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활동의 회고와 제언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37
칼럼

 


경실련 활동의 회고와 제언



김완배(경실련 중앙위원회 부의장)



20년 전 경실련 활동으로 본인을 이끈 것은 ‘경제정의 확립을 위한 실천적 대안 마련’이었다. 그 시절은 부동산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였을 뿐만 아니라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으로 우리 농업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였던 시기였다. 두 문제 모두 관심분야였고, 특히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 마련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정책위원회 내에 농업분과 위원으로 참여를 시작하였다. 비좁은 임대사무실에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이념적인 거대 담론의 논의가 아닌 실천적인 대안 마련에 머리를 모으는 자리였기에 항상 뿌듯한 마음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회의 후 각자 주머니를 털어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때론 기존의 이념적인 운동조직과 동일 선상에서 보는 시각에 대해 경실련의 차별성을 설득하는데 애태웠던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실련의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와 실사구시의 정신이 확산되면서 주위의 시선이 따스함과 격려로 변화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뛰어난 인재들이 활동에 속속 동참하면서 회원으로서의 자긍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호사다마일까, 경실련의 영향력이 커짐과 반비례하여 순수성이 훼손되어가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경실련을 정관계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회원의 모습이 눈에 띌수록 경실련 활동에 대한 열정은 식어만 갔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정책위원회 활동을 접고 평회원의 신분만 유지하기를 5-6년 정도 하였던 것 같다. 순수한 시민운동 정신을 이용당했다는 철없는 생각에 처음에는 다소 허탈하기도 가끔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난(蘭)과 함께한 세월이 흐르면서 부질없는 생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대신 농업․농촌을 돕는 일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현장을 찾아 작지만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거의 경실련을 잊고 지내게 되었다. 덕분에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우리 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경실련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초기 회원들과의 상의 끝에 2004년 상집위원으로 복귀하였다. 다음 해 상집위원장을 맡으면서 중앙과 지역 경실련간의 소통을 보다 활성화하고 상근활동가의 사기 진작, 보다 끈끈한 인간관계 제고 등을 나름의 목표로 정하였으나 그다지 큰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굵직한 사건들로 시끄러웠던 한 해를 큰 사고나 싸움(?) 없이 마쳤고, ‘시민운동 초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는 일조하지 않았겠냐고 스스로 위로해 보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경실련 활동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이고 동시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요즈음 한 발 물러서서 경실련을 바라보면서, 분명 경제와 분배정의 실현을 위한 시대적 과제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활동이 미진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문해 본다. 90년대 후반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관심은 경실련을 거쳐 이슈화 되고 대안이 제시되었다. 이후 많은 시민단체가 전문분야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사회적 이슈의 상당 부분이 제도권 정책으로 흡수되고 있음에도 ‘백화점식이며 나열적인 관심’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빈곤층은 늘고 중산층은 감소하는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어 중산층 회복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인데, 원론적인 대안 제시를 넘어 작지만 보다 실천적인 활동은 불가능한 것인가? 젊은 세대들은 정치보다는 개인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고 거대 담론은 위선적이라 생각하는데, 이들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청년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이들의 고민을 다소나마 덜어줄 수 있는 우리의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이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넨 적이 있는가?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영세농어업인, 취업 포기자, 조기은퇴 하는 베이비붐 세대 이들 모두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껴안고 가야 할 대상인데 이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대책과 자세는 마련되어 있는가? 온통 물음뿐 시원한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의 초심인 경제와 분배정의 실현을 보다 앞당기기 위해, 문제의 초점을 좁혀 인력과 활동을 집중토록하고, 높은 곳을 향해 소리치기보다는 낮은 곳을 향해 보다 세심한 배려와 애정을 쏟도록 하며, 회원들의 아픈 곳을 찾아 조금 더 세밀하게 보살피는 노력에 다시금 열정을 되살려 동참하고 싶다.



<약력>
전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
    경실련 상집위원장, 정농생협이사
현 경실련 중앙위부의장
    서울대학교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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