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人] 육교(陸橋)와 보행자의 권리

관리자
발행일 2013.10.02. 조회수 1450
칼럼

  육교(陸橋)와 보행자의 권리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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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의 전당 부근에 있는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한 아쿠아 아트 육교 


 


“번잡한 도로나 철로 위를 사람들이 안전하게 횡단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건너질러 놓은 다리”
육교(陸橋)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렇게 되어 있다. 지반고의 차이 등으로 불가피하게
놓은 육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육교는 멀쩡한 평지에 사
람보다는 자동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놓인 것이 대부분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도시개발 시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던 육교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행자의 권리
와 도시미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으로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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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반포 지역에 있는 철제빔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일반 육교의 모습.


대부분 불법 현수막이 여러개 걸려 있어서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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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않아도 좁은 보도의 대부분을 육교의 계단이 차지하고 있어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도가 좁아서 보행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차량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육교가 이렇게 많이 건설된 것은 무단횡단으로 교통사고가
잦은 곳에 안전하게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보행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다. 개발시대에는 육교를 많이 건설하는 것이 교통사고를 줄이는 지름길이었고 아무도
육교건설에 대해서 토를 달지 않았다.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육교를 많이 만들
어서 차량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보행약자들이 그 높은 육교
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길 한 번 건너기
위해서 그 높은 계단을 올라가기보다는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냥 지상에
서 무단횡단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통사고를 줄이고자 건설한 육교
부근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교통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시
대는 많이 달라졌다.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목소리는 커졌고 도시행정에서
도 보행안전이 시대적인 과제로 부각되었다. 서울시의 경우 179곳의 육교 중에서 4
분의 1가량을 2014년까지 철거하기로 하는 등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차량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가 이제야 힘을 발휘하게 되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기능보다 도시미관이 중요한 시대



개발시대에 건설된 육교는 기능만 중요했지 보행자에 대한 배려나 도시미관에
대한 고려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육교가 설치되는 구간은 길 양쪽에 보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 있는 곳이므로 평상시 보도통행량도 많은 편이다. 그러
나 육교가 설치된 곳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도 좁은 보도폭의 반 이상을 계단이
차지하고 있어서 통행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 보행자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자연
스럽게 육교의 난간에는 각종 현수막이 너부러져 있어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다.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는 공무원들과 이를 설치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걸었다 떼었
다 하는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 경관법이 발효되면서 도시미관
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보행자의 안전을 지킨다는 육교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도시미관의 측면에서 육교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
식이 점점 확산되어가고 있다.


 


예술품으로 변신하는 육교



이제 육교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애물단지에서 도시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
다. 서울에서는 예술도시를 지향하는 서초구가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서
초구에는 예술품으로 변신한 육교가 두 군데나 있다.
서울시 서초구에 설치된 누에다리 육교는 반포로로 단절된 서리풀공원과 몽마
르트공원을 잇는 길이 80m의 육교이며 2009년 11월 19일에 개통되었다. 모양이
누에고치를 닮았다고 해서 누에다리라고 이름 붙였다. 이 일대에 조선시대 양잠
기관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누에형태로 설계되었으며
죽어 있는 누에의 모양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누에의 모습을 살리는 변형 트러스
구조의 강관에 둥근 원환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밤에는 형형색색의
LED조명을 밝혀서 육교 자체가 도시의 예술품으로 변신한다.
서울시 서초구 예술의 전당 부근 남부순환로에 설치된 아쿠아아트(Aqua Art)
육교는 한국에 설계사무소를 두고 많은 건축작품을 남긴 프랑스 건축가 다비드
삐에르 잘리콩(David Pierre Jalicon)의 작품이다. 이 다리는 물이 흐르는 직경
24m의 유리원판 사이를 육교가 통과하는 독특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육교가 단
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이벤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설계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비대칭의 사장교형태로 설계되어 2004년에 완공,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
리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의 전당 부근에 있으면서도 프랑스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서 우리 전통문화의 모티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행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토지이용, 건축물의 용도, 도로의
폭, 보행빈도 등을 분석하여 가능하면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한다. 도로의 폭이
넓을 경우에는 중간에 교통섬을 두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육교가 꼭 필요한 지점에는 더 이상 콘크리트 덩어리로 이루어진 애물단
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랜드마크(landmark)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
을 품은 도시조형물로 거듭나야 한다. 오르내리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이
용하고 싶어지는 그런 육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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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서초구에 설치된 누에다리 육교. 외국인들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실크 브리지(Silk
Bridge)라는 영어이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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