연결되는 상품이고, 평생 저축해도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 내구재이며, 더욱이 주택매매가격의 폭등은 필연적으로 임대료의 폭등으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주택을 전공하지 않은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주택을 일반 상품 보듯이 취급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주택의 특성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소위 정부가 말하는 ‘경제적 논리’라는 것도 주택정책을 주도하는 건교부가 아니라 다른 경제부처에서 나온 발상이 아닌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소위 ‘경제적 논리’라고 내세운 ‘분양원가 공개 반대 7가지 이유’도 주택의 특성과 현재의 주택시장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우선 정부가 주장하는 7가지 부작용의 대부분은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규제로 이어진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만 타당성이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과거 20여 년 동안 시행했던 분양가 규제가 어떠한 폐해(부실아파트 양산, 주택공급 위축, 투기조장, 불로소득 발생, 환경파괴, 주택과소비, .......)를 초래했는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경실련과 같은 일부 시민단체들이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면서도 분양가 규제에는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들은 시공사나 시행사가 손해를 보고 분양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주택시장구조를 악용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그냥 덮어버리려는 정부의 발상이야말로 ‘경제적 논리’에 반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분양원가 공개에 따른 7가지 부작용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


(관련기사 : 정부, 분양원가 공개 반대 7가지 이유 )


 


  첫째, 부동산 투기 재연?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제도가 폐지되면 부동산 투기가 다시 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분양원가 공개 이후 분양가 규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 주장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는 현재와 같이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되고 있는 상태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벌써 잊고 있는 모양이다. 부동산 투기는 가격규제도 중요하지만 더 큰 원인은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적 논리’를 무시하고 선분양제를 고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 신규아파트 공급 차질?


 


정부는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들끓는 여론으로 분양가 규제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신규아파트 공급이 줄어들면 내집마련 기회는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정부가 여론에 밀려 분양가 규제를 우려할 정도라면, 주택업계는 분명 폭리를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원가가 공개되더라도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은 냉철한 판단력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분양가 규제를 더 이상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경영의 투명화를 요구하고 폭리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주택시장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아파트 원가(?) 상승?


 


정부는 원가공개에 따른 분양가 규제를 전제로 신규아파트 공급이 감소하기 때문에 규제된 분양가는 하락하더라도 아파트 원가(원가가 아니라 기존 아파트의 거래가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임)가 상승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분양가 규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분양가 규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넷째, 실수요 서민층만 피해를 본다?


 


정부는 아파트 건설에 따른 이익이 줄어들면 건설업체는 다른 건설 분야에 치중하거나 사업영역을 다각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요 서민층만 피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아마 아파트 건설에서 발생하는 수익률이 10% 정도라면 소비자들이 이처럼 원가공개를 주장하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아파트 건설에 따른 이익이 줄면 건설회사들이 다른 건설 분야에 치중한다고 주장하는 데 도대체 정부가 바라보는 건설사업의 적정이윤은 얼마인지, 더 나아가 원래 건설사업이란 떼돈을 벌어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정부의 주장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망각한 데서 비롯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에 정부가 투입한 예산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저소득층의 주택문제를 지극히 비정상적인 주택시장구조를 이용하여 민간부문으로부터 거둬들인 자금에만 의존하려는 발상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많은 선진국들이 매년 전체예산의 2-3%를 임대주택건설에 투입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재정투자 실적은 어떠한가? 오죽하면 주택공사나 지자체의 도시개발공사가 나서서 폭리(?)를 취한 자금으로 영세민들을 위한 주택건설에 나서고 있겠는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안정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매년 정부예산의 1% 정도는 임대주택건설에 직접 투자해야 한다.


 


  다섯째,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아파트 공사장은 분양가 인하 요구와 이에 대한 논쟁으로 각종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그동안 책정된 분양원가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될 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민간부문의 원가를 직접 공개하도록 요구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의 원가를 우선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원가공개를 유보하는 대신 폭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선분양제도를 후분양제도로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한다.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선분양제도를 후분양제도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주택시장이 정상을 되찾도록 하는 지름길이자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논리’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주택시장 왜곡?


아파트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가격도 원가개념이 아니라 시장수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가 주택에 한해서는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편향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친절하게도 국산 휴대폰이 해외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은 원가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국산 휴대폰을 찾는 실수요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직까지도 휴대폰시장과 주택시장구조가 어떻게 다른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살 때 아파트처럼 실물을 보지도 않고 단지 팜플렛이나 샘플에서 정보를 얻은 채 내 돈 미리 다 지불하고 나서 3년 뒤에나 휴대폰을 인수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부는 공급자 중심의 주택시장이 정상적인 주택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현재의 주택시장구조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현행 선분양제도하에서 주택시장의 악순환(중고주택가격 인상 ⇒ 분양가 인상 ⇒ 중고주택가격 인상 ⇒ 분양가 인상)이 반복되면서 폭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현재의 주택시장구조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부가 후분양제를 조속히 도입하여 새아파트간에, 새아파트와 중고아파트간에, 그리고 매매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간에 진정한 경쟁체재가 도입되어 현재와 같은 폭리를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시장왜곡을 막는 지름길이며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논리’가 아닌가?


 


  일곱째, 기업경영 자율성 침해?


 


정부는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노조의 경영간섭 등으로 기업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작은 구멍가게’라도 영업의 비밀은 보장돼야 하며 이는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참으로 안이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부는 기업의 입장을 두둔하기 전에 그동안 주택업체가 비정상적인 주택시장구조를 이용하여 어떤 행포를 부렸기에 오죽하면 소비자들이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을까부터 생각하는 게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시장구조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정부가 취할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그동안 주택업계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시장경제원리를 줄기차게 주장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1995년 아파트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는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때 주택업계의 일관된 주장은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분양가 규제부터 자율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정부는 1998년 선분양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공급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분양가 전면 자율화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2002년 상반기부터 주택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2003년 11월에는 한국주택학회에서 후분양제의 도입 필요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으며, 주택업계 종사자들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후분양제 도입에 반발할 경우 소비자로부터 심각한 원가공개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주택업계는 후분양제 도입이 원칙이며 시장원리에도 맞지만 후분양제를 도입할 경우 주택건설업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원리에만 의존할 수 없는 것이 주택업계의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가도 분양원가 공개 압력이 높아지자 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택업계가 바라보는 진정한 시장경제원리란 무엇인지 확실한 정의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폭리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왜곡된 주택시장구조를 바로 잡는 정부의 노력과 왜곡된 가격을 거부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새차가 중고차보다 비싼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새아파트가 중고아파트보다 비싼 것은 쉽게 용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새아파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분양가가 대폭 인하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거래되고 있는 중고아파트 가격은 훨씬 더 큰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더라도 민영아파트의 원가까지 스스로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공공아파트의 원가공개를 통해 민영아파트의 원가를 추정할 수 있어야 하며, 시민단체들은 전문가나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양심세력들을 발굴하여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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