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국민과 국가가 최우선이다

관리자
발행일 2008.12.04. 조회수 585
칼럼

송병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이번 제18대 국회는 국회법을 어겨가며 40여일 늦게 개원했고, 또 상임위원장 선출 문제로 40여일을 허송세월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질책과 비난을 받았다. 그런 국회가 이번에는 매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심의,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제54조 2항을 위반하게 됐다. 이 규정에 따르면 국회는 해마다 12월2일까지는 차기 회계연도 예산안을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예산안과 각종 감세 법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사실상 헌법이 규정한 시한 내 처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미 국회에서 헌법 규정을 무시한 예산안 처리가 연례행사처럼 된 지는 오래다. 그래서인지 입법기관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불법인지조차 모르는 지경이 됐다.


지난 주 목요일 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안을 포함한 각종 법률안을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할 수 있도록 당부한 이후, 여당은 야당과의 합의처리보다는 조속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이는 172석의 거대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은 기본적으로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5%대로 전망하고 산출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포함한 각종 국내외 기관들은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 이하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아울러 법인세·소득세·상속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를 포함, 무려 63개에 이르는 각종 감세 법안의 혜택이 대부분 부유층과 대기업에 치중돼 있다.


한 예로 법인세 감면이 통과될 경우 전체 기업의 99.7%를 차지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최저한세율’의 대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나, 0.3%에 불과한 소수 대기업은 감세 혜택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감세안이 핵심 지지층에 대한 보은 내지 결집을 위한 조치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새해 예산안의 보다 큰 문제점은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한 서민·자영업자·중소기업·실업자 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위기 대응책으로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감세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과 추가 대책을 보면 급증할 취약 계층을 위한 법정 사업비를 소폭으로 늘림으로써,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거나 복지의 질을 높이려는 적극성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고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부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과 실효성 있는 실업 대책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예산안과 감세안에 대한 손질은 불가피하다. 여야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대화가 절실한 이유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제2의 IMF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국민과 국가를 최우선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공자의 말을 빌려 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진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는데, 새로운 예산안과 감세안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될까 해서 한마디 덧붙인다. 공자는 논어에서 ‘국가를 다스리는 자는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사회를 염려할 일이다’라는 말로써 부의 균등 분배가 정치의 핵심이라고 설파했는데 정치 지도자라면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이다.


※ 이 글은 문화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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