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산책] 경실련 뉴비를 위한 낙산공원 튜토리얼

관리자
발행일 2022.07.29. 조회수 10588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2년 7,8월호-혜화산책]

경실련 뉴비를 위한 낙산공원 튜토리얼


최윤석 기획연대국 간사


 

혜화산책이 오늘 찾은 곳은 낙산공원입니다. 정확하게는 낙산공원 다녀오는 길이랄까요.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따로 설명이 필요하겠냐마는, 굳이 보태자면 낙산은 경실련 동숭동 사무실 바로 뒤에 있는 작지만 매우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낙산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이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사무실 근처에서 종종 사람들에게 ‘낙산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하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한번 가보고 싶어도 입구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릴지에 대한 감이 없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신입 입장에서 혹여 길을 잃거나 예상치 못한 일로 사무실 복귀가 늦어질까 두려웠던 게지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평소에 걷는 산책루트를 한번 소개해 볼까 해요. 당시의 저처럼 낙산을 처음 가고자 하는 후배가 있다면 좀 더 쉽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독자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계시겠지요.

여느 때처럼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사무실을 나섭니다. 건물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경실련을 품은 동숭3길 주택가를 만납니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해요. 시계방향으로 가려면 오른쪽을, 반대 방향으로 가려면 왼쪽을 고르면 됩니다. 저는 오른쪽이 좋아요. 그편이 경사가 더 가파르거든요. 덕분에 오르막길을 오래 걷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있어요.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주택가답게 작은 놀이터가 하나 나옵니다. 신입 때는 일이 안 풀리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남몰래 찾아 시름을 달래곤 했었지요. 멍하니 앉아 느릿느릿 그네를 움직이고 있으면, 동네 꼬마들이 ‘다 큰 어른이 이 시간에 왜 저러고 있담’ 하는 것 같이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놀이터를 끼고 모퉁이를 돌면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경사진 고갯길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지레 기가 죽었지만, 지금은 뒷짐을 지고 세월아 네월아 걸음을 옮깁니다. 그 길이 길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죠. 그렇게 오르다가 생각난 듯 뒤돌아보면 놀이터와 그 주변 건물들,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독립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길로 새지만 않으면 수 분 내로 낙산 입구에 들어서게 됩니다. 주변으로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데, 오늘은 능소화가 무리 지어 피어있네요. 이국적인 향수가 물씬 풍깁니다. 꽤 자주 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생겼는지 모를 카페도 하나 떡하니 자리하고 있네요. 카페가 생기기 전에는 할머니 한 분이 응달에 앉아 물이며 음료수 따위를 팔고 계셨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셨을지, 무더위는 잘 피하고 계실는지,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아무리 동네 뒷산이라지만 산은 산이라는 겐지, 경계에 진입하기 무섭게 자연의 생명력이 물씬 느껴집니다. 내내 비가 내리던 중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수풀들은 저마다 짙푸른 잎사귀를 사납게 드러내며 햇볕을 향해 치열하게 양분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보행로까지 가지를 길게 늘어 뜨린 녀석들도 있어서, 행여나 풀독에라도 걸릴세라, 방문자들은 요리조리 갈지자로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탁 트인 공간이 나옵니다. ‘제3전망광장’입니다. 단출한 운동기구 몇 개와 벤치, 그리고 무엇보다 그늘이 있죠. 이쯤에서 숨을 한번 고릅니다. 성곽 너머의 풍경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요. 고도가 높지 않아 탁 트인 풍경을 보진 못하지만, 근경(近境)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맛도 있으니까요. 여기서부터는 그저 성곽을 따라 능선을 거닐며 그날그날 산이 주는 정취에 빠져듭니다. 낙산 자체에 관해서 쓰려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매력을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능선이 길고 좁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동서 양편의 전경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죠. 길은 ‘제2전망광장’, ‘제1전망광장’을 지나 ‘놀이마당’까지 쭉 이어집니다.

놀이마당쯤 오면 고민하게 됩니다. 성 밖으로 나가 장수마을 인근을 좀 더 걸을까, 이대로 동대문까지 빠르게 가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올까, 벽화마을 쪽으로 내려갈까 등등. 취지에 맞게 사무실 복귀를 선택합니다(...). 놀이마당 무대 맞은편에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입니다. 솔향을 담뿍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줍니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가다, 서다 하다 보면 서울이 아니라 꼭 강원도나 경북의 어느 외떨어진 산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계단은 중앙광장 뒷길로 이어집니다. 광장에는 공연무대, 전시관, 매점 따위가 있어요. 옆으로 주차장이 딸려 있어 일반적인 방문객들은 사실 이곳에서부터 주로 낙산 구경을 시작합니다. 광장에서 이어진 큰길을 따라 내려가면 익숙한 동숭동 거리가 나옵니다. 여유가 조금 더 있다면 은혜미용실 쪽으로 빠져 좁은 골목길을 모험하는 것도 좋을 테지요.

그렇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면 대략 30분 정도가 지나있을 겁니다. 그리고 몇 분 새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부룩하던 배는 꺼지고 장딴지 근육은 팽팽해져 있죠. 눈빛에선 어쩐지 총기가 살아난 기분이에요. 오늘도 하루치 건강을 챙겼다는 사실을 통해 얻는 뿌듯함은 덤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어쩐지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참을 수 없이 답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잘 가꿔놓은 메이저 공원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느껴요. 점심 한때의 짧은 외유가 하루의 색깔을 바꾸기도 합니다.

어려워 말고 한번 가보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