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 시리즈 칼럼7] 참여민주주의·숙의민주주의는 가능할까?

관리자
발행일 2017.11.28. 조회수 1241
칼럼

참여민주주의·숙의민주주의는 가능할까?


-대구시민원탁회의 사례를 통해 본 참여민주주의·숙의민주주의-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협치의 장, 대구시민원탁회의


최근 들어 상당수의 지방정부가 정보통신기술과 결합된 원탁회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원탁회의는 특정한 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을 제안하거나 결정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선투표시스템, 실시간 의견 취합과 분석이 가능한 웹토론 시스템의 도입으로 다수의 시민이 한 자리에 모여 ‘대규모 타운미팅’이 가능해진 결과다. ‘상하개념이 없는 좌석배치로 모든 참가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해 토론’하는 원탁회의 방식은 정치적인 의미와 파급효과도 크다.

대구광역시는 원탁회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방정부다. ‘시민원탁회의 운영 규정’, ‘시민원탁회의 운영조례’ 등으로 원탁회의를 제도화해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구시는 시민원탁회의를 ‘시민이 주인으로 참여하여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소통과 학습의 장’이라고 규정하고, ‘대구혁신의 롤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2015년 12월에 제정된 ‘대구광역시 시민원탁회의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원탁회의 운영조례)’에 따라 대구 시민이 직접 참여해 시정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고 있다. 시민원탁회의는 년 2회 개최를 원칙으로 하고, 참가자는 공개모집하며, 회의는 참가자 전원의 합의도출 방식으로 운영한다. 시민원탁회의에 상정하는 의제는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계, 경제계 등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20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된 원탁회의 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한 의제와 시민 300명 이상이 연서해 추천한 의제 중에서 대구시장이 선정한다. 아울러 시는 원탁회의 결과를 반영해 세부실행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하며, 예산이 소요되는 경우에는 이를 확보하고, 회의결과에 대한 추진상황을 정기적으로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대구시민원탁회의는 2014년 9월 16일, ‘안전한 도시 대구를 만들자’라는 주제로 412명의 시민이 참가한 원탁회의를 시작으로 모두 11회 개최됐다. 주제는 ‘축제’, ‘도시기본계획’, ‘교통안전’, ‘청년’, ‘사회복지’, ‘여성’, ‘주민참여예산’, ‘자원봉사’, ‘에너지’, ‘마을공동체’ 등 매우 다양한 편이다. 300여명에서 500여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10명 내외가 앉는 원탁에 모여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전체 진행자가 참가자들이 제안한 의견을 빈도별로 분류해 참가자 전원에게 공개한다. 참가자들은 의견의 흐름을 확인하게 한 후 상호토론을 이어가고, 진행자는 참가자들의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무선전자 현장투표로 최종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


하지만 시민원탁회의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응은 ‘대구시정을 이끄는 한 축’, ‘세대통합과 소통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대구식 협치의 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예산을 낭비하는 정치쇼’라는 혹평까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논란을 야기하지 않을 정도로 무난한 주제만을 다루고, 원탁회의의 형식만 취한 대구시의 정치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대구시의 과도한 의미부여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민원탁회의에 비판적인 시민들도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소통과 학습의 장’이라는 의미와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편이다.

대구시민원탁회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제시한 핵심 공약 중의 하나였다. 지역사회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도입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구광역시의회가 시정 현안이나 주요 정책사항을 일반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는 ‘헌법 상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고, ‘참여자 구성과 의견반영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원탁회의를 시의회와 아무 상의나 조율 없이 추진하는 것은 시의회의 기능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여긴 것이다.

대구시의원 30명 중 1명을 제외한 29명의 의원이 대구시장과 같은 정당 소속이었는데도 원탁회의 도입은 쉽지 않았다. 결국 대구시의회는 여론의 비판과 “시의회에 충분히 이해를 구하지 않고 추진해 송구하다”는 대구시장의 유감 표명을 받아들이고 ‘안전’을 주제로 한 원탁회의 개최에 동의하기에 이른다. 대구시의회는 이후에도 ‘원탁회의 운영 규정’에 따라 대구시가 요청한 운영위원회 위원을 추천하지 않는 등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15년 12월, ‘대구광역시 시민원탁회의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민원탁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만들어주었지만, 대구시의회는 여전히 원탁회에 부정적이다.

대구시민원탁회의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미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조례의 제정 및 개·폐 청구제도, 주민감사청구제도, 주민소송제, 주민참여예산제 등 직접민주주의, 주민참여제도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대구광역시의회가 시민원탁회의 적대적인 태도까지 보인 것은 주민자치를 사실상 부정한 것과 다름없다. 지방정부, 지방정치마저 외면하거나 소극적일 정도로 주민자치의 길은 아직은 멀고 험하다.

 

시민들에 의한, 시민들에 의한 원탁회의가 돼야


담당부서 입장에서는 원탁회의는 매우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원탁회의 토론주제로 결정되면 참가자 모집, 세부실행계획 수립·시행 등 일과 부담이 늘어나는데다 원탁회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대구시의회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탁회의 운영조례’에 따르면 원탁회의의 의제는 민간위원 위주로 구성된 원탁회의 운영위원회와 시민 300명 이상이 연서하여 추천한 의제 중에서 선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300명 이상 시민의 연서하여 추천한 의제는 한 건도 없었다. 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한 의제도 모두 대구시 담당부서에서 제안한 경우다. 토론주제와 세부토론주제, 사전조사 내용 선정 등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운영위원회에서 담당하지만, 원탁회의의 핵심인 토론주제부터 대구시가 설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까지 진행된 시민원탁회의에는 회당 300명∼500명이 시민이 참여했다. 토론주제에 따라 참가자들의 구성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50대 이상의 남성 참가자들이 특히 많은 편이다. 이 중 100여 명은 거의 고정적인 참가자라고 한다. 대구시가 참가자를 400∼500명으로 설정해 가시적으로는 의도했던 참가자 수를 충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발적인 참가자들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대구시는 관련 기관, 단체 등에 ‘협조요청’을 했는데 동원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만한 주제가 선정되지도 못하고, 평일 오후 7시에 관심 없는 주제로 개최되는 원탁회의에 시민들이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참가자 규모를 줄이거나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선정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대구시는 달서구 성서지역의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대구지역의 소생활권인 달서구 성서지역에서 진행된 ‘성서를 바꾸는 오만가지 상상-머물고 살고 싶은 성서 10년 후 우리 마을’이라는 주제의 원탁회의에 지역민은 물론,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시민들이 대거 참가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구시가 원탁회의를 빈번하게 개최하는 이유는 대구시장의 핵심사업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민원탁회의에 대한 대구시장의 적극적인 태도는 원탁회의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지만, 원탁회의의 의미,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원탁회의의 운영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대구시민의 활발한 참여는 미흡하지만, 여전히 의미는 크다. 10대부터 70대까지, 일반시민, 이해당사자, 전문가 등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제도화되고, 포털사이트에서 시민원탁회의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연관 검색어가 대구시민원탁회의다.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소통과 학습의 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구시의 주요 현안에 대해 시민의 지혜와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이끌어낼 목적’으로 ‘대구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시정 주요 현안에 대하여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회의’인 시민원탁회의는 시민들에 의해 더욱 발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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