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크리킨디-Peace & Green Boat 두 번째 이야기

관리자
발행일 2005.09.21. 조회수 2254
스토리

P&G Boat 보트 선상에선 주최측인 피스보트와 환경재단에서 진행하는 공식적인 토론이나 포럼, 영화제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일반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진행하는 자주기획 프로그램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일본의 '하치도리 프로젝트'란 팀에서 진행하였던 자주기획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치도리는 일본말로 벌새를 뜻하며, 이 팀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남미의 한 부족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크리킨디라는 이름의 벌새에 관한 우화입니다.

어느날 숲에 큰 불이 났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불을 피해 피난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벌새 크리킨디만이 홀로 한방울, 한방울 물을 물어다가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고 또 비아냥 거렸습니다.
조그마한 벌새 한마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면서요
이에 크리킨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야.'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이야기가 저의 흥미를 끈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하치도리 프로젝트 팀이었습니다.



(가운데 그림판들고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친구가 이 팀의 리더(?) 스즈키 아유미란 친구 입니다.)

실상 저는 이 팀이 혹은 이 단체가 무슨일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마치 구연동화 하듯이 그림판 들고 얘기해주고 나서, 한사람 한사람 이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 것 같냐 물어보고, 또 그렇게 돌아가면서 듣는 것이 전부였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도무지 저의 궁금증을 풀 도리가 없었습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는, 어설픈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번째 참가한 프로그램이 끝나고 정리하는 시간에 개인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들은 내용이란 것이..
이 팀이 만들어진 것은 올해 5월달이고, 그동안 해온 주요 활동은 바로 위의 벌새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온 것.. -_-;;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들기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 티셔츠와 유기농 커피 등을 아주 비싼(!) 가격에 파는 일이 전부 였습니다. (저두 3,700엔 정도 하는 고가의 반팔 티셔츠 하나 구입했습니다. -..-)

그리고 또 솔직하게.. 현재로서는 지구온난화 예방 등의 환경이슈에 대해 활동하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갖고 있고, 이런 자리(벌새 이야기를 알리고 같이 얘기하는 자리)를 통해서 구체적인 활동 프로그램을 찾기를 원한다고 얘기 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저의 첫 느낌은 '얘들 참 대책없구나', '참 순진하구나' 입니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재밌는 옛날 이야기 하나 듣고 삘 받아서(!), 감정에 복 받쳐서 아무 계획없이 무작정 뭔가 해보려는 마음만 앞섰구나..' 였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그런 마음 한편으로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마음 또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내 마음속 한켠을 어둡게 만든 그것은 바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책없이 저지를 수 있는 열정.
언제부턴가 내게는 없어져 버린 그 순수함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많은 고민과 갈등을  넘어 시민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그 순수함이 더 이상 내게 있지 않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직업이 시민운동가일 뿐, 다른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가치에 얽메여 하루하루의 삶을 고민할 뿐인 나의 모습.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스스로를 속여왔지만, 더 이상 높은 이상이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월급과 폼나는 일을 갈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크루즈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한달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아직도 저 역시 하치도리 프로젝트의 그들처럼 딱히 뚜렷한 할 일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과 이상을 품게 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

배에서 내리기 전 마지막 전날 밤, 하치도리 프로젝트 프로그램 마지막 날에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P&G Boat에서 우리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에 대한 많은 고민과 진실하고 간절한 소망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배안에서는, 배를 타고 있던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매우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배에서 내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러한 경험과 생각들은 아주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벌새 크리킨디가 물고 있던 물방울과도 같습니다.

흔해빠진 상념이지만.. 한방울의 물방울은 결코 불을 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바가지의 물은 작은 불을 끌 수 있습니다. 또는 더 큰 불을 끌 수 있도록 펌프물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배에서 내리면 그렇게 우리가 함께 나눴던 생각과 바램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라고..

배에서 내린 후 다시금 많은 고민과 갈등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처음 시민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을 때처럼..
새로운 운동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에 따른 걱정과 근심이 저 자신을 휘감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 후에 저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민규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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