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0215_황장엽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망명에 대한 경실련 입장

관리자
발행일 2000.02.02. 조회수 2968
정치

지난 12일 황장엽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북경주재 한국영사관에 망명신청한 사실은 북한에서 황장엽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춰볼 때 충격적인 사건이다. 더군다나 최근 미국과 유엔기구를 중심으로 대북식량지원움직임과 관련해 남북간의 관계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우선 황장엽의 망명동기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고, 심지어는 망명과정상의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에 남북 상호간에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의 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번 망명으로 남북간의 교류노력이 침해되어서는 안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민족화해정착을 위한 남북상호간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이번 망명사건과는 별개로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식량지원과 경수로사업, 남북경협 등은 계획대로 추진돼야 한다. 그런면에서 벌써부터 우리사회 일각에서 북한붕괴조짐과 무력도발가능성을 운위하며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물리적 충돌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있어 심히 우려된다. 이와 같은 경솔한 태도는 자칫 한반도 전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 황장엽의 1월 2일자 서신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의혹의 눈초리가 있는 만큼 국민들은 서신의 진실성 여부를 밝혀내는 데 한치의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또한 서신은 우리사회의 분열과 남북간의 대립을 조장하는 편견으로 가득차 있어, 북한체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는 황장엽의 과거 행적이 과연 사실인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한다. 우리국민의식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안기부법 노동법개정을 찬양하고,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근거없는 간첩침투설을 발설하여 우리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내용의 서신은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사회의 민주발전에 매우 위험스런 것이다.


 


따라서 서신을 둘러싼 의혹은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서신에 담긴 해악을 염두에 둘 때 혹시라도 정부당국이 이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끝으로 이번 망명사건은 단순히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같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무리하게 한-중, 조-중 외교싸움으로 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제관례에 따라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관련국들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번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촉구한다.


 


끝으로 덧붙일 것은, 이번 망명사건을 정부가 현재의 극심한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자 마자 검찰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보사건의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역사상 최대규모의 경제부정사건이라 할 만한 한보비리가, 자신이 '깃털'에 불과하다고 말한 국회의원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검찰의 발표는 어린 아이 조차 웃을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망명사건과 상관없이 정부는 한보비리의 진상을 분명히 규명하여야 하며, 개악된 노동관련법과 안기부법을 선진 민주국가에 걸맞는 내용으로 재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부디 국민들만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림으로써 국난을 가중시키는 어리석음을 또다시 범하지 않기를 간곡히 당부하여 바라마지 않는다.(1997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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