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민운동을 하는가?

관리자
발행일 2009.11.07. 조회수 686
칼럼

 


나는 왜 시민운동을 하는가?



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몹시 쑥스럽고 고통스럽다. 운동권(?)에 속한 삶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요새처럼 힘들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얼마쯤은 내게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정리될 만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고 많아졌다. 지난 1년을 일에서 벗어나 미국의 소도시에서 빈둥댔다. 팔자에 없는 미국생활 탓일까? 휴유증이 깊다. 만사가 귀찮고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하루 하루가 따분하고 영 개운하지 않다. 우울증이라고 자가 진단하고 세월이 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달라질까? 이런 넋두리가 싫어서 한사코 거절했던 것인데 기어이 잔머리를 굴리는 내가 싫다. 상상력이 고갈돼 감흥이 없다.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을 만한 그럴 듯한 이유나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치사한 욕심까지 나를 괴롭힌다. 가슴만 답답하고 목이 타들어 간다. 더더구나 내밀한 자기반성의 글도 아니고 20주년 기념행사 어디어디에 실릴 걸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뒤통수가 가렵다. 뻔히 다 아는 처지에 시민운동에 대해 썰을 풀면 또 얼마를 풀 수 있을 텐가. 피터지게 열심히 하는 운동가도 아니고 귀동냥했던 남들 다 아는 얘기 적당히 둘러대서 써먹고 며칠 못가서 다 잊어버리는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했던 기억이 없다.
 
낱말 퍼즐 맞추듯 자판기만 이것 눌렀다 저것 눌렀다 온갖 지랄을 다 부린다.  내게 원고 부탁한 것 잊고 연락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위정희 국장 전화부터 피한다. 술 먹으며 노는 자리에서는 제법 ‘이빨’이 먹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씨도 안 먹힐 것 같은데... 지역에서 운동하면서 느끼는 간단한 소회도 좋고 어떤 것도 무방하다는 이대영총장 말만 귓가에 윙윙거린다. 벌 받는 느낌이다.


공돌이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땐 확신이 넘쳤다. 아는 대로 말했고 해야 하는 일이면 고민 없이 했다.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힘은 충분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건강하지 않다. 걱정이 많아졌고 자기검열이라는 못된 버릇까지 생겼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 많다. 한계가 왔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앞날은 더 불투명하다. 울산 사는 창선이가 부럽다. 선수(?)로서의 삶을 끝내고 새 생활을 시작한다. 나도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만 둘 때는 같이 그만두자고 약속해놓고는...진짜 부럽다.


나는 왜 이 바닥에서 아직도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있기는 있는데 선명하지 않다. 갈수록 대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습관이 되었을까?
서당 개 3년의 풍월로 견디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다. 인터넷 검색하면 모르는 지식이 없는 세상에서 거꾸로 나는 더 무식해지고 있다. 관점이 중요하다고 애써 자위한다.
 
지역에서의 시민운동은 힘들다. 보통은 너무나 많은 일들을 너무나 적은 사람들이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도 보람도 있고 긍지는 넘쳐났다. 상황이 변했다. 자꾸 나쁜 쪽으로만 발전한다. 의무감 비슷한 느낌으로 돈 내고 시간 냈던 시민들이 많았던 시절이 아니다. 우리가 비틀거리고 전망을 상실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고 있다. 회비 한 푼 내지 않으면서 활동가들의 쌀 통 한 번 걱정하지 않으면서도 운동 씹는 데는 한 치도 주저하지 않는다. 동네가 달라졌다. 비판이든 비난이든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 요즘은 그도 없다. 무관심하고 뭘 해도 관심이 적다. 아무도 모르게 멍들고 골병들어 가고 있다. 힘이 부치고 지쳤다. 밑천이 떨어져 어디서 폼 잡기도 쉽지 않다.


광주도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조건반사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경실련 20년을 빗대 나를 본다. 비록 지난 시간이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아직 남았다. 흐릿하지만 남기는 남았다. 느낌이 있다. 한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또 이처럼 행복했던 시간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여린 게 싫어서 늘 대범하고 무심한 사람처럼 살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믿어주는 게 신기하다. 사람들이 다 떠난 것은 아니다.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시민운동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념적 스펙트럼도 폭이 아주 넓어지고 있다. 아직 현실에서 그 다양성이 모두 발현되지 않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점차 점차 차이가 커지고 있다. 운동의 사회적 책무가 커질수록 지역에서의 시민운동은 그만큼 더 괴롭다. 협소한 전문가의 논리와 기능주의의 포위망을 뚫고 대지를 아우르는 참 모습을 갖출 실력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괴감과 주눅을 털어내기 쉽지 않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아주 자주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 모르면서 했고 어떤 때는 알면서 했다. 적당히 구실이 생기면 타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현실을 핑계로 안주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더 잘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경실련에서 운동하는 것은 행복하다. 여럿이 함께 하는 꿈이 있고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많다. 내 몸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내 온 마음에 늘 차오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내일이 있다. 사람에 취해 하루 밤을 꼴딱 샐 수 있는 곳이 경실련이다. 지난 세월이 결코 쉽지도 않고 다시 힘내서 나아가기도 힘든 지금, 온갖 간난고초를 거뜬히 이겨내고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 속셈을 버리고 긴 안목을 갖고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증명할 수도 확증할 수 없는 큰 꿈을 위해 자기를 던지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 일하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운동가들이 있다. 이들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시민운동은 내 삶의 숙주다. 이 안에 있어야 내가 살고 행복해 질 수 있다. 다시 맘 속 불덩이에 뜨거운 기름을 부어야겠다.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이 자리를 아주 즐겁게 지킬 것이다. 잘 할 수는 없을지라도 끝까지 오래라도 해야겠다.


 


현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전 경실련 조직위원장
전 경실련 지역협의회 운영위원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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