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이 지금 할 일은

관리자
발행일 2008.01.05. 조회수 448
칼럼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상지대 총장)


대선 후 시중에 떠도는 담론 중에 압권은 10년 만에 보수정당으로의 정권 반환의 1등 공신이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라는 우스개성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집권한 이른바 민주·개혁·평화·진보 세력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이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기대해 보자는 심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와 민생 살리기를 기치로 내건 ‘덜 한나라당적’ 신보수 세력의 총아인 이명박 당선자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꿩도 매도 다 놓친 참여정부-


선거 기간 내내 인물 검증과 도덕성 시비만 있을 뿐 정책대결이나 국가 비전에 대한 토론이 적었던 것도 정권 교체 심리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 요인이었다. 각종 개혁 구호와 공허한 수사들에 이미 피로한 국민심리의 반작용이 이와 같은 정권교체라는 선거 결과를 예정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후보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었거나 알고도 내년 4월의 총선에 목이 매어 모른 체한 결과이다. 제사(대선)보다 잿밥(총선)을 탐한 결과는 내년 4월이라고 뾰족한 성과를 낼 것 같지 않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으나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내세운 개혁 아젠다가 대부분 실패로 끝났거나 미완성 등외품으로 치부되었다. 이는 국민의 마음 속에 개혁진보세력은 무위무능하다는 등식으로 고착케 했다.


뒤늦게 이 정부가 한·미 관계의 복원과 북핵 문제의 국제적 공조, 그리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라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그 대가가 맨 나중에 실행해도 좋을까 말까 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타결함으로써 미국에 국익을 몽땅 내준 반대급부라는 사실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뭐니뭐니 해도 말만 앞세운 개혁조치들, 신호는 좌로 보내고 핸들은 오른쪽으로 돌린 경제시책들, 평등과 분배를 외치면서도 사회 양극화를 부채질한 성장·개발 위주의 정책들, 진보와 개혁을 금과옥조처럼 뇌까리면서도 중소기업보다는 재벌을, 노동자보다는 기업가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 노조를 더 편드는 시책들이 즐비했다. 난개발과 막개발 그리고 부실 졸속공사로 국토는 훼손되고 환경생태계는 파괴되었다.


개혁진보정권 치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다름 아닌 정권창출에 크게 기여했던 농업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참여정부의 실패와 무능이 비단 정권의 몰락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를 지지했던 민주·개혁·평화·진보 세력의 집단적인 동반추락으로 귀결된 것이다.


-뼈 깎는 반성 위에 신뢰 쌓길-


‘참여’의 반대말은 독선, 독주, 독재이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지난 5년간의 성적표는 총체적으로 보아 꿩도 매도 놓친 C 마이너스 또는 D학점이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평가이다.

첫째, 참여정부에 진정한 참여가 없었다.
둘째, 정부만 커지고 민생은 쭈그러들었다.
셋째, 경제성장률과 무역액 증대에는 서민소득향상과 일자리 창출이 없었다. 소위 ‘앙꼬’ 없는 붕어빵이다.
넷째, 경제발전에 따라 비정규직의 양산, 대졸자의 취업기회 축소, 재래시장 중소 상공인의 몰락, 환경생태계의 파괴, 각종 사회적 갈등의 증폭 등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사항이 산적했다. 다섯째, 백년대계의 교육정책은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공교육 붕괴, 사교육 천국, 입시지옥, 고쳤다 되물린 사학법 개정 등 갈팡질팡 우왕좌왕 오리무중이 되었다.

물러나는 정권에 더 이상 실정과 무능을 탓하여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참여는 적고 독선만 난무했으니 함량 미달자들의 도토리 키재기가 한심스럽다.


이제부터라도 민주·개혁·평화·진보 세력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물러날 지도자를 탓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뼈를 깎는 반성의 토대 위에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버리고 실사구시와 단계적 성취노선을 취해야 한다.

한 5년, 아니 10년은 갈지 모를 보수기득권 세력의 행보에 대해 독수리와 같은 천리안과 야수와 같은 참을성을 갖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사회건설이라는 의제를 놓지 않을 때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이 글은 경향신문(2007년 12월 28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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