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간사, 8개월 간의 성장통을 겪다

관리자
발행일 2008.02.22. 조회수 1693
스토리

초보 간사, 8개월 간의 성장통을 겪다


2008년 2월 20일. 작년 7월부터 시작되어 약 8개월에 걸친 첫 사회생활을 마감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쓰고 있는 나도 ‘겨우 8개월 가지고 글까지 쓰냐’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내 길지 않은 인생의 최근 몇 년 동안 나름대로 가장 극적(?)인 시간을 보냈노라 말할 수 있기에 그리 거창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그 동안 경실련에서 내가 해 왔던 업무는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와 경실련 국제위원회의 일이다. 물론 이 두 업무 모두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큰 틀로 묶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업무들을 소개하고 그 간 느꼈던 점을 위주로 말씀드리겠다.


먼저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21개의 시민단체와 개발NGO 단체들의 연대체로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전 세계 인구의 1/3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절대 빈곤의 퇴치와 이를 위한 각국의 협력을 촉구할 것을 알려내기 위해 설립되었다.

지난 2005년에 경실련과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를 주축으로 출범한 네트워크는 그 동안 빈곤퇴치를 상징하는 흰 팔찌인 ‘화이트밴드’를 내세운 ‘화이트밴드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작년 2007년은 새천년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달성 목표 년도인 2015년으로 가는 중간 년도라는 의미를 지닌 해였기 때문에, 네트워크에서는 대대적으로 화이트밴드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지구촌 이슈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목표를 세웠다.

나는 참여단체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조정, 회의 소집을 위해 화이트밴드 캠페인을 비롯한 네트워크 사업을 전담할 인력으로서 2007년 7월부터 전담간사로 채용되었다. 즉 ‘엄밀히 말하면’ 특정한 어느 단체의 소속도 아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들 간의 의사 전달과 이에 필요한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주 역할이 ‘의사소통 및 조정, 회의소집과 이에 필요한 실무’ 라는 말을 들으면 갸우뚱할 사람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나 모호하고 와닿지 않아 감을 잡아나가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생활 동안 인문학이라는 다소 현실감 떨어지는 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데다가 대외활동도 그리 활발히 하지 않던 내가 갑자기 실무가로서 적응해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장 2007년 10월 17일로 정해진 화이트밴드 캠페인의 메인 행사인 콘서트를 치르기 위해 수십 번의 전화통화와 이메일,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열 개가 넘는 단체들의 의견을 수합하고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도(?)의 눈치와 센스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또한 사무실을 두고 일을 했던 경실련의 ‘알아서 배우고 스스로 해 나가는’ 업무 분위기는 실무자에게 업무 안에서의 주체적인 영역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초짜 간사에게는 목자를 찾아 헤매는 어린 양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그 과정에서 참 서투른 실수도 많이 하고 주위 분들께 민폐도 끼친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어쨌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화이트밴드 캠페인과 지구촌 포럼 등 네트워크의 2007년 행사를 나름 무사히 치렀다.

그리고 내 업무의 또 한 축으로는, 경실련 국제위원회에서 주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ODA Watch'가 있었다. ODA Watch는 우리나라가 중앙 및 지방정부를 포함한 공적 차원에서 개발도상국에 개발을 위해 제공하는 원조인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가 잘 쓰이고 있는지 감사하기 위해 전문가 선생님들과 NGO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무자들, 그리고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단원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ODA Watch 는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의 ODA를 ’Watch'하기 위한 일환으로 연구, 모니터링, 토론회 개최 등을 비롯하여 매달 있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주요 사건, 행사 등을 e-뉴스레터로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수투성이에 서투르기만 했던 지난 8개월을 돌이켜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학생 시절 막연하게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기회를 누릴 수 있었고 그것도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와 경실련 국제위원회라는 두 축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넓게 볼 수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막연히 UN과 같은 국제기구, 아니면 개발도상국에 가서 구호 물자를 나누어 주거나 재난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국제 NGO들의 모습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개발 사업에 몸담고 있는 개발 NGO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을 감시하고 더 좋은 활동을 위해 정책을 제안하는 소위 ‘애드보커시(Advocacy)' 활동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이 화이트밴드 캠페인이라는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았다. 그 누구도 직접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에 연대 사업은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열매를 일구어 냈을 때 정부, 기업, 나아가 국민들에게까지 우리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고 지평을 확대해나가는 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실련 국제위원회의 ODA Watch를 통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우리나라의 대외협력 및 원조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고 다양한 외국 사례를 공부할 수 있었다. 매달 열리는 국제개발협력 관련 행사, 정부의 움직임, 외국 NGO의 사례 등등을 찾고 공부하면서 이를 통하여 현재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너무나 갈 길이 먼 우리나라의 대외원조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물론 정책 제언과 감시를 위한 실질적인 활동은 결코 학생 신분이었을 때는 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국내의 다른 주요 이슈와 마찬가지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도 경실련만의 특유의 에너지와 유연함, 노하우를 귓등으로나마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친한 척 하면서 전화하기, 이메일 쓰기, 내가 원하는 바를 잘 포장해서 전달하기 등 사회생활의 아주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부터(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드디어 사회의 때를 묻혀왔다고들 한다.) 제안서 쓰기, 회의 소집하기 등 실질적인 진행과 보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지 않은 일이 없었지만 새로운 능력(?)과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데에 필요한 성장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맺었던 수많은 인연들에게 더할 수 없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은재 전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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