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 관련 재경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대한 경실련 입장

관리자
발행일 2003.10.01. 조회수 2613
경제

  재정경제부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현행 출자총액제한제와 관련하여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지난 19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서울대학교 기업경쟁력센터에 연구용역을 의뢰하여 작성한 것이다.


1. 서울대 보고서는 역설적으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심각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서울대 보고서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실질 소유권보다 의결권을 얼마나 더 행사하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로서 의결권 승수 지표를 개발하였다. 즉, 총수의 직접지분이 낮고 계열사를 통한 출자비율이 높을수록 실질 소유권과 의결권 사이의 괴리를 측정하는 의결권승수가 높게 나타난다. 예상한대로 대부분의 재벌들이 1.5를 넘어 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가 심각함을 보여 주었다.


  곧 이어 발표된 KDI연구보고서는 유사한 개념으로 소유와 지배의 괴리도를 분석 발표하였다. 한화의 경우 총수일가가 10.2%의 소유지분만으로 54.4%의 의결권을 행사해 괴리도가 44.3%포인트에 달할 정도이며, 이 같은 괴리도는 동양 39.4%, 두산 37%, 한솔 31.6%, 영풍 31.1%, 삼성 22.8%, LG 26.0%, 현대차 27.1%, SK 29.3% 등 4대 재벌을 비롯하여 많은 중견재벌의 괴리도가 매우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그동안 <경실련>이 주장한 대로 재벌 지배구조의 왜곡이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재차 확인시켜 준 것이며,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강고하게 하는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2. 서울대 보고서는 시장규율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계열사간 복잡한 출자를 통해 구축된 기업집단체제는 소액주주의 간접화를 통한 소액주주권의 행사를 억제하고 적대적 M&A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시장감시기능의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감시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자산 2조 이상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비상장회사들에 대해 상장회사에 준하는 공시 및 회계보고의 의무를 부과하는 동시 결합재무제표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지주회사와 기업집단의 모든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출자회사에 대한 대표소송을 인정하는 이중대표소송까지 제안'하고 있다. 집단소송제 역시 '모든 상장-등록기업까지 확대하고 그 대상행위도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부실감사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배임 및 배임교사행위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므로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이는 바로 그동안 <경실련>이 주장해 온 내용이며, 따라서 재경부가 하루 속히 시장규율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는 서울대 보고서의 내용을 곡해하여 거두절미하고 출자총액제한제의 완화만을 주장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경실련>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3. 재경부의 이와 같은 행태는 그 동안 재계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줄기차게 제기해 온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저해하여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대기업집단에 대한 시장감시장치와 소유구조가 개선될 때까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집단 정책의 기본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재경부가 이 같이 서울대 보고서 내용의 곡해를 통해 재경부가 재벌개혁을 외면하고 경기부양에 집착한채 재계의 주장에 부화뇌동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출자규제 완화가 재벌의 실물투자를 증대시키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공정위의 KDI연구용역 보고서가 발표되기 직전에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4. <경실련>은 재벌의 출자는 투자가 아닌, 지배목적이며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의 가공자본을 통한 재벌총수 일인지배체제구축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임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경실련>은 현재 재벌의 행태를 판단할 때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서울대 보고서가 의결권 승수를 밝힌 것을 높이 평가하지만, 의결권 승수가 높다는 것이 출자총액제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거가 될 수 있을지언정 반대로 완화해야 한다는 보고서의 주장에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서울대 보고서의 내용이 재계가 주장하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에 대한 근거없는 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 보고서의 가장 중심적 내용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효율적인 출자마저도 규제한다'는 것이다.


즉, 이 제도가 생산적 성격의 투자마저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는 획일적인 규제로서 투자의 성격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비효율적인 규제방식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그 어떤 객관적 증거와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98년 2월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등을 이유로 폐지되었으나, 이때 재벌은 구조조정, 신규사업 진출, 위험분산 등을 통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생산적 투자에 나서지 않고,  실질적인 자기자본 증가 없이 부채비율을 낮추는 수단으로 계열사간 출자를 늘리거나  일부 부실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여 핵심역량위주의 구조조정을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2001년 4월 재도입,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만약 이 보고서의 주장처럼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생산적 투자를 막았다면 이 기간에 당연히 재벌은 신속한 구조조정,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기업경쟁력을 제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출자액이 17조원에서 50조원으로 증가하여 가공자본을 통한 기존의 재벌체제만을 공고히 했을 뿐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1998년초부터 2001년까지 30대 기업집단이 보인 출자행태를 분석한 이동걸, 이건범 박사의 연구결과를 언급하면서 출자와 실무투자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이들에 주장에 대해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계량적 결과로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효과가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주장만 있을 뿐이지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보고서가 출자규제가 투자를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근거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입증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주장한다면 이는 이전에 재계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이 제도의 폐지를 강변했던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이 보고서는 의결권 승수 지표가 낮아 소유권과 의결권 간의 괴리가 적은 기업은 우선적으로 출자제한을 완화시켜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현재와 같은 재벌의 계열사지배상황에서 일응 타당한 면이 있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의결수승수 기준에 따라 출자한도를 완화시켜 주자고 하는데, 그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다.  이 보고서는 일례로 의결권승수가 1.5이하인 기업은 총 출자한도를 100%, 1.25이하인 기업은 150%로 완화시켜주자고 하는데, 출자한도 완화의 기준인 1.5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의결권승수가 1.5이하가 건전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인지, 또는 이 정도 기준이면 기업이 생산적 목적의 출자에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지 등에 대해 그 어디에도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또한 의결권승수가 1.5가 되면 기업입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도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


  다음으로, 의결권승수 1.5이하 기업에 대해서는 출자한도 완화라는 나름대로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1.5 이상인 기업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제재나 패널티가 없다는 면에서 이 같은 기준이 형평성에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현행 출자총액제한이 개별기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획일적 규제라는 규제기준의 문제점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정기준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규제완화를 주장하면서 그 기준 이상의 기업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없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규제기준을 제시함으로서 스스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주장은 이 보고서가 출자총액제한제의 규제완화만을 염두해 두고 작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5. 결론적으로 재경부 연구용역 보고서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추론컨대, 역설적으로 출자총액제한제 유지의 필요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실증적 근거없는 다소 무리한 주장으로 재계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주장을 합리화해 주고 있다고 본다. 또한 출자총액제한제가 기업의 생산적 투자를 가로 막고 있다는 그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이를 빌미로 기존의 출자총액제한제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재벌의 일인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재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점에서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고 본다.


<문의 : 정책실 02-771-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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