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완전한 비극, 완벽한 예술을 꿈꾸는 그녀의 욕망

관리자
발행일 2011.05.03. 조회수 1112
스토리

완전한 비극, 완벽한 예술을 꿈꾸는 그녀의 욕망



고영민 회원·홍보팀 간사


여성의 완성은 섹슈얼리티?

<블랙스완 Black Swan>은 뉴욕 발레계를 배경으로 완벽한 성공을 꿈꾸는 '니나'라는 발레리나가  펼쳐내는 사이코 섹슈얼 스릴러(A wicked psycho sexual thriller) 영화다. 제작자 노트에 따르면 “브랙스완은 아찔한 관능, 파괴적인 매혹, 그리고 잔혹한 욕망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선사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대부분 찬사로 일관한다. 하지만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선호하고 지고지순한 비극 뒤에 남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감과 불괘함을 감추지 못할 수도 있다.

블랙스완은 에로티시즘에 포커스를 맞춘 탐미주의(aestheticism)에 가깝다. 탐미주의에서 지고지순한 미학을 찾는 것은 섹스하면서 주기도문이나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보다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요컨대 블랙스완은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와 같은 위험한 상상력, 치명적인 관능, 퇴폐적인 번뇌 등의 코드(code)에 질펀한 접속이 가능하다.

발레리나 니나는 백조의 우아함과 순결함만으로는 '백조의 호수'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 안의 흑조(black swan), 즉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깨워야 한다. 오랫동안 멘토(mentor) 역할을 해준 어머니는 흑조로 변신하기 위해서 오히려 제거해야할 방해물이 되어버렸다. 니나에게 섹슈얼리티는 추악하고 두려운 대상이자 주역(queen swan)을 쟁취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권력의 도구와 다름없다.

사실 블랙스완은 여성의 완성을 여성미, 섹슈얼리티로만 보고 있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김기덕 감독의 <나쁜남자>, <파란대문> 등의 작품처럼 페미니스트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을 염려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러한 비판은 일부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 듯하다.

영화 블랙스완 역시 다른 예술작품처럼 하나의 상징체계로 볼 필요가 있다. 상징이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대상(object)을 통해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볼 때, 블랙스완은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의 재해석을 통해 주어진 배역에 완벽함을 얻고자 하는 어느 예술가의 치열함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한 해석이라고 본다. 예술은 개인주의에 가깝고 개인주의는 각자 생각하는 절대성이 있기 마련이며, ‘니나’라는 발레리나가 간절히 원하는 절대성을 얻기 위해선 흑조의 치명적인 관능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거울, 또 다른 자아를 위한 침묵의 배려

<파이 Pi·1998>,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2000>, <더 레슬러 The Wrestler·2008> 등의 영화에서 자기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한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이미 평단으로부터 천재 감독으로 인정받은 독특한 스타일리스트다. 애로노프스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색 중 하나는 캐릭터의 심리상태(무의식)를 치밀하게 분석한다는 점이다. <더 레슬러>에서 주인공 미키 루크가 화려한 링과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느끼는 분열 증세를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마트의 통로를 지나가는 장면에서 절묘하게 묘사했다면 블랙스완에서는 한층 더 복합적으로 묘사된다.


▲ 예술가에게 거울은 또 다른 자아를 엿볼 수 있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블랙스완에서 꿈, 거울은 이드(id)와 에고(ego)의 자기분열을 묘사하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된다. 희고 깨끗한 순수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억제된 자아(백조·White Swan)가 거울 밖에 있다면 야만적인 사랑과 치명적인 변신을 꿈꾸는 또 다른 자아(Black Swan)는 거울 안에 있다. 하지만 백조와 흑조는 진짜와 가짜,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아닌 존재자(Seinde) 속에 이미 존재(Sein)하는 실체(Substance)가 아닐까? 그 실체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슈퍼에고(super ego), 이데아(idea)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느꼈어요. 완벽함을 느꼈어요"

영화 '블랙스완' 웹페이지(www.blackswan2011.co.kr)에는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 도발!”이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시선을 끈다. 니나가 공연 중 환각 상태에서 자기 배에 꽂은 유리조각으로 인해 붉은 선혈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녀는 완전한 흑조로 탈바꿈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았을까? 핏빛은 폭력의 이미지 보다는 여성의 완성에 이르렀다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피는 희생을 의미하며, 왕자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한 채 죽음을 택해야만 하는 존재의 슬픔을 내포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캐릭터를 보며 ‘미국판 니키타’라고 불리는 ‘Point of No Return(국내 개봉명 암호명 니나)’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심지어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니나 시몬(Nina Simone)’의 ‘Here Comes The Sun’과도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소울의 위대한 여사제’라고 불리는 니나 시몬의 음악에는 여성의 슬픔과 갈망이 모두 녹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은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발레리나에게는, 특히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완벽하게 연기해야 하는 니나에게는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슬픔과 고통은 발레리나에게 예술적 완벽함으로 대체되고, 쉽사리 맛볼 수 없는 궁극의 쾌락으로 전화(轉化)할 수 있다. ‘백조의 호수’ 공연 이후에 쓰러진 니나가 마치 오르가슴(orgasm)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던진 한마디는 이를 대변한다. 그것은 아마도 완벽한 무대를 펼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절대쾌감이며, 모든 발레리나들이 꿈꾸는 궁극의 경지일 것이다.

"I felt perfect, I was perfect!"


※ 이 글은 월간 경실련 3-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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