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간사 3인 인터뷰 (김정훈, 정호철, 허재필)

관리자
발행일 2017.07.13. 조회수 2637
스토리

지난 3개월 간 수습간사를 거쳐 이번 달부터 정 간사로 활동하게 된 신입간사 3인방을 소개합니다. 수습간사 전원(3인)이 정간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경실련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김정훈, 정호철, 허재필 간사를 소개합니다.

▢ 글 정리: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 ▢ 사진: 권태환 간사



(왼쪽부터 정호철, 허재필, 김정훈 간사)


먼저, 세 분을 잘 모르실 회원님들께 각자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정훈: 안녕하세요.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새로이 정간사가 된 김정훈입니다. 나이는 서른 둘. 많지도 적지도 않게 이립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부모님과 남동생과 남양주시에 살고 있습니다. 남양주시에서는 조부모님 이전부터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했고 이후에는 출판사 편집디자이너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년 간 디자이너 생화을 하였고, 출판마케팅으로 전환을 위하여 1년간 마케팅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출판마케팅 관련 직종으로 취업은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이후에 인척의 도움으로 중고차매매영업을 2년간 하였고, 현재는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에 성실하게 임할 생각입니다. 자료 수집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입니다.

호철: 반갑습니다. 국제팀 신입간사 정호철입니다. 우선, 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요. 항상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성격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변사람들이 저를 볼 때면 항상“자유로운 영혼”내지는 “역마살이 꼈다”고 흔히 얘기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년간 4개국을 떠돌면서 직장생활과 유학생활을 했었어요. 대학 졸업이후 여행사 가이드 일부터 시작해서 특파원, 방송작가, 올림픽대표단 안전요원을 거쳐 해외공관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녔어요.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면서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죠. 그런 저에게도 나름 원칙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믿음, 그 원칙의 결과가 현재 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재필: 안녕하세요. 경실련 막내로 들어오게 된 신입간사 허재필입니다. 대학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현재 정치사법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음. 우선 저는 영화광, 역사광입니다. 영화나 역사에서 나오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삶의 제약, 어려움을 뚫고 뭔가를 성취하는 이야기를 보면 다들 가슴 뛰지 않나요? 영화 '트럼보'나 역사 중에 '프랑스 혁명'처럼 말이에요. 저도 언젠가 그렇게 무언가 만들어보기를 꿈꾸면서, 경실련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 저는 능숙한 자취생입니다. 혼자 자취한지는 10년이 넘었고요. 혼자서 영화도 자주 보고, 맛집도 가고 잘 노는 편입니다. 나름 즐겁게 살고, 생존력이 좋다고 할까요? 일하는 것도 비슷하게 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있는 힘껏 활동하고, 오랫동안 하고 싶습니다.

(정호철 간사 - 국제팀)

본인에게 입사 전과 입사 후의 경실련이란?

정훈: 입사 전, 경실련은 단순하게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또한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언론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입사 후에는 경실련이 생겨난 사회적 배경과 ‘집값 거품빼기 운동’같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불공평한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어 나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조금은 더 괜찮게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경실련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철: 저에게 경실련이란‘유토피아’같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경실련은 민주적인 조직구조와 실질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고, 활동가 개개인의 의사와 인격을 존중해 주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경험한 공무원 조직은 조직의 일방적인 업무지시나 획일적인 가치지향―국위선양(國威宣揚)―으로 인해 업무의 자율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한때 저는 애국인줄 알았어요. 또, 허례허식과 같은 전시행정을 하고 있을 때면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정말 의문이 들었죠. 그랬던 저에게 경실련은 업무의 자율성과 가치의 다양성을 되찾아 줬습니다. 보고 배울 것이 무궁무진한 미래,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유토피아’인데, 경실련은 제게 유토피아처럼 매우 매력적인 조직으로 다가왔죠.

재필: 입사 전후로 바뀐 게 하나 있어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름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입사 전에는 ‘경제’라는 단어가 제일 눈에 띄었었어요. 경제라는 단어 때문에, 경실련이 뭔가 차갑고 냉정하고 딱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제일 와 닿는 단어는 ‘정의’에요. 불의에는 화를 내고, 잘못된 것은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데서 뜨거움, 열정 같은 게 느껴집니다. 경실련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니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설렙니다.

(허재필 간사 – 정치사법팀)

100일 동안(수습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정훈: 19대 대선 홍대 앞 선거독려 거리캠페인 때 ‘딱지왕’ 사진으로 인터넷에 올라간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사진인데 아무런 언지 없이 기자가 바로 인터넷에 올려 당황스러웠고 아는 사람들이 볼까봐 창피했습니다. 친구들이 놀리는 연락을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단 한명도 연락한 친구가 없었어요. 혼자서 괜히 오바했던 거 같아서 기억에 더 남습니다.

호철: ‘수습간사 사업기획안 발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습기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고, 저희 신입간사들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신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기업에서 생각하는 적자생존 식의 통과의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어요. 물론 준비 과정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기획안을 두 번 정도 갈아엎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끔찍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한 쪽의 입장만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재필: 19대 대선 때 오프라인 캠페인에서 활동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선, 밖에서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뭔가 해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냉담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입기도 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에게는 감사하기도 하면서... 일희일비했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경실련을 알아봐주고 격려해줄 때, 뿌듯했습니다. 또 이번에 대학생 서포터즈를 맡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열정적인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 스스로 동기부여도 되고,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훈 간사 - 도시개혁센터)

경실련에서 하고 싶은 업무 또는 활동

정훈: 아직은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운동이랄까, 의제랄까 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제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크게는 ‘도시환경’과 관련된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호철: 국제사회에 경실련 운동을 알리고 싶어요. 우리 경실련이 국제무대에서 ‘포컬포인트(Focal Point)’로서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경제민주화 운동 단체로서 이름을 알리고, 국제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수 슈퍼리치(Super Rich)에 의한 기업지배구조 왜곡이나 분배 문제에 대항하여 우리 경실련의 재벌개혁 운동이나 세금관련 운동들이 국제사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거품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경실련의 운동 경험과 정책 대안들이 다른 나라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거에요.

특정 운동의제와 관련하여 “CCEJ”이라고 하면, 아시아 지역의 경제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국제 NGO 단체로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경실련에서 세운 목표에요.

재필: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직접 민주주의’ 운동이에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해서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문제를 보완하려는 운동입니다. 그 중에서도 ‘국민발안제’에 가장 꽂혀 있어요. 시민이 직접 법안을 발안하니까, 국회가 하지 못하는 부분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국민들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이미 가득 차 있잖아요. 이번에 생긴 ‘문자행동’도 그렇고, ‘문재인 1번가’, ‘광화문 1번가’가 엄청난 관심을 받은 것도 그렇고. 이미 환경과 조건은 구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이걸로 발생할 문제만 예방해서 다듬는다면, 운동으로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후의 내 모습은?

정훈: 아직은 풋내기 활동가이지만 10년 후에는 그간의 운동을 통해 성과도 내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활동가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조금이나마 세상이 변하는 일에 저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제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0년 후면 마흔이 넘는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믿음직한 아들이었으면 좋겠고 동생에게는 듬직한 형이었으면 좋겠어요.

호철: 경실련에서 국제 운동을 담당하면서 향후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사회문화 비평가’로서 한 번 활동해 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이방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타국의 사회문화를 기행문이나 에세이 형식으로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물론 아직은 통찰력이나 전문성 면에서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제가 경실련 활동가로서 잘 성장해 나간다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국제사회가 인식하지 못한 사회 한 편의 소외된 문화나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알리고 싶어요. 언젠간 그런 기회가 꼭 있을거에요.

재필: 무엇보다 정치개혁 운동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있는 힘껏 해보면, 10년 후에 그렇게 될 수 있겠죠? 하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삶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고민은 좀 해소되고요. 저 뿐만 아니라 청년 모두요. 지금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 높은 집값에 많이 고통스러워해요. 저도 그런 문제를 겪는 청년 중 한명이구요. 앞으로는 청년들이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변화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경실련은 지금 이런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요? 그래도 희망은 있으니까요, 저도 그만큼 열심히 활동 해야겠네요.



개성이 넘치는 멋진 청년들입니다. 각자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제 경실련 상근자가 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려고 합니다. 어깨 걸고 힘 모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 열정 넘치는 신입간사들과 함께 새로워질 경실련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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