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대책은 '투기 시작 신호'

관리자
발행일 2005.09.02. 조회수 525
칼럼

2005년 8월31일 TV속에 등장한 경제부총리 입에서 나온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라는 발표가 왜 내 귀에는 '부동산투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들리는지 모르겠다.


금년 초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고 줄줄이 퇴진했던 경제수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참여정부 3기 경제수장들은 국민들 앞에서 투기억제에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대책들 가운데 내 눈에는 개발정책 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투기 반복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85% 국민이 요구했던 정책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건설하지 않은 아파트 선분양에 대해 완공 후 분양과 공공(영구)보유주택확대 등 근본 해결방향은 접어 두고, 국민을 속이기 위한 미봉책만 담아냈다.


지난 5년간 250만 채라는 단군 이래 최대물량을 공급했지만 투기세력이 300만 채를 사들여 집 없는 가구가 오히려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이런 분석은 하지 않고 물량만 확대하겠다니 개발오적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개발 오적이 환영할 대책


정부는 향후 5년간 수도권에 중대형 아파트 42만 가구 공급, 광역 공공개발과 도심 재개발지역 층고 제한 완화를 통한 고층 주택건설, 용적률 최고 350% 상향조정 등 개발오적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공공택지 내에서는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주택을 건설해 분양·임대하는 주택공영개발 방식을 확대하고 공공택지 내 25.7평 이하·초과 모두 원가연동제 방식으로 분양가 규제하고, 25.7평 초과에 대해서는 주택채권입찰제 도입하겠다는 것은 문패만 바꾼 정책에 불과하다.


또 채권매입 의무가 없는 25.7평 이하 전매제한을 강화해 수도권은 10년, 그 외 지역은 5년으로 연장하고 25.7평 이하 재당첨 금지기간도 수도권은 10년, 기타 지역은 5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하는데, 지난 수십 년 부동산투기로 돈을 번 투기꾼이 이 정도로 겁을 먹을지 의문이다.


2005년 8월말 대한민국의 하늘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15% 기득권층과 85% 국민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경제수장들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오적과 부동산투기조장세력의 부동산공화국임을 발표했을 뿐이다. 지난 26일 밤 이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대통령과 개발오적들에 눈에는 국민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부동산투기로 부풀어 오르는 거품을 빼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나는 부동산 대책 발표 전날 난생 처음 찜질방을 찾았다.


찜질방의 딱딱한 침상에 누워 앞으로 나올 정책들을 살펴봤다. 발표 당일에는 뭔가 새로운 정책이 나오길 막연히 기대했다. 85% 국민이 바라는 정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마지막 순간에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졌다. 그간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발언과는 정반대의 대책을 바라보며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들에게 '혹시나'를 기대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강남 수요를 잡기 위해 개발한다던 판교신도시의 잘못된 정책과 분양원가공개를 피하기 위해 도입한 원가연동제, 채권입찰제 등 공급자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을 유지하다가 34조원의 거품을 발생시킨 판교 신도시를 개발주체만 바꿔 그대로 추진하고 송파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발표는 부동산투기를 지속시키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송파 신도시 100조원 거품 만들 것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발표한 내용은 돈 없는 사람은 집사지 말고 전세자금 싸게 빌려 줄 테니 그냥 전세나 얻어 수준에 맞는 곳에 모여 살든지, 임대 건설 지원책은 고의 부도를 일삼는 건설업자를 위한 대책으로 보였다.


송파 신도시 건설 등으로 또 다시 100조원의 거품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발 이익에 대한 환수장치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 지난 3년간 매년 100조 원 거품을 조장해 놓고 겨우 세금으로 매년 1조원을 더 걷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 아니던가.


투기를 근절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집권 이후 10여 차례 강조했던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청와대 참모와 집권당의 실세들은 제도를 만들기도 전에 유예기간만을 생각하고 집권 말기에 또 바꾸겠다는 관료의 잔머리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8·31 정책은 개발 5적에, 개발 5적에 의한, 개발 5적을 위한 대책이다. 해방 후 60년간 개발오적에 의해 부동산정책은 좌지우지됐고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책도 마찬가지였음을 목격하게 됐다. 'X파일'과 대선자금 등 부패의 뒤편에 항상 등장하는 건설재벌과 '세금폭탄' 운운했던 언론, 돈에 눈이 먼 학자, 개발정책으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 군사독재 시절부터 전혀 변하지 않는 관료가 만들어 낸 걸작품에 대해 경제단체는 환영성명까지 발표하지 않았던가.


부동산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관심을 가지는 정책이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 이제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은 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민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이유


우리사회의 정치 분야는 그나마 일정 정도 민주화됐지만 경제 분야는 어떠한가? 경제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부동산투기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도 제2의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해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섰던 이유를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아들과 딸자식에게 자신이 부끄럽다. 촛불을 들고 또 다시 이 땅의 주인들인 시민들이 경제정의를 이루기 위해 직접 문제해결에 나설 때가 됐다. 부동산문제 해결과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경제민주화 운동을 이루기 위한 범국민 행동조직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


* 이 글은 9월2일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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