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서 산 책]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관리자
발행일 2022.09.30. 조회수 9654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우리들이야기(6)혜화에서 산 책]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 <페스트>, 그리고 <달까지 가자> -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간사


2019년 12월, ‘코로나19’라는 낯선 이름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유행했 던 전염병들처럼 잠시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이 바이러스는 조금씩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색해졌고, 사회적거리두기라는 말에 익숙해졌으며, 주변에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식당과 카페를 비롯한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는 끝이라는 희망을 꿈꾸면 다시 또 절망을 안겨주는 코로나19의 시대, 희망을 꿈꾸는 우리를 위해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페스트>,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가장 많이 소개된 책은 아마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일 것입니다. 페스트는 우리가 흔히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질병입니다. 중세시대 페스트의 대유행으로 유럽인구의 1/3정도가 사 망하는 대재앙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소설 <페스트>는 중세시대는 아니고, 1940년대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오랑에 있는 의사 리유1)의 시선을 따라 갑니다. 리유는 오랑에 피를 토하면서 죽는 쥐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죽은 쥐의 규모는 점점 커져 시에서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 니다. 리유는 이것이 페스트라는 것을 알아채고 시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시는 도시 전체를 폐쇄하기로 결정하는데요.


이후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증상을 보인 사람은 격리시설에 수용되고, 같이 사는 가족들도 일정 기간 격리됩니다. 그리고 사망자는 가족조차 시신을 볼 수 없고, 바로 화장을 하죠. 거리에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도시는 조금씩 생기를 잃어갑니다. 마치 2020년, 2021년의 어느 도시의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습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페스트>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대를 만들어서 환자를 옮기고, 돕는 사람들, 계속해서 새로운 혈청을 만들어서 치료제를 기다리는 사람들, 통계를 내서 페스트의 확산 정도를 파악하는 사람들까지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희망을 기다립니다. 80여년의 시간이 흘러 소설 속 이야기는 다시 현실로 재현됐습니다. 우리도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코로나의 끝을 기다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속 세계보다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청년들에게 특히나 그럴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찾기는 힘들어졌고, 자영업으로도 살아남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집값도, 물가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르기만 할 뿐, 청년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절망의 시대의 희망가, <달까지 가자>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을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지금과 닮은 과거를 다루고 있다면,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현실의 절망을 마주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며 불어 닥친 2030세대의 영끌 투자 열풍! 그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건 부동산도 주식도 아닌 바로 가상화폐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성공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며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라고 할 정도로 너도나도 가상화폐 열풍에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는데요.


<달까지 가자>는 바로 이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 인생을 건 3명의 흙수저 직장인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세 명의 주인공은 규모가 있는 제과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다해는 형편에 맞게 집을 구해야 하다보니 투룸을 꿈도 꾸지 못하고, 원룸 한편에 작은 공간이 더 있는 1.2룸에도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을 사는 그들에게 이더리움이라는 가상화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쳐서 세 사람 모두 이더리움에 인생을 걸게 되는데요. 소설에서 나오는 표현들을 빌리자면 이들에게는 이더리움이 노답인생을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잠깐 열린 유일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청년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받는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더라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면 36년이 걸린다는 경실련의 조사 결과처럼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소위 ‘영끌’을 하면서까지 인생을 건 도박에 나서게 된 거겠죠. 이 유일한 탈출구를 통해 희망을 찾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희망가를 들을 수 없는 시대, ‘달까지 가자2)’를 외치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노래가 필요합니다.


희망보다 절망이 익숙한 시기, 희망을 섣불리 말하기에는 절망이 반복되는 시기. 막막한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면 현실을 잠시 잊고, 이 소설들과 함께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요?


1) 번역본에 따라 리외, 리유 등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2) ‘달까지’ 라는 표현은 차트 급상승을 기원하는 코인 시장 참여자들의 은어라고 합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