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기-행] 처음엔 태백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2.05. 조회수 47559
스토리

[월간경실련 1,2월호][윤서기-행]

처음엔 태백

최윤석 회원

 

 새해가 밝기도 했거니와, 첫 번째 원고이니만큼 ‘시작’과 관련된 장소를 찾다가 태백을 선택했다. AI의 위협을 걱정하고 달 뒤편에 비행선을 보내는 시대라지만, 왠지 모르게 매년 이맘때가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을 손에 쥐고 싶어진다. 빠짐없이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순수한 성의가 아닐까 싶다. 또다시 어느 틈엔가 부쩍 가까워져 있을 연말의 스스로에 대한.
 한강과 낙동강은 물론 한반도 여러 정맥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예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옛사람들에게는 태백산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한 장소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그곳에서는 까마득한 상고시대부터 무언가를 염원하는 제사가 행해졌다. 오늘날에도 천제단에서는 단군왕검을 기리는 제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DNA에 각인된 태고의 기억이 나를 태백으로 이끌었다는 말인데, 풀어놓고 보니 이런 ‘도를 아십니까’ 류의 장광설도 신년 벽두니까 가능하지 싶다.

황지(潢池), 전설 따라 천삼백 리
 퇴근을 조금 일찍 하고 곧장 태백으로 내달렸다. 창문을 다 올렸으니, 찬바람이 들어올 리 없는데도 티 없이 맑은 하늘에 눈이 시렸다. 반대로 오후의 햇살은 헐벗은 숲의 정경에까지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기에, 메마른 나무들로 뒤덮인 산 능선이 마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커다란 리트리버의 등허리처럼 윤기나게 빛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태백을 위시한 한강수계 영서산간의 도시들을 떠올릴 때 가장 앞에 있는 이미지는 이 자연일 것이다.
 그런 태백에서 유일하게 야경 명소로 알려진 곳이 황지연못이다. 규모는 작지만, 소도시가 심혈을 기울여 가꾸고 매만진 도심 속의 쉼터는 나름의 아기자기한 운치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작은 웅덩이에서 장장 천삼백리에 이르는 낙동강 물줄기가 시작된다. 그 흥미로운 어필 포인트는 황지연못으로 하여금 일반적인 도심 공원과는 다른 아우라를 자아내게 만든다.


 황지(潢池)의 황(潢)은 옛날 그 터에 살았다는 황 부자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요약하자면 그 황씨 성의 부자가 집에 들른 탁발승을 푸대접하자 얼마 못 가 대들보며 서까래가 폭삭 주저앉아 커다란 연못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황부자의 마음씨 착한 며느리. 그녀는 황 씨가 승려에게 하는 양을 전전긍긍 지켜보다 승려가 떠나기 전 시부의 눈을 피해 몰래 바랑에 밥 한 주걱을 찔러준다. 그 선심에 감동한 승려는 장차 닥칠 그 집의 운명에 대해 천기를 누설하며 곧장 멀리 떠날 것을 권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그 말을 지킬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지하 세계의 출구 앞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랬듯이, 소돔을 빠져나오며 롯의 아내가 그랬듯이. 황 씨의 집이 폭삭 주저앉는 굉음이 등 뒤에서 들려오자, 그녀는 냅다 뒤를 돌아버리고 말았고 결국 금기를 어긴 이유로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녀의 기구한 팔자는 인류가 무의식 속에 이야기의 형태로 공명해 온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두려움을 건드린다. 질서를 어긴 자의 최후랄까. 클리셰(cliché) 범벅이지만 원님들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의 설화가 전국 팔도기백여 연못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숨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검룡소와 바람의 언덕
 이튿날에는 아침부터 원 없이 눈 구경을 했다. 최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다시 읽으며 눈 덮인 산간지방의 풍경이 눈에 선하였는지라, 작일에 눈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던 차였다. 먼저 찾은 곳은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강이 시작되는 그 웅덩이 주변은 관광지로서 그리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약 1.5km 길이의 트레킹 코스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검룡소로 가는 길임을 알리는 입석을 지나 숲에 들어서자, 찬 공기가 허파로 훅 들이쳤다. 밭은기침이 순간 튀어나왔으나, 따듯한 차 안에서 막 나온 참이라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 아랫목에 있다가 반가운 친지의 기척을 듣고 창호문을 열었을 때의 심상이 떠올랐다. 운 좋게도 그 시각 그 길에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뒤축을 부드럽게 감싸며 깨어나는 잔눈의 촉감을 느끼며 몽롱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울창창하게 웃자란 나무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그늘진 야생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낄 법도 했건만 당시에는 오히려 그 품이 안온하게 느껴졌다. 이따금 잔가지가 눈의 무게를 훌훌 털어낼 때면 하늘과 나 사이에 빛의 가루가 흩날렸다. 정말이지 동화 같은 순간이었다.

 반대로 바람의 언덕에서는 탁 트인 공간에서 압도적인 풍광을 마주했다. 그곳에 가면 문자 그대로의 눈밭을 만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름, 가을 싱싱한 배추로 가득했을 언덕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가득했다. 드넓은 들판 위에서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그 속 시원한 전경이 검룡소로 이어지던 오솔길과 극적으로 대비되어 신선한 반전을 일으켰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차를 움직이는 동안 시시각각 바뀌는 뷰를 체감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면 그때까지 올라온 길은 물론이거니와 저 너머의 다른 능선, 그 너머의 능선 그리고 그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진 첩산(疊山)이 눈에 들어온다. 꿈틀거리는 이 땅의 맥(脈)을 직접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무신론자도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왜인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로 사람은 처절한 고독을 실감하기도 한다.

철암역, 가장 어두운 태백
 신화와 전설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장소들을 돌고 돌아 여정의 끝에 찾은 곳은 사람 사는 세상, 철암이었다. 누가 뭐래도 태백(太白)의 근현대사를 가장 잘 상징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게(太) 밝기(白)보다는 시각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가장 어두운 곳이 철암이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역시나 네 시가 채 되기도 전에 역전(驛前)으로 길게 응달이 졌다. 탄 빛이 섞여서일까. 그럴 리 없겠지만 선탄장 아래로 늘어진 그늘이 어쩐지 더 어둡게 보인다.


 한창 번성할 때는 동네 똥개마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으나 석탄산업이 쇠퇴하며 급격하게 몰락한 철암. 한때는 그러한 서사 자체가 주목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흘러간 유행가가 되어버렸다. 너무 많은 곳이 망했다. 경제학 교과서에 실리기에는 디트로이트보다 규모가 작고, 사회학 교과서에 실리기에는 군산의 사례가 더 시의성이 있다. 무엇보다 소멸의 문제는 이제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러나 그 압도적으로 망해버린 도시에 남은 옛 영화의 흔적에서 누군가는 기묘한 에지(Edge)를 느끼는 듯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부러 그곳을 찾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반쯤은 무너져 내린 로마의 원형극장을 굳이 돈 내고 보러 가는 느낌이랄까. 이에 조응하는 태백시의 세심한 배려들도 흐뭇하다. 친절한 안내선, 관리가 잘된 조형물, 적절히 업데이트되는 전시관의 콘텐츠, 깨끗한 광장 등. 동토를 뚫고 나오려는 봄동의 몸부림처럼 보였다고 말하면 너무 천진한 비유려나. 어쨌든 그건 또 그 나름의 자극이 되었다.

나가며
 철암 탄광문화장터 내 식당에서 저녁에 가까운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물닭갈비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1인분 주문이 불가하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2인분을 주문했는데 남김없이 먹었다. 입이 짧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계산하고 나서며 그 집 명함을 주머니에 깊이 넣었다. 어쩐지 지상파 저녁 정보프로 같아서 하기 싫은 말이지만,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태백이다. 
 아쉬움이라면 원고 일정과 기간이 안 맞아 곧 있을 태백산 눈축제 기간(2024.1.26.~2.4.)에 방문하지 못했다는 정도. 3년 만에 재개되는,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유형의 지역 행사이니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방문해 보시기를 권한다. 물론 지면에 소개한 다른 명소들도 들러 보시기를. 내게 찾아왔던 영감의 순간이, 또 어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이 겨울 태백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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