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금배지 고치자

관리자
발행일 2004.05.04. 조회수 531
칼럼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새 국회의 개원을 앞두고 각 당이 추진코자 하는 국회 개혁구상은 아주 신선하다. 면책·불체포 특권 제한, 국민소환제 신설, 윤리위원회 강화, 상시 개원 등 그동안 비리와 부정, 비능률로 얼룩진 국회상을 뜯어고쳐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일반노동자의 평균월급 180만원만 개인보수로 받고 나머지 세비는 당 운영비로 내놓겠다는 당마저 생겨났다.


 



정작 일반국민들은 “정치란 거짓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政不厭詐·정불염사)”는 옛말을 떠올리며 반신반의의 눈초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 정치권이 총체적으로 국민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혐오현상은 그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대한 한가닥 미련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천만다행이다.

 


광복 이후 지난 16대까지 우리 국회, 즉 정치권을 지배해온 각종 의혹과 비리 및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행태의 근원과 그 방지책은 무엇일까.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 벽면에 크게 붙어 있는 국회 엠블렘이 이 의문에 대해 상징적으로 해답의 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나라꽃인 무궁화 꽃잎들 한 가운데에 동그라니 둘레를 치고 뚜렷하게 ‘或(혹)’자가 새겨져 있는 국회 문장(紋章)을 TV를 통해 볼 때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 의미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같은 모양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분들이야 관성에 젖어 제대로 느끼지 못했겠지만, 길거리의 아무나 붙잡고 이 마크와 배지 속 ‘或’자의 의미를 물어 보았다고 치자. “그거 ‘유혹(誘惑)’이라는 뜻 아니에요? 아니 ‘의혹(疑惑)’을 말하겠지요. 무슨 소리, 그건 ‘미혹(迷惑)’을 뜻함이 틀림없어”라고들 대답할지 모른다.

 


엠블렘 속 원래의 글자는 ‘나라 國(국)’을 나타냄이 틀림없을 터인데, 도대체 국가기관 중 유독 국회만이 나라글을 쓰지 않고 한자로 표기하고 그것도 입구(口)자 네모 난 테두리 대신 동그라미의 테두리로 둘러놓았으니 이 같은 혼란을 불러들여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인지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허구한 날 의혹투성이요 유혹과 미혹으로 얼룩진 50여년의 정치사였다.

 

말(馬)이 사슴(鹿)으로 둔갑하고 거짓이 진실을 제압하며, 국익이나 민생보다는 당략과 정권욕이 압도하는 지난날 우리의 국회상을 암시라도 하듯이 ‘或’자 마크는 언제나 국회의원들과 함께해왔다. 그래서인지 대명천지에 국민의 이름과 다수결의 이름으로 이전투구·아비규환의 정치행위가 16대 국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정권 장악에 보탬이 된다면 지역주의와 지역감정마저 여과 없이 쏟아내고, 탈세행위와 선거법 위반, 국민분열, 남남대결, 남북갈등도 사양하지 않았다. 부패행위가 발각돼도 그 사건 앞에 ‘○○탄압’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만사형통이었다.

 

자기들이 한 짓, 자기가 걸어온 발자취를 다음 사람들이 어김없이 흉내내고 따라온다는 업보를 걷어내기 위해서라도 새 국회는 다음 두 가지 상징적인 일부터 개선했으면 한다.



첫째, 국회의 공식 엠블렘에서 ‘或’자를 떼어내 여느 정부부처처럼 한글로 표기하기 바란다.

 

둘째, 국회의원들이 ‘或’자가 새겨진 금배지를 달고 다니던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장·차관급 고위 정무직들이 달고 다니는 권위주의 금배지도 폐기해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 중 어느 나라 국회의원과 장·차관이 우리나라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금배지를 패용하고 다니던가. 고려장(高麗葬) 풍습을 없애기 위해선 고려장에 쓰인 지게를 먼저 부숴 없애버리듯, 새 국회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각종 구상을 내놓고 있는 17대 새 국회의원들부터 앞장서 국회의 상징 엠블렘에서 ‘或’자를 과감히 떼어내고 금으로 만든 그 배지의 패용을 폐지하는 결의부터 국회업무를 시작했으면 한다.



 


* 이 글은 4월 25일 세계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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