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관리자
발행일 2006.03.17. 조회수 1696
스토리

'觀國之光,利用賓于王' 중국 주(周)나라시대 역경(易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이다. 즉, 관광이란 아름다운 빛을 보기 위한 이동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관광’ 대신, ‘기행’이나 ‘답사’ 등의 용어를 즐겨 쓴다. ‘관광’은 언제부턴가 춤추는 전세버스로 대변되었고, 이런 현실에서 사뭇 진지한 개념을 찾으려는 자구책의 결과다. 이제 ‘관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선생은 “빛을 보기 위해선 어두운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밝은 곳에선 빛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며, 어두운 자리로의 여행이 생략된 관광은 지루한 관성의 확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광’은 철학적으로는 ‘낯선 것’을, 미학적으로 ‘어둠’을 찾아나서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금강산’에 다녀왔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빛을 보기 위해 떠난 가슴 설레는 관광이었다. 이미 2004년 1월에 금강산을 다녀왔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관광은 좀더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통일운동의 현장에서 뛰는 상근활동가로서 단순히 휴전선을 넘는다는 의미 이상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광은 감성적일 수밖에 없고, 빛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무리하게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결론은 ‘즐기자’는데 이르렀다.

결국 통일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즐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길. 화창하던 날씨는 진부령을 넘을 즈음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금강산 관광을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스물스물 기어나 올 쯤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

3월 15일 준공식을 앞둔 남북출입사무소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전에 임시로 마련해둔 출입사무소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출입사무소를 기점으로 금강산까지 왕복 2차로의 잘 정돈된 도로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도로의 개설로 이전에 북측 마을을 지나가던 길이 허허벌판으로 옮겨져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출입사무소 옆으로 역사(驛舍)건설도 한창이다. 동해북부선 철로의 남북공동구간인 온정리~저진구간의 완공에 따른 것으로, 북측의 온정리에도 금강산 역사(驛舍)건설이 한창이다. 머지않아 철길을 따라 금강산에 갈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남과 북을 오가는 일은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경계는 눈에 띄지 않는 작고 녹슨 표지판으로 알 수 있다.

정전협정상 휴전선(군사분계선)에는 철조망이나 철책선이 없고 표지판만 서 있다. 이 표지판은 군사분계선 위에 서쪽에서 동쪽까지 200m 간격으로 모두 1292개가 서 있다. 즉, 휴전선은 200m 간격의 표지판 사이에 가상의 선들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금강산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은 동쪽의 맨 마지막 표지판이다. 반세기가 넘게 세워져 있던 표지판은 지난 해 바람에 날라 가고 기둥만 남아있다. 이제 남과 북도 갈등과 반목을 날려버리고,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라는 의미는 아닐까?

북측 출입사무소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해로관광 때문에 장전항에 있던 출입사무소가 지금은 육로관광만 이루어지고 있어, 구선봉으로 옮기게 되었다. 남북 출입 수속이 그만큼 시간적으로 단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곳은 장전항 출입사무소 시절 북측 군인이 직접 버스 안에 들어와 검색을 했던 곳이다. 

금강산 관광은 항상 설렘이 있다. 해로관광이었다면 이런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내 두발로 북측을 넘어간다는 사실은 언제나 새로움을 전해주는 듯 하다.

작년 한해만 30여 만 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남북교류와 금강산 관광의 활성화 때문인지 이전에 보이던 긴장과 날카로움은 많이 누그러진 듯 하다. 

금강산의 겨울이름은 개골산이다. 봄, 여름, 가을에 달려있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금강산의 바위를 구석구석 다 보여준다고 해서 개골산이라고 불린다. 금강산의 여러 이름 중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또 개골산은 다른 말로 눈 덮인 산이라는 뜻으로 설봉산(雪峰山)이라고도 불린다.



금강산의 모습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예전에 신이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바위를 모았다던 전설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육중하면서도 섬세한 굴곡으로 이루어진 바위조형의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다.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바위를 뚫고 나온 소나무와 옥색 빛깔의 물, 그리고 이끼가 끼지 않은 백옥 같은 바위이다.

금강산의 매력은 비단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북측 사람들과 만나고, 직접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 중의 하나다.

북측에서 직접 운영하는 금강산호텔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과 산행에서 만날 수 있는 북측 안내원들, 그리고 이동 중에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등 모두가 우리네 이웃이다.

그들이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았건 아니건 문제될 게 없다. 스스럼없이 다가가면 된다. 오히려 우리 안에 그들을 재단하고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다. “조국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을 해 달라” 구룡연폭포 길에 만났던 안내원의 말이다.

금강산에서의 일정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구룡연, 상팔담, 해금강, 삼일포, 교예공연, 온천 등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어느 틈에 다시 남측에 서 있다.

금강산은 많이 변하고 있다. 신계사를 복원하고 있고, 김정숙 휴양소를 호텔로 리모델링하고 있으며, 온정각 초입에는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이 한창이다. 금강산 관광의 새로운 활로 모색을 위한 골프장 건설도 한창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친근해진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첫날 진눈깨비가 내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길이 확 트였다. 남과 북, 단숨에 뛰어갈 수 있는 거리위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져든다.

북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철조망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이중 삼중으로 쳐져 있는 것이다. 해변을 따라, 산 능선을 따라, 철길을 따라 늘어선 철조망들. 과거의 사건들이 어떠하든, 북측의 군사지역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스스로 섬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낯선 어두움에 있었는가? 그리고 빛을 보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 애써본다. 적어도 지루한 논리의 벽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맘껏 통일을 즐겼다. 남으로 넘어 오는 길 끊어진 백두대간을 이어 그 길에 서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김삼수 (통일협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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