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3)] 차등의결권 도입 추진, 재벌은 웃는다

관리자
발행일 2018.11.27. 조회수 1269
칼럼

[월간경실련 2018년 11,12월호]

차등의결권 도입 추진, 재벌은 웃는다


권오인 경제정책팀장


 
차등의결권은 보통주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1주당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결권의 차등은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견제를 약화시키고, 사익편취와 경영권 세습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하고, 황제경영과 경영권 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이어서 도입된다면 악용의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 ‘공정경제’를 하겠다던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에서 도입에 대해 ‘긍정적 검토’를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은산분리 훼손도 모자라 차등의결권까지 도입을 하겠다는 것은 재벌개혁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경영권 방어를 핑계로 한 재벌과 전경련의 숙원사업
 
차등의결권은 그간 전경련과 재벌들이 포이즌 필(poison pill, 적대적 M&A의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과 함께 끊임없이 도입 주장을 해오며, 정권에 로비를 해왔던 숙원사업이다. 경영권 방어수단을 통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도록 만든다는 이유에서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존재한다. 우선 ‘5% Rule’이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47조(주식등의 대량보유 등의 보고)와 150조(위반 주식등의 의결권행사 제한 등)에 따라 지분이 5%가 넘으면 금융감독당국에 대량보유신고를 통해 보유상황과 목적을 미리 밝혀야 하며, 이후 5일 동안 의결권 행사와 지분의 추가취득이 제한되어, 이 자체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자사주 제도도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5조(자기주식 취득 및 처분의 특례)에 따라 이익배당을 할 수 있는 한도 이내에서 자기주식을 취득하도록 되어있다. 이 외에도 초다수결의제, 백기사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도 있다. 그리고 재벌과 대기업들은 순환출자를 활용하여 방어하기도 한다. 결국 경영권 방어는 핑계에 불과하고, 재벌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세습의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주를 차별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우리 상법과도 배치된다.
 
벤처기업은 경영권 방어가 더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벤처기업들에게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화답하듯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벤처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8월 30일 발의하였다. 이 법률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이 총주주의 동의가 있는 경우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수가 1주마다 2개 이상 10개 이하인 차등의결권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의 경영권을 방어하도록 해 성장사다리를 만들어, 창업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비상장 벤처기업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지금도 존재한다. 즉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창업자의 경영권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핵심적 내용은 뒤로 숨기고, 마치 경영권 방어가 되지 않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부여는 재벌그룹의 새로운 경영권 세습 모델이 될 것
 
벤처기업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일정요건만 갖추면 누구든지 벤처사업가가 될 수 있다. 재벌가의 3세, 4세와 친인척들도 마찬가지 이다. 차등의결권이 도입 된다 면, 재벌그룹 후계 경영인들은 벤처사업가로 변신하여,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증자 등으로 기업가치를 크게 키운 다음에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를 지배하도록 만들어, 그룹전체를 세습할 수가 있다. 아울러 차별화된 의결권을 활용하여, 재벌 총수일가는 벤처기업에서도 황제경영을 펼쳐나갈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집단법제는 지주회사제도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일부 계열사들로만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고, 지주회사 밖의 계열사를 활용해 지주회사를 지배할 수도 있다. 아울러 기존 순환출자도 유지되고 있고,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산업자본)가 혼재해 있는 금산 복합구조이다. 따라서 재벌그룹 후계자들이 벤처기업을 통해 그룹의 핵심 지주격인 회사를 지배한다면, 세습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벤처기업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여러 가지 편법들도 등장할 수가 있다. 벤처기업 차등의결권이 활용되기 좋은 허점투성이의 기업집단체제인 것이다.
 
해외 추세는?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하는 측은 세계적 확산 추세라는 점을 언급한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오히려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폐지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비상장회사에 차등의결권이 허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의 연기금 캘퍼스의 경우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유지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원칙도 고려한 바가 있다. 아울러 캐나다의 경우 기관투자자 연합인(CCGG)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 재판소는 2002년부터 차등의결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황금주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최근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홍콩의 경우, 뉴욕이나 런던 증권거래소와 경쟁하고 있어, 알리바바와 샤오미가 거래소를 저울질 하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허용했다. 결국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혁신성장, 벤처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회와 유인을 제공해야
 
정부와 여당은 혁신성장, 벤처기업 활성화를 외치면서 핵심적 사항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없는 경제구조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처기업 등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와 혁신할 유인이 없다. 재벌들은 집중된 경제력을 활용하여 돈이 되는 것은 내부거래를 통해 다 가져가고 있고, 벤처 및 중소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기술을 개발해도 탈취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 성공한 확률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원인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벤처기업들의 기술개발 등을 통한 혁신성장을 위해 차등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를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고 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자, 최근에는 혁신성장을 강조하며, 규제완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공정경제 정책은 실종된 모양새이다. 진정 혁신성장을 한다면 기술탈취 등의 불공정행위가 판을 치지 못하게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 제도부터 도입하여, 공정경제를 통해 혁신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차등의결권 도입을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훼손 다음 작품으로 밀어 붙일 경우, 친재벌정권과 정당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은 재벌을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꿔 국민들을 웃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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