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의 허와 실

관리자
발행일 2005.08.03. 조회수 564
칼럼



권영준(경희대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재벌들의 악취나는 구태(舊態)가 연일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삼성그룹의 공정거래법 위헌 소송,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사주의 검은 돈거래를 폭로한 X파일,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과 비자금폭로 등 대형사건의 연속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계는 적어도 겉으로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선포하면서, ‘재벌개혁론’을 경제살리기에 찬물을 끼얹는 반(反)기업 정서로 매도하였고, 재벌들의 제왕적 기업지배 구조를 한국형 최적(最適)의 지배구조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급기야는 올해 초 청와대가 앞장서고 일부 시민단체가 들러리를 서는 소위 ‘반부패투명사회 협약’이라는 거창한 의식을 통해 재벌문제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특히 분식회계 유예를 위한 증권집단소송제의 개정을 정점으로 하여 더 이상 재벌개혁론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공정거래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삼성그룹이나, 실정법을 위반한 삼성계열사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금융감독당국 입장에서 최근 사건들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큰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16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수십만 명의 실직자들이 거리로 쫓겨났던 IMF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환란(換亂)의 가장 큰 당사자 중의 하나였던 재벌 오너들의 행태에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 재벌 정책이 회칠한 무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근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환란 이후 지난 8년 동안 재벌개혁의 핵심인 기업지배구조는 주변은 두드려왔지만 심장부인 총수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구축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재벌 총수들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원칙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밥 같이 먹고 그룹의 제왕으로 대접하면서, 불법을 저질러도 의법조처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즉각 사면함으로써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재벌들이 법과 규칙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둘째,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사각지대이며 재벌 오너들이 편법적으로 활용하는 비상장법인에 대한 효율적인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상장법인의 경우 상장법인보다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재벌 오너들의 작위적 편법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감독수준을 상장법인보다 높여야 한다.


셋째, 재벌들이 선동하는 사이비 민족주의와 반기업 정서론을 근거로 시장친화적 견제시스템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재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왜곡하고 동시에 반기업 정서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휘둘러 자신들의 경영권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과장하여 동 제도를 없애거나 무리한 방어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을 잘못하거나 불법을 자행한 경영인은 퇴출되고 교체되는 것이 기업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 대우 계열사들이 오너가 퇴출되고 구조조정한 후에 기업가치가 상승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끝으로 참여정부 내에는 두 가지 다른 재벌정책이 존재한다. 하나는 공정위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개혁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금감위를 중심으로 한 재벌감독 유기(遺棄)정책인데, 대통령은 양자택일을 하여야 한다. 앞에서 야단치고 뒤에서 봐주는 정책기조는 재벌들로 하여금 더욱 기형적인 행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진정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시장개혁을 원한다면, 모든 불법거래의 길목을 알고 있는 금융감독 조직의 근본적 개혁 없이 재벌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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