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관리자
발행일 2005.07.06. 조회수 2105
스토리

어제 아침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는 10시에  잠원동에서 약속이 있었다.  집을 나서는 마음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운전석에서 차창 밖의 뿌연 도심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레 사무실 사람들을 생각한다.


지난 봄에 사무실에서는 새로 간사채용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도 한 명을 뽑기로 했다.  사무처에서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한 일곱 명의 지원자를 로즈수녀님과 내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연봉이 얼마라는 남이 알아주는 화려한 직장이라면 인터뷰하는 입장에서 콧대깨나 세울 수 있을텐데...  이건 지원자들에게 사정쪼로 재정형편부터 설명해야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원자들의 풋풋한 젊음이 싱그럽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지원자들, 그러나 경실련 근무가 그들 인생에 던질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아는 나는 그들보다  더 뻣뻣해진다.  이윤을 추구하고 창출해서 그 이익을 분배받는 곳이 아닌 곳 - 비영리단체, 영어로는 엔지오(NGO).  이곳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내가 먼저 발벗고 나서야하는 곳이다.  내 일신의 안녕과 평안을 추구하기 보다 우리 이웃의 행복을 위해 내 몸을 던져 기쁘게 일해야 하는 곳이다.  그것만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되어야한다.   


드디어 경제정의에 대하여 투철한 목적의식을 가진 한 사람이 선발되었다.  새로운 시민운동가의 탄생이다.  경실련등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을 간사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직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간사란 중심이 되어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스스로 용솟음치는 정의감에 사회의 부조리를 고쳐보려고 감히 나선다.  거기에 대가성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당시 두 명의 후보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명이 모두 경실련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본인이 희망하던 대로 국제연대에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홍보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홍보팀에서 일하게 된 정양은 낭만적인 정의감에 잠시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렸었나 보았다.  그녀에게 경실련은 임시방편으로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이는 법.  몇 달 후 그녀는 외국기관에 자리가 나자 가버렸다.  월급은 배가 넘고 육중한 체구의 서양사람들과 카펫이 깔린 잘 정돈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의 회사는 사세가 날로 확장되어 신규 직원채용도 많은가 보았다. 


나는 경실련에 남아 일하는 도양과 떠난 정양이 간 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최저생계비도 못받는 경실련 간사들.  그들도 가끔, 아니 자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혹은 성인으로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 회의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가장 진부한 질문, 우리가 빵만으로 살 수 있는가?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빵없이 살 수 없는 것은 확실하지만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가치관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일상의 행, 불행이 월급봉투의 두께하고 상관이 있을까?  사람은 보람있는 일을 할 때 당당해진다.  손에 쥐는 얄팍한 보수에는 상관없이 여전히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간사들.  항상 의기충천해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일하는 곳이 경실련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올해로 30년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닌 적도 있었고 대우가 좋은 곳에서도 일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경실련에서 일하고 있다.  누가 내게 그동안 일한 곳 중에서 가장 좋은 일터가 어디였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경실련이라고 대답하겠다. 


이유는 한가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그것이 얼마나 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조금 더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해 동료와 암암리에 경쟁하는 수고가 이곳에는 없다.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고가 없다.  내 일상의 얘기는 적어도 경제정의, 사회정의에 관한 것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일로 고심한다.  이 충만함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일하는 곳이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곳이다.  나는 이제야 깨달은 진리를 누구에겐가 말해 주고 싶다.  경실련 간사들, 당신들은 훌륭합니다.  파이팅!!  (2003년 11월28일)


유인애 (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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