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매입임대 주택, 내 돈이면 그 가격에 샀을까?

관리자
발행일 2023.04.04. 조회수 35936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 – 특집. 세금이 새고 있다(1)]

매입임대 주택, 내 돈이면 그 가격에 샀을까?


정택수 경제정책국 부장


매입임대 주택은 2004년경 “최저 소득계층이 현 생활권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기존의 다가구주택 등을 매입하여 저렴하게 임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매입대상이 되는 주택은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나 다세대·연립·도시형 생활주택·다가구·주거용 오피스텔 등입니다. 최근에는 민간 신축주택을 사전에 매입약정을 체결하고, 준공 후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민간 신축 매입약정 방식”이 많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주택 매입방식은 ‘기존주택 등 매입임대주택 업무처리지침’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매입가격은 감정평가 가격, 분양 가격,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실거래 가격,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 동향,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정보 등을 기초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LH 매입임대주택 매입공고에 따르면 매입가격을 “2개의 감정평가법인으로부터 감정평가한 가격의 산술 평균 금액”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동산가격이 높은 상태에서 감정가 기준으로 주택을 매입한다면 거품 낀 비싼 가격으로 매입임대주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주택업자들은 매입임대 주택을 건설하여 공기업에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손쉽게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거품 낀 가격으로 사들이는 매입임대 방식으로의 공공주택을 확대한다면 엄청난 예산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로 이어질 위험이 높습니다. 실제로 LH직원 땅투기 사건 직후였던 2021년, LH임직원이 주택매입 대가로 수 천만원의 뒷돈을 받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토부 업무보고 중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 해주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LH는 매입임대 확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며칠 뒤 LH가 작년 12월경 서울 강북구 미분양 아파트 36가구를 공공임대용으로 매입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해당 아파트가 준공 후에도 미분양 되었을 만큼 외면받은 주택임이 알려지며 국민의 혈세로 건설사의 민원을 해결해 줬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원희룡 장관은 “세금이 아닌 내 돈이었으면 과연 이 가격에 샀을까 이해할 수 없다, 현재 특정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떠안아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매입임대제도 사업 전반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LH 매입임대 확대를 위해 강남, 서초, 송파, 용산 등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 가능하게 만드는 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매입임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택을 사들이는 금액은 모두 국민의 혈세나 다름 없습니다. 매입임대 주택은 거액의 세금이 투여되는 사업인 만큼 매입금액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경실련은 LH 매입임대주택 매입가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LH가 작년 12월에 매입한 강북 매입임대 아파트(이하 수유팰리스)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검증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수유팰리스 36채를 사들이는데 들어간 비용은 79억 4,950만원입니다. 이 가격을 SH가 강남권 지역에서 분양한 공공아파트 건설원가를 비교했습니다.


SH가 공개한 ‘세곡지구 2-1’아파트의 전용면적 1㎡당 건설원가는 수유팰리스의 절반도 되지 않는 436만원입니다. 고덕강일 4단지 ㎡당 건설원가는 수유팰리스의 56%인 512만원, 오금 1단지 ㎡당 건설원가는 수유팰리스의 53%인 486만원입니다. 수유팰리스를 사는 값이면 공공아파트를 두 번 짓고도 이윤이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세곡 2-1의 건설원가를 적용하면 전용면적 24㎡ 아파트 한 채를 짓는데 1억이 들며, 36채를 짓는다면 37억 6,353만원이 들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유팰리스를 사들이는 가격으로 공공주택을 직접 지었다면 41억 8,597만원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았거나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2021년 국토부 국감 자료로 제출된 “LH 기존주택매입사업 매입목록(2016~2020)”을 토대로 서울·경기지역 LH 매입임대주택 26,188세대 매입가격 실태를 분석했습니다. 2021년 이후 매입임대 주택 현황에 대해서도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LH가 비공개처리하여 기존 자료로만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LH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경기 지역에서 사들인 매입임대 주택의 유형별 현황을 분석했습니다. 5년간 LH는 주택 26,188호를 매입했으며, 매입금액은 총 5조 8,038억입니다. 평균 호당 가격이 2.4억인데 비해 호당 공시가격이 1.7억,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이 69%입니다. 연도별 매입 현황은 2016년 3,700억(2,318호), 2017년 5,165억(2,952호), 2018년 1조 45억(4,866호), 2019년 2조 1691억, 2020년 1조 7,438억(6,838호)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5년 만에 매입임대 주택 매입금액은 5배가량 증가했으며, 주택 매입호수는 3배 증가했습니다. 매입금액보다 매입호수가 적은 이유는 호당 가격이 1.6억에서 최대 2.8억까지 상승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기간동안 집값이 역대급으로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집값 폭등 시기에 LH가 매입임대를 급격히 늘린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매입이자 혈세 낭비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지역에서 벌어진 LH의 무분별한 주택매입은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LH 매입임대 주택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매입되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SH 건설원가와 비교했습니다. 서울의 땅값이 경기도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서울지역에 위치한 매입임대 아파트 및 다세대 등 주택만을 비교대상으로 했습니다. 면적은 수유팰리스와는 달리 조사대상 매입임대 주택 평균 수준인 59㎡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매입임대 아파트의 전용면적 1㎡당 가격은 742만원, 매입임대 다세대 등의 가격은 642만원 입니다. 59㎡ 주택 1호를 매입하는데 아파트의 경우 4.4억, 다세대의 경우 3.8억이 필요합니다. 세곡 2-1단지 1호를 짓는데 2.6억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매입임대 아파트의 경우 1.8억, 다세대는 1.2억원 정도의 세금낭비가 발생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행 감정평가 방식을 고수한다면 시세대로 금액을 다 지불하고 주택을 매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매입임대 주택은 국민의 혈세를 건설사에 퍼주는 방식으로 잘못 이용될 위험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매입임대가 혈세를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고가 매입을 막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건설원가 수준으로 매입할 수 있어야 하고 가격폭등으로 시세에 거품이 끼어있는 상황에서는 무분별한 매입을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처럼 부동산가격 급등기 이후의 감정가는 과거의 거래사례인 고분양가 또는 고가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합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부동산가격 폭등이 끝나고 침체기가 시작된 경우 적정 매수가격을 결정하려면 과거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고가의 거래가격이나 분양가격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건설원가 이하의 가격일 경우 매입 금액 산정 시에 거래가격과 임대료 수준 등의 시장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감정평가 방식을 개선하거나 경매방식 등으로 거품 없는 가격에 매입해야 합니다.


매입임대 주택에 대한 정보도 투명하게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합니다. LH 임직원이 뒷돈을 받고 주택을 매입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매입임대 주택 관련 정보가 불투명하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LH 홈페이지에 매입임대주택의 주소, 세대수, 계약체결일, 매입가격, 호당 가격, 건물종류, 공급면적, 전용면적, 공시가격을 비롯하여 가능하다면 매도자의 정보까지 세부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합니다.


매입임대주택 제도가 건설사의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고, 무주택 서민들에게 공공주택을 공급해주는 좋은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매입금액의 산정 기준을 사전에 공론화하고 매입금액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계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예산낭비를 최소화하고 서민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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