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정판결을 환영한다.

관리자
발행일 2008.11.29. 조회수 1744
사회

법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정을 계기로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한 법제화를 촉구한다.


오늘(28일), 법원이 국내 최초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경실련은 회복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경우 환자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불필요하고 과도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법의 절차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진취적 판결을 환영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존엄사 혹은 연명치료중단은 찬반논쟁만 거듭하며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을 뿐, 지난 20~30년 동안 이를 구체화 하는 작업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이 지속적인 식물상태에 있는 환자들이 적지 않게 있음에도 회복 불가능하고 치료할 수 없는 말기상태의 환자가 통증이나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성과 자아상실과 같은 인격성을 위협하는 증상들로부터 원하지 않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는 법에 의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가족의 경우처럼 환자가 평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소신을 가족들에게 밝힌 경우나 또 환자의 뜻이 문서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라 해도 현재 의료진은 환자의 뜻대로 생명연장 시술을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없다. 현행법상 해당 의료진의 행위는 살인죄, 살인방조죄 내지 진료거부금지 위반행위 등으로 형사책임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을 이유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강행하거나 방어진료, 과잉진료로 환자와의 갈등을 빚으면서 ‘존엄사’와 관련한 우리사회의 진일보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온 것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법원 판결은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환자본인의 생전의사표시, 성격, 가치관, 종교관, 생활태도, 가족간의 친밀도, 재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추정적 의사표시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사실상 우리 정서상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거나, 질병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사전에 ‘치료중단요청서’를 쓰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없고 영구적 무의식 상태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혼수상태나 지속적인 식물인간상태의 경우에 한해, 치료가 불가능하고 회복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에 이르는 경우에 한해 고민되는 것이다. 즉,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지를 밝힐 때 의사에게 치료 의무를 면제하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로 하여금 죽음의 과정에 대한 선택을 하도록 하고 그러한 의사결정을 존중하여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생명권과 가장 민감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말기치료 단계에서의 환자들의 자신의 의사결정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인위적으로 과도하게 생명을 중단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나,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관계없이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한계를 지어야 할 것이다. 이에 경실련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의사나 가족들이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포기하는 시도로 몰아가는 경향에 대해서는 결단코 반대하며, 현대 의학으로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고, 치료할 수 없는 환자에게 단지 인위적으로 생명만 연장하는데 불과한 생명유지 장치를 환자 스스로가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을 존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말기에 적절한 치료를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우리 실정과 인식을 반영하여 말기환자의 인권적 차원에서 생전 유언 및 사전의료지시서 등의 제도적 장치 및 존엄한 죽음과 관련된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법제화 방안들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문의 : 사회정책팀 02-3673-2142]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