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평등ㆍ개인주의ㆍ자기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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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7.04. 조회수 734
칼럼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를 이번부터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자유주의는 건강한 근대 민주시민사회의 운용에 필수적인 기본원리를 갖고 있다. 이 기본원리들은 오늘날의 현대 민주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생명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2차대전 이후 후진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가지 근대화를 모두 성취한 나라이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시민사회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의 하나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인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아닌가 한다. 자유주의를 보수 쪽에서는 반공주의로, 진보 쪽에서는 부르주아지의 수구반동주의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두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이다.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건강한 근대시민정신이다.

다음 기회에 보겠지만 자유주의는 지금까지 시대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하여 왔다. 고전적 자유주의(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 영국)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자유주의(19세기 후반 및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 질서자유주의(2차대전 후 서독), 복지국가적 자유주의(2차대전 이후 구미 선진국), 신자유주의(1980년대 이후 약 한 세대 동안의 선ㆍ후진국) 및 탈신자유주의 내지 수정된 복지국가 자유주의(최근의 선ㆍ후진국) 등 여러 자유주의가 등장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 존로크

아래에서 볼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는 영국 철학자 로크(John Locke; 1632∼1704)에 의해 대부분 정리되었다. 만인 평등, 개인의 기본권(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의 존중, 합의에 의한 정부(사회계약론), 정부권한의 제한과 권력분리, 종교적 관용, 법치주의, 정부에 대한 사회의 우위, 혁명권 인정, 정당방위의 원칙 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부분 기본 원칙이 그의 『통치론』(1690)에 나와 있다.

1. 만인평등(사회적 평등)

지난 네 번째 칼럼에서 살펴 본 만인평등(본원적 평등) 사상이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는 주장은 여기서 도출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을 억압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인 인권과 인격에서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본다. 모든 개인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진 절대적 존재로서 완전히 평등하다. 모든 개인은 신분, 인종, 성, 종교, 재산 등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게 그 자체로 절대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자유주의 이전의 전근대사회에서는 국가, 민족, 가문과 같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종교나 이념을 위해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단의 강요에 의하여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근대윤리의 정수인 인본주의(humanism)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평등한 인간관에서 도출된 윤리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인격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이 이를 잘 요약한다. 칸트는 이성이 없는 존재는 수단으로 쓰이는 물건에 불과하여 이성적 존재자만이 인격이며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격은 목적 자체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여기서의 이성은 논리적 사고능력인 순수이성만이 아니라 윤리의식인 실천이성도 포함한다. 칸트는 윤리의식은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았다. 2000년 가까이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파악하던 기독교 인간관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독자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자신을 자각한 표현이 인본주의이다.











▲ 임마누엘 칸트

이와 같이 원래 자유와 평등은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유주의는 평등을 기본원리로 전제하며, 자유주의는 만인평등의 사상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구체제의 신분사회에서 평민이라는 이유로 왕과 귀족들에게 차별을 받았던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을 속박하던 신분의 굴레를 벗기 위하여 만인평등의 자유주의를 내걸고 왕과 귀족에 대항하여 싸워 승리하였으며, 그 결과 만인평등의 사상이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요즈음은 만인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자유주의가 제도적으로 실현된 다음부터이다. 서양의 경우에는 빨라야 이삼백년 전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겨우 60여년 전의 일에 불과하다. 그 이전 인류가 국가를 이루어 살아 온 수천년의 긴 세월 동안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종교나 사상은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의 생각에만 그쳤을 뿐 현실에서는 신분, 인종, 성, 종교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운 인간차별을 당연시하여 왔으며, 그 결과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는 주인보다,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므로 노예는 주인의 지시를 받고 여자는 남자의 지도를 받아야 함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심지어 여인과 아이들의 공유까지 주장하였다. 이런 오랜 편견과 악습을 타파하고 만인평등의 사회를 최초로 실현한 것이 자유주의이다. 백년 전의 조선말기나 불과 육십여년 전의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천민이란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심한 차별을 받았던가를 생각하면 만인평등의 자유주의사상이 얼마나 힘찬 생명력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근대와 전근대가 다른 것이며, 근대를 전근대로부터 구분 짓는 핵심은 바로 만인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문화는 기본적으로 만인평등과 개인주의의 문화인 데에 반하여, 동양은 차별과 공동체의 문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서양에서도 자유주의가 확립되기 전에는 동양과 똑같이 개인주의도, 평등사상도 없었고, 신분차별이 동양과 똑같이 심하였고 이를 타도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시민혁명이었다.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사상은 인류역사상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상이자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은 원칙의 수준에서의 평등을 의미할 뿐, 현실에서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중요한 평등은 앞의 네 번째 칼럼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적 평등(정치적, 법적 및 협의의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인데 자유주의는 본원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지의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적 평등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여 왔다. 부르주아들의 사상이었던 고전적 자유주의는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당연시하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19세기 영국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만든 '신구빈법'(the New Poor Law of 1834)이다. 이 법은 실업자들을 집단작업장에 강제로 수용하고,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수용자들을 극히 열악하게 처우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노동자들은 강제작업장을 '노동자의 바스티유감옥'라고 불렀다. 분배의 불평등은 자유주의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고찰하기로 한다.

2.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개인 자유의 보장을 사회운영의 기본목표로 삼는 주장이므로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자유주의의 기본입장이다. 개인주의는 구체적 인간인 개인만이 궁극적인 가치를 갖고 있고, 국가, 조직(단체, 집단), 계급, 이념 등 그 이외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는 없고 오직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갖는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다른 것들을 위해서 개인을 수단시하여 희생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집단을 위해 개인은 희생될 수 있다고 보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혹은 집단주의 collectivism)를 자유주의는 반대한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는 여러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집단이 중요한 것은 집단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소중한 것은 구체적인 개인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와 인본주의는 상통한다. 인본주의가 소중히 여기는 구체적 인간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종전에 집단이나 종교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던 악습을 반대하여 등장하였으며 이런 점에서 인본주의와 개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소중한 것은 구체적인 인간이며 구체적 인간은 어디까지나 개인이다.

개인주의는 집단이나 남보다 자신을 앞세운다. 개인주의는 자기중심적 생활과 자기사랑(self-love)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이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인간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다. 그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이 장려되었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대개 비윤리적인 것으로 비난받아 왔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항상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생활하여 왔기 때문이다. 공동체생활에서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개인주의는 비난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 윤리관은 자본주의사회와 부합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상공업자들은 자기 책임으로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 자기 책임으로 사업을 경영하여 이익이 나면 자기가 가지고 손해가 나면 자기 홀로 부담한다. 개인주의는 자본주의경제에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서 개인기업을 운영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중소상공인들의 생활관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중세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변함에 따라서 사회윤리가 공동체중심의 윤리에서 개인중심의 윤리로 변화한 것은, 경제가 변하면 윤리, 정치, 문화 등 모든 비경제적 부문들이 모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혼용되어 비난받기도 하지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분명히 다르다. 이기주의(egoism, selfishness)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히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분별한 탐욕인 반면에, 개인주의는 자기의 권리와 동등하게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여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로크는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손상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자연법임을 주장하였고, 스미스(Adam Smith)는 자기중심적 생활이 당연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탐욕은 반드시 공정한 법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또 밀(J. S. Mill)은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를 허용하여야 함을 자유주의의 원칙으로 강조하였다. 자연법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 사람들이 사회(국가)를 형성하여 살기 이전의 상태인 자연상태에도 존재하던 법을 말한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무런 규칙도 없이 무제한 자유를 허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공정한 규칙(법)은 자유주의의 필수조건이다. 공정한 규칙이 없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규칙 내에서의 자유이다. 공정한 규칙이 없는 약육강식의 밀림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스미스의 말처럼 우리의 양심은 종종 우리의 탐욕 앞에서 무력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강제하는 공정한 규칙(법)이 사회유지에 필수적이다. 공정한 질서가 없는 무법천지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로크가 말한 바와 같이,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오위켄(Walter Eucken)으로 대표되는, 2차대전 직후 서독의 질서자유주의만이 아니라, 모든 자유주의가 질서자유주의이다. 공정한 법(규칙)과 이를 준수하는 준법정신은 자유주의의 필수요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의 공정한 내용과 공정한 집행을 의미하는 법치주의는 자유주의의 필수전제조건이다.

3. 독립심과 자기책임

개인주의에 입각하면 독립심과 자기책임은 당연하다.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생활에 국가나 타인이 간섭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반대로 국가나 타인의 지원도 바라지 않고, 각자 자기 권리와 책임 하에 독립하여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경제생활에서의 독립정신이 자립심이다. 자기와 자기가족의 생계는, 국가나 친척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함이 자유주의의 기본원칙이다. 개인독립성의 원칙에서 보면,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의 노력의 성과를 자신이 향유하는 이 원칙에서 사유재산제도의 정당성이 도출된다. 사유재산은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재산으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는 자신 홀로 책임져야 한다. 이런 독립과 자립의 태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각자 자기 노력과 자기 책임으로 독립적으로 사업하여 살아가는 부르주아의 생활방식을 반영한다.

독립과 자립의 정신은 근대시민사회의 발전을 낳는 초석이 되었다. 경제적 자립심은 근대 자본주의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개인들로 하여금 타인이나 국가의 지원을 바라지 않고 자립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독립정신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정치적 독립심이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사회생활에서 개인의 독립심과 자립심은, 체제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일 것이다. 독립심과 자립심이 있어야 국민들이 각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독립심과 자립심이 없으면 스스로 노력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국가의 지원을 바라는 의타심이 생기게 되고, 의타심은 나태와 불만과 분쟁을 낳기 쉽다.

현재 우리사회에 크게 결여된 것 중의 하나가 자립심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보면, 예술협회장, 협동조합이사장, 학교장, 노동자, 농민, 식당주인, 화물차주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국가의 지원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언론과 지식인들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정부는 무엇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는 모든 문제가 자신들의 책임이고 자신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함이 원칙이다. 정부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국민들이 낸 세금을 자신에게 무료로 달라는 것이므로, 정부에게 지원해달라는 것은 다른 국민들의 돈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돈을 그냥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없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의타심을 버려야 우리사회가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 서양 역사를 보면 개인주의가 대중의 빈곤을 개인의 잘못 탓으로만 돌려 방치하였으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적극적인 윤리의식을 약화시켰다는 중요한 한계를 나타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주의의 장점은 살리면서 한계를 잘 보완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나중에 상생의 원리에서 고찰할 것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7월 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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