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연령 하향 조정]의무만큼 권리도 인정해야

관리자
발행일 2004.02.28. 조회수 723
칼럼

 고계현(경실련 정책실장)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연령 하향을 논의하다 결국 현행 20세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결국 각 정당은 이번에도 선거연령 하향 논의를 ‘정치철학적 기준’이 아닌 단순한 당리당략적 관점의 ‘표의 논리’에 따라 결정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의 선거연령 하향 논의는 선거연령을 하향할 경우 새로 발생할 무시 못할 표들의 성향을 고려해 여야간 공방을 벌이다 없던 일로 하는 것을 반복해 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시키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철학과 기준을 갖고 논의를 했다면 현행 유지라는 결정을 또 다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연령은 1948년 건국 당시 21세로 시작돼 지난 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20세로 낮춰졌다. 그 후 40여년 동안 이같은 연령의 법적 규정은 그대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줄곧 선거연령 하향이 제기돼 왔다.

이러한 제기 배경에는 인권탄압의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다. 선거권을 스스로 대표자를 뽑는 국민의 참정권적 기본권리라면,과거 유럽에서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아 여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듯이 대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능력을 가진 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인권탄압의 소지가 존재한다. 고문만이 인권탄압이 아니라 이같은 선거권의 박탈도 인권에 대한 탄압이다.

더구나 18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이에 따라 여러 의무도 부과되는데 의무는 지우면서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유언가능 17세,병역 지원입대 17세,운전면허 취득 18세,공무원 임용 18세,혼인 남자 18세 여자16세,선거운동 자원봉사 18세,병역 징집 19세로 부과하는 법률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주민증과 함께 병역 의무 등을 부과하는 18세가 되면 충분히 정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표현 행사할 수 있는 인격체로 인정하고 제정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이 그에 맞는 권리를 개인에게 부과함에 있어서는 반대로 ‘민주적 성숙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권리-의무간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만 19세 남자이고 직장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하는 청소년의 경우 병역,납세의 의무는 있지만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선거권을 가질 수 없다면 이는 명백히 인권탄압이다. 의무를 지우면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불복종’의 사유가 된다. 이 잘못된 법은 즉각 고쳐야 한다.

18세 이상으로 선거연령이 하향 조정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 영국 중국 등을 포함한 세계 82%의 나라는 18세 이상이면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처럼 20세가 넘어서야 선거권을 부여하는 나라는 튀니지 파키스탄 피지 쿠웨이트 보츠와나 일본 등 2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선거연령 하향 조정은 단순히 선거인단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참여의 폭을 넓혀 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한 정치를 만들고,시민의 권리를 부여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세우는 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기존 정당의 당리당략에 좌우되어 더 이상 지난 40년처럼 계속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교육수준,국가와 사회의 민주화,그간의 엄청난 국가경제의 발전 및 국민의식화 수준의 향상,현실적으로 보장되는 언론의 자유와 언론매체의 발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미 18∼19세 연령층의 국민은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할 최소한의 능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참정권은 바로 선거권이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버리고 그들에게도 지체없이 선거권을 인정해야 한다.

**이 글은 국민일보 2월 2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