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주이란' 소설 '혀'

관리자
발행일 2009.02.04. 조회수 2193
스토리

‘주이란’ 소설 ‘혀’



강영실  갈등해소센터 간사



속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 소설책이었다. 출판사도 낯설었고 왠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는 제목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피 흘리며 쓴 소설이라 글에서도 피 냄새가 난다는 작가의 말은 재미없었다.

“어머, 언니 조경란씨 소설이 표절시비에 휘말렸다는데?“
“야, 너 몰랐냐? 작년부터 엄청 말 많았잖아.”
“그래? 그러고 보니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네.”

딱히 기억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언니와 나는 빈손으로 서점을 나서며 문단을 성토하는 말을 몇 마디 주고받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에서 ‘조경란; 혀; 표절’을 검색해 봤지만 언니의 말과는 달리 기사가 별로 없었다. 이런, 괜히 아는 척 했다.

프레시안이 주이란의 주장 전문을 포함, 집중적으로 연속 기사를 실었고,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한 두 차례 기사를 실었을 뿐이었다. 주이란의 요청을 받고 두 소설을 검토한 바 있는 한 기성 작가는 이 재미없는 싸움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글을 써서 실었다. 그는 주이란에게 문제제기를 해봐야 본인이 입는 상처가 더 클 테니 잊어버리고 열심히 글을 쓰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물론 자기 일 인양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소설가 김곰치는 주이란의 문학적 상상력과 작가로서의 자질을 극찬하며 침묵하는 문단에 독설을 퍼부었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 해도 실상은 구린내 나는 부조리의 난장.

기득권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디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 그래서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나 힘의 우위에 있다.

한 사람의 독자에 불과한 나는 사실 문단의 부조리함을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명성을 얻더니 달라졌다는 말을 할 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작가도 없다. ‘혀’라는 동일한 제목의 소설 두 편을 둘러싼 표절 논란과 관련해서도 침묵하는 문단과 언론에 대한 공분 보다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신춘문예 응모작인 단편소설을 표절한 심사위원의 장편소설이라니…….

주이란이 표절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맛보는 혀, 거짓말하는 혀, 사랑하는 혀’라는 혀에 대한 세 가지 동일한 구분법과 ‘혀’라는 독특한 제목이다. 그녀는 주위의 조언과는 반대로 적극적으로 표절 알리기에 나섰다. ‘글의 꿈’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소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차린 출판사다. 보란 듯이 ‘조경란이 심사한 주이란의 소설’이라고 띠까지 둘렀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조경란 작가는 말이 없다. 해마다 문학상을 수여하는 언론도 조경란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지만 표절논란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일부에서는 명망 있는 문학상을 줌으로써 조경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조경란의 책을 출판한 이는 표절논란으로 책 판매가 증가 할 테니 오히려 잘 됐다는 식이다.

직접 문제작을 확인하고자 주이란의 소설을 구입해 읽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촛불소녀’라는 작품은 이번 표절논란을 빗대어 쓴 단편이다. 이미 전후 사정을 기사를 통해 알고 있고 얼마간의 작품 평까지 읽은 탓인지 작품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간결한 문장은 어딘지 불완전하게 느껴졌고 작가적 상상력은 풍부했지만 기본기가 아직은 부족한 상태여서 억지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솔직한 감상평은 기발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설집으로 요약된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인 작가’ 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작가 주이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아직 조경란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표절을 했다 하더라도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썼을 성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혀에 대한 세 가지 특징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두고 표절여부를 가려야 하는 셈인데 과연 가능할까? 호기심으로 시작한 책읽기였는지라 호기심이 덜해지자 조경란의 ‘혀’를 읽고 싶은 마음이 반감됐다. 정작 본인은 묵묵부답인 상황에서 책 판매부수만 올려주기도 싫고.

그렇지만 분명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 주이란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독자의 입장에서 표절여부를 가려보고 싶다. 표절이 사실이 아닐 경우 조경란 작가로서는 괜한 시비에 휘말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 이 글은 월간경실련 12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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