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경실련 입장

관리자
발행일 2002.07.11. 조회수 3103
경제

보험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역행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


  지난 7월 2일 정부는 5대 재벌진입의 전면허용, 재산운용규제의 대폭 폐지 등을 주요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25년만에 보험업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규제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보험제도 마련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보험업법 개정을 평가하면 총체적으로 보험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오히려 역행하는 전면적 개악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우리 보험산업은 지난 40여년 동안 재벌들의 현금동원수단(cash box)으로 악용되어 보험계약자들의 권익보호는 철저히 무시된 채 각종 폐해가 만발하였을 뿐아니라 급기야는 외형성장을 위한 무절제한 비용지출과 무분별한 자산운용으로 인하여 결국 IMF 외환금융위기시에 10여개가 넘는 보험사가 퇴출되었고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2002년 5월말 기준으로 20조 7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보험사의 경영은 비민주적 기업지배구조는 물론이고 재벌들의 소유장악에 의해 불투명한 의사결정 등이 횡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재경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이러한 보험산업의 근본적 문제점은 도외시한 채 ‘글로벌 스탠더드로의 규제완화’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문제가 과거보다 더욱 확대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자산운용기준과 영업, 상품 등의 규제완화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험사 경영의 투명성관련 제도(소유 및 지배구조 등)가 글로벌수준이 되어야 함에도 금번 안은 이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정책당국이 보험사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이 무엇인지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소위 재산운용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재산운용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규제를 폐지하거나 운용한도를 확대한 조치가 중장기적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상품 및 가격자유화 시대에서 대형보험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소형 보험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재산운용에 치우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중소형 보험사들의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결국은 또다시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공적자금의 추가투입을 오히려 유도하는 악순환적 조치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글로벌 기준인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대하여는 일정 한도로 보유를 제한하고 있다.


2. 보험사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또는 대주주가 발행한 채권 및 주식에 대한 투자한도를 종전 총자산 기준에서 자기자본 기준으로 전환하였다고는 하나, 이는 은행의 경우 대차대조표상의 자기자본이 아닌 BIS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삼고있는 것을 알고 있는 정책당국이 보험사의 경우 대차대조표상의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하면서 은행과의 형평성을 유지하겠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은행권과의 형평성 유지는 물론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제고를 위해 보험사의 경우도 대차대표상의 자기자본이 아닌 지급여력비율 산정시 사용되는 지급여력기준에 바탕을 두고 그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 보험상품개발 규제완화를 위해 상품개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품을 제외한 여타 보험상품에 대하여 판매 후 보험개발원에 제출토록 한 것은 감독당국의 관리․감독 임무를 도외시한 처사이다. 가격 및 상품자유화 시대에 봇물처럼 밀려드는 새로운 보험상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감독당국이 다수의 전문인력을 보유한 요율산출전문기관인 보험개발원에 업무협조를 의뢰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판단되나, 보험상품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상품의 유형에 관계없이 최종적으로 감독당국에서 제출 받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품 및 가격에 대한 관리․감독은 감독당국의 고유한 권한이자 임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감독당국의 고유권한과 책무를 도외시하고 보험업자들의 공동부담으로 운영되는 민간기구인 보험개발원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순수한 보험산업의 발전목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이론적인 합리성과 현실적인 타당성을 결여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로 볼 수 밖에 없다.


4. 더구나 민간연구기관인 보험개발원이 핵심공공정보인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를 이용, 보험사들의 ‘상품’인 민간의료보험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없이 민간의료보험상품시장을 늘려 건보체계를 완전히 뒤흔들고 보험사에 의한 개인정보유출 가능성을 높일 우려가 매우 높다.


건강보험체계의 효율성과 형평성제고는 단순히 민영보험업법 차원에서 즉흥적으로 다루어질 사안이 아니고 현행 의료체계에 관련된 복잡다기한 문제점(의약분업의 부작용, 건강보험재정 통합의 문제점, 의료체계의 수요공급상의 역선택문제점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정부부처간은 물론 사회보장관련 다양한 이해집단간의 합의와 철저한 분석이 전제된 후에 다루어져야하는 중차대한 논제임이 확실한 바, 민영보험사들의 이해득실만을 고려한 금번 조치는 편법적인 발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5. 5대 재벌의 보험진입 규제를 전면허용하는 부분도 문제의 소지가 매우 크다. 재경부는 당초 내년 3월부터 규제가 폐지될 예정이었고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이 모두 보험업을 영위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대차외에도 LG그룹은 계열분리로 보험사가 없으며 SK는 생보, 한진은 손보사밖에 없어 보험업 진출 인센티브가 적지 않은데다 이들 기업이 단기간내 금융전업기업이 될 가능성도 낮아 산업자본의 금융진출을 더욱 늘려주게 될 전망이다.


따라서 재벌들의 소유 및 지배구조의 개혁과 투명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벌들의 보험산업진입의 무제한 허용은 형평성차원 이전에, 재벌개혁정책과 연계됨은 물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과의 엄격한 분리차원에서도 철저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6. 현행 예금자보험법상 보장한도인 5천만원을 초과하는 의무보험에 대해 손해보험사로부터 사후 갹출을 통해 전액 지급보장하는 것은 보험사 입장에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즉, 의무보험 가입자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정도에 상관없이 보험료가 가장 저렴한 보험사를 선택하려 할 것이고, 이는 결국 해당 보험사 파산시 그 부실이 우량보험사의 보험계약자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보험계약자 보호를 위해 사후 및 사전갹출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단 곳도 없는 초현실적인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다.


7. 모집제도 선진화와 관련하여 2003년 8월 본격적인 방카슈랑스 도입에 대비,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의 판매상품을 판매가 용이하고 겸업화의 시너지 효과가 큰 상품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규정한 것은 오히려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담보되는 전제 하에서는 판매상품 선정 등 영업전략은 금융기관 고유의 권한인 바, 정부가 이를 제한하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이는 또한 전 세계적인 금융산업 자율화 추세에도 역행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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