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걷겠다는 것인가 _이승철 한양대

관리자
발행일 2014.07.17. 조회수 577
칼럼



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기어코 걷겠다는 것인가


이승철 한양대 토목공학과 4학년 /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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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 초등교육을 일본어로 받은 할머니는 팔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숫자를 일본어로 센다. 그게 더 편하다고 한다.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 하나가 있다. 45년 8월 15일, 느닷없이 흘러나온 라디오 전파에서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정규 수업 대신 밭에서 작업을 (아마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 학생들을 동원한 듯하다.)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할머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이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지독한 한국어 말살 정책과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 때문이었다. 지금의 할머니는 일본이 저지른 잔악한 전쟁 범죄와 식민 지배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광복한 지 5년 만에 겪어야 했던 6.25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에서 진 일본은 무조건 항복과 함께 ‘육, 해, 공군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이를 더 발전시켜 평화헌법 9조를 제정하여 발표한다.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써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의 평화 헌법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끈질기게 성찰한 끝에 내놓은 의지의 산물이었다. 비록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라고는 해도 평화 헌법이라는 조항은 그 자체로 일본이 세계에 자랑으로 내놓을 만한 정신적 보물임에 틀림없다. 또한 칸트가 영구 평화를 위해 제시한 단서를 한 나라가 성문법에 실제화시켜 놓았다는 사실은 일본이 세계 평화의 전초 기지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헌법의 정신을 수출하고 세계에 전파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일본 정부는 그것의 해석을 각의 결정만으로 변경해버렸다.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을 일본 정부가 자진해서 후퇴시킨 것이다. 나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의 집단 자위권 용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아무리 침체기라 해도 일본은 경제 대국이다. 부유한 나라가 막강한 군대를 갖는 건 한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일본은 국방 체계를 방어 중심에서 공격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는 추세다.


자주국방이라는 측면에서 교전권 주장에 크게 딴죽을 걸고 싶지 않다. 다만 왜 하필 지금이냐는 거다. 미국의 지지만 있었을 뿐 이웃나라와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 보통국가를 외치기 전에 일본은 주변국과 신뢰 쌓기를 우선하여야 한다. 그런데 신뢰는커녕 군비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일본의 영토 야욕은 이미 그 전례가 수도 없이 많다. 아베 정권의 과거사 인식마저 의심스러운 가운데 원폭을 맞고 항복을 선언한 일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원전 사고로 곤욕을 치른 아베 정권은 놀랍게도 원전 대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추측해보는 일이 나로서는 정말로 두렵다. 이런 정권을 이웃나라가 어떻게 믿고 군국화를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기어코 걷겠다는 것인가.


현재 동북아 정세는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리고 일본의 헌법 해석 변경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북한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균형 잡힌 외교를 한답시고 북한, 일본과는 대화를 끊은 채 중국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를 외줄 타기 하다 날려버릴 것인가 아니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동북아 외교의 중심으로 솟아오를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정부의 외교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평화는 전쟁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꽃 피는 것이다. 내가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은 이뿐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정부는 지킬 의지가 있는가?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동북아에 평화와 이익을 가져다주겠다던 정부는 이제 혼자말로 미래를 낙관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밖에 보여주고 있지 않다. 대화와 소통이 어려운 건 알겠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와 소통이다.
 
불신과 반목의 끝은 언제나 전쟁이다. 모든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전쟁보다 비참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수단은 어디에도 없다. 앞서 할머니가 겪었을 전쟁과 식민지배의 참혹을 반세기도 더 지나서 지금의 우리가 되풀이할 수는 없다. 온갖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지혜와 슬기로 대화와 협력의 다리를 놓아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라. 입을 닫는다고 해서 북핵 문제, 통일 문제, 경제협력 문제, 금강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대화하라. 입을 닫는다고 해서 역사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신사참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휘몰아치는 동북아 외교의 격랑 속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나아가 우리와 이웃한 세계 시민들이 전쟁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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