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장맘이다!

관리자
발행일 2011.09.09. 조회수 1128
스토리






나도 직장맘이다!



지우가 그린 엄마얼굴



채준하 기획·총무팀 부장



 



 아침 6시 30분. 5분만 더, 10분만 더······· 더 자고 싶지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도 챙겨 먹지 못하고 시어머니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애들은 버리고(?) 서둘러 나온다. 4살 둘째 딸에게 잘못 걸렸다간 비디오 틀어 내라, 우유 줘라, 과자 줘라 하며 내가 나가지 못하게 어리광을 부린다. 그 어리광을 받아 주는 날이면 그 날은 지각이다. 어느 날은 둘째 딸이 깨어나는 소리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신발을 들고 문밖으로 나온 적도 있다. 맨 발로 나온 내 모습도 웃기지만 딸에게 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1시간 내내 서서 가야 하는 날도 많지만 운이 좋으면 두 정거장도 가지 않아 앉을 때도 있다. 그 날은 길에서 돈 주운 거와 같이 횡재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내 머리는 상모 돌리듯 이리저리 휘젓고 있다. 침까지 흘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자다 귀신같이 정확하게 정류장에 내려 사무실에 도착한다. 지하철에서 상모 돌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우아하고 여유 있게 블랙커피를 진하게 한 잔을 타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과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눈싸움을 하다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내 가족에 이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나의 직장 동숭동 사무실. 이 곳을 나는, 내가 꿈을 키우며 우리 아이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안식처라고 표현하고 싶다. 편견 없이 대하고 서로 배려해주는 동숭동 사람들과 8년째.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 입었을 지도 모르고 나도 한 번쯤은 누구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 수 있는 동숭동 사무실의 동료와 선배님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내 기억 한 켠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할 퇴근 시간이다. 엄마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콧소리가 절로 난다. 퇴근 시간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음은 급해지고 걸음은 빨라진다. 집에 전화를 해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과자를 주문 받고 지하철에 올라탄다. 아빠가 일찍 온다는 정보가 있는 날이면 동료들과 저녁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면 대부분 집으로 향한다.

일찍 퇴근 하는 날엔 지하철 안이 조금 한산해 앉아서 갈 수 있다. 그럼 난 또 아침에 다 돌리지 못했던 상모를 마저 돌리기 시작한다. 아침과는 달리 긴장이 풀려 가끔 몇 정거장을 지나칠 때도 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문 여는 소리에 엄마인줄 알고 뛰어와 내 품에 안겨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 이 맛에 산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반갑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둘째는 보고 싶었다며 거짓으로 우는 척을 한다. 엄마도 너무 보고 싶었다고 안아주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예상은 했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어질러 놓았다. 장난감, 먹다 남긴 과자봉지······· TV, 에어컨, 선풍기도 다 켜놓았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방으로 들어섰지만 어머니는 이미 KO패! 나도 어머니처럼 KO패 당하고 싶지만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집 안을 치우기 시작 한다.





쌓아둔 설거지와 바닥 걸레질까지 끝내려면 아이들을 목욕탕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그 동안 설거지와 청소를 끝내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다. 먹고 나면 앉아서 쉴 새도 없이 목욕탕 안에선 “엄마 다 놀았어~” 하고 나를 부르고, 소화가 되기도 전에 아이들을 씻기고 나와 머리를 말려 주고 옷가지를 챙겨주고 나면 남편이 퇴근해 들어온다. 일찍은 아니지만 술을 먹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온 남편이 어쨌든 반갑다. 잠시 남편이 아이들과 놀아 주는 동안 난 남편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힘들게 일한 남편을 위해 생선도 굽고 김도 자른다. 힘들게 일한 건 똑같은데 나는 생선하나 못 먹었다. 남편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이유로 나만 손해보는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억울한 맘도 들지만 가족이니까 되새기면서 정성껏 준비한다. 남편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큰 애 숙제를 돕는다. 오빠가 숙제하거나 공부를 할 때면 둘째도 어쩔 수 없는지 수시로 엄마를 불러 온갖 투정과 어리광 부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 백 번도 더 봤을 뽀통령 동영상에 빠진다. 이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 11시를 훌쩍 넘는다.

이제 아이들을 재울 시간이다. 그건 곧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힘들었지만 잠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날아갈 듯 몸도 가벼워진다. 아이들을 빨리 재울 요량으로 몇 가지 동화책을 읽어주고 큰 애 작은 애 사이에 누워 자장가를 부른다. 내 머릿속은 애들을 재우고 난 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하다. 그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퍼진다. 혼자만의 시간을 빨리 갖고 싶은 희망에 자장가는 한 템포 빨라지고 빨리 자라고 아이들을 재촉한다. 아이들이 잠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덩달아 나도 졸음이 쏟아진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하지만 나도 몸이 자꾸 이불과 한 몸이 되어 간다. 혼자만의 시간은 어떡하라고. 이건 아니잖아. 빨리 일어나라고 몸을 일으켜 세워 보지만 끝내 눈이 스르르 감긴다. ‘세수도 못했는데, 렌즈도 빼야 하는데······.’

이렇게 나의 하루는 마무리가 된다. 내일 또 그 다음 날도 매번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정작 나를 위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직장맘인 나를 바라보는 전업주부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에도 위로받지만, 나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춤추게 한다. 힘들지만 나를 기다려 주고 반겨주는 우리 아이들과 가족이 있고, 서로 격려하고 배려해 주는 동숭동 가족들이 있다. 나에겐 모두 다 너무나 소중한 가족들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에 가끔은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매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객(客)이 아닌 주(主)로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장 맘이 되고 싶은 나도 직장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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