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묻지마 분양', 금지된 '원가공개'

관리자
발행일 2006.09.21. 조회수 478
칼럼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


자고 나면 오르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기 때문에 이 정책(8·31 및 3·30 대책)을 확고하게 집행한다면 집값은 언젠가 10·29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파주 운정 신도시 지역의 한라비발디는 평당 분양가를 1400만원대에 책정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금액을 낮춰 평당 1297만원에 책정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SH공사가 분양하는 서울시 은평뉴타운 역시 평당 분양가를 1151만∼1523만원 선으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마지 못해 은평뉴타운의 분양원가를 공개했지만 수익률이 5%라는 누구도 믿기 힘든 수치를 제시해 오히려 비난을 사고 있다.


고분양가는 자연스럽게 주변 집값을 올리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하향안정세로 돌아섰다고 전망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는 셈이다. 정부말만 믿고 있던 서민들은 올라가는 집값 앞에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민들 입에서 또 다시 원가공개 요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왜 국민들은 아파트 원가공개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묻지마 분양 그대로 둘 건가


정부는 주택가격의 상승을 방지하고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77년부터 신규주택에 대해 분양가를 규제하였고 선분양(건물을 짓기 전 분양)을 해왔다.


즉, 선분양의 특혜를 주면서 가격을 규제한 것이다. 1977년부터 89년 11월까지는 일률적으로 분양가격 상한을 두어 규제를 하였고, 89년 11월부터는 택지비와 건축비에 연동시키는 원가연동제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89년 12월 '주택분양가연동제 시행 지침'을 폐지하여 사실상 완전한 분양가 자율화를 실시하였다. 그렇지만 주택건설사들이 분양가를 자율적으로 책정하도록 하면서도 주택분양체계는 선분양을 유지하여 건설사들이 짓지도 않은 주택을 턱없이 비싼 고분양가에 분양하도록 하여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공급자(건설사)들에게는 짓지도 않은 주택을 팔 수 있도록 하고 가격도 마음대로 책정하도록 하였지만, 소비자들에게는 권리를 보호할 어떠한 장치도 마련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주택보급률이 102%를 넘어선 지금에도 '주택공급만이 수요를 완화 한다'는 천박한 경제논리에 근거해 대량물량공급정책을 지속하고, 갖가지 이름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중대형위주의 재개발을 허용하고, 주택담보대출도 유주택자 위주로 구조화 하여 집을 소유한 사람이 집을 더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정부 정책의 결과는(행자부 2005.8), 전국 1777만세대중 971만세대(54.6%)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나, 46%인 809만세대는 무주택자로 만들었다. 또한 주택보유세대 중 1세대 1주택 보유세대는 882만세대(90.9%), 1세대 2주택이상 다주택 보유세대는 89만세대(9.1%)로 237만호(21.2%)를 보유하는 극심한 주택소유의 편중을 가져오게 되었다.


때문에 무주택 서민들에게 물가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전세와 월세비, 그리고 주기적인 이사 등으로 주거불안에 처하게 되고, 급등하는 주택가격에 내집 마련의 꿈과 희망도 접어야하는 좌절만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정부는 89년 '주택분양가연동제 시행 지침' 폐지로 분양가 자율화를 실시하면서 선분양 제도를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주택건설사들은 허허벌판인 농지에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다 지은 것처럼 가정하고 분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음대로 분양가도 책정할 수 있게 되어 고분양을 통한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분양제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어떤 정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즉 주택건설사들에게는 막대한 특혜와 폭리를 보장하고 서민들에게는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고스란히 건설사들의 폭리에 갖다 바치도록 한 것이다.


때문에 주택소비자인 무주택 서민은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건설사들이 당연히 부담해야 할 건설비용과 이자까지 선납하고, 건설사들의 경영실패로 인한 도산의 위험과 책임까지 부담하고, 소비자가 주문한 계약 내용과 다르게 주택을 짓지 않을 경우나 낮은 품질의 주택을 인도받았을 경우 보상 책임을 추궁할 방법도 없다. 건설사들이 집 잘 짓기 경쟁을 하지 않아 다른 주택과 차별화도 되지 않는 저품질의 주택을 제공받고, 공사기간이 길어져 발생하는 피해 보상을 청구할 법적인 권한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등 아무런 보호 수단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주택정책이며, 건설사들을 위한 '묻지마 분양'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건설사들의 짓지도 않은 아파트의 '주택 미분양'에는 온갖 대책회의를 하며 더 많은 특혜를 주려 고심하지만, 서민들과 입주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무슨 대책회의를 개최하였다는 언론 보도는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다면, 분양가 자율화 실시에는 반드시 취약한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택가격의 급등을 조절하는 후분양(주택을 다 지은 후에 판매)을 도입했어야 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회사가 이 땅에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니, 가격은 묻지 말고 우리 회사가 제시한 가격에 사시오(선 분양-분양가 자율화)'에서 '우리 회사가 여기에 아파트를 지었으니 둘러보시고 집이 잘 지어졌고 마음에 든다면 우리 회사가 제시한 가격에 사시오(후 분양-분양가 자율화)'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분양가 자율화와 후분양'이 궁합이 맞다는 것은 상식인 것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후분양제 전면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현재와 같이 선분양제와 분양가 자율화를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권리 보호를 위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최소한 짓지도 않은 땅에 바둑판처럼 줄그어놓고 아파트를 다 지어진 것처럼 팔려면 예정가격은 얼마나 되고, 어떤 재료들로 지을 것인지라도 알고 구입여부를 판단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사는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 이는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2004.6.9 민노당 지도부 간담회)


"(공공부문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한 한나라당에 대해) 한나라당에도 한마디 하고 싶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해서 탄핵까지 추진하지 않았느냐. 경기를 죽일 수 있는 이런 규제(분양원가 공개)를 만들자는 것인가." (2004.6.11 29개 언론사 경제부장 초청 청와대 만찬)


원가 공개, 주택시장 정상화 위해서 필요하다


원가공개는 건설사들의 '묻지마 분양' 을 바로잡는 것이다. 정부의 분양가 자율화와 선분양은 주택건설사들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정책의 연속이었다.


짓지도 않은 주택을 판매하도록 하고, 분양가도 마음대로 책정하게하고, 공사비도 소비자들로부터 먼저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정부가 저리로 국민주택기금에서 융자도 해주고, 온갖 세금도 면제해주고, 공공택지도 정부가 헐값에 나누어 주고, 미분양 아파트의 대책도 세우주고, 표준건축비도 뚜렷한 근거 없이 올려줘 고분양가를 도와주고, 공공기관에 허위로 신청을 해도 제대로 검증도 안하고 신고한 대로 허가해주고, 공사를 감독 관리하는 감리자도 건설사들이 감리자를 평가하게 해주고, 공사비가 얼마나 쓰였는지 알 수도 없게 해주는 등 건설들을 위한 제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소비자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 주택을 구입하려해도 선분양이기 때문에 완성된 주택을 보지도 못하고 미모의 탤런트가 선전하는 신문광고 보고 선택하고, 가격을 비교하여 경제성을 판단할 수도 없고, 품질을 비교해 볼 수도 없고, 모델하우스도 못 보게 하고, 공사기간이 연장되거나 부실공사하여 품질 낮은 주택을 인도 받아도 제대로 변상을 요구할 수도 없고, 건설사의 공사비도 선납해주고, 건설사가 계약과 다르게 설계를 변경해도 제대로 목소리도 반영 못시키는 등 그야말로 건설사들의 '묻지마 분양'에 일방적으로 부담만 커지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주택시장은 소비자인 서민과 공급자인 건설사들이 균형있는 조건에서 교환이 이루어져야하는것은 상식이다. 힘의 균형이 조화될 때 서민들은 최고의 선택으로 만족을 얻게 되고, 건설산업은 기술개발이 이루어져 집을 더 잘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주택정책도 대량물량 공급주의, 분양제도도 선분양, 분양가도 자율화, 건설 공사비도 정부가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입주자로부터 선납받게 되어 있는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교환 시장이다. 정부가 불균형적인 주택공급체계를 후분양제도로 바로잡지 않으려면 분양가의 내역이라도 공개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왜곡된 주택시장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낮을 때는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였다면, 102%를 넘어선 지금 이제부터 소비자 중심의 주택정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원가 공개, 공기업 개혁의 시작


부동산 관련 공기업은 건교부 산하의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이다. 토지공사는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 촉진과 국토의 종합적인 이용과 개발을 위해 설립되었고,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민간의 토지를 공익적 사업이란 이름으로 강제수용하여 토지를 조성, 판매하고 있다. 주택공사는 택지 조성 및 공급, 주택의 건설, 공급 및 관리와 불량주택을 개량하여 주거복지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이다.


그러나 현재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는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토지공사는 땅장사, 주택공사는 집장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체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토지공사의 공공택지 판매가 비공개는 건설사들의 각종 허위 공문서 작성에 이용되고, 주택공사의 분양원가 비공개는 민간업체들의 고분양가 책정에 일조하고 있으며, 주공 자체도 고분양가 책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공과 토공의 정보 공개는 공기업으로서의 공공성 역할을 강화하고, 집값 안정에 도움되는 개혁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새 출발선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다. 지난 2004년 6월 당정협의회에서 총선공약인 분양원가공개를 파기해 버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소신에 입각하여 장사 논리로 무시해 버린 그 원가 공개를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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