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경실련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68
칼럼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경실련
                         


김동흔(전 경실련 협동사무총장) 
                 


 1989년 경실련 창립에 불교계의 재가(在家)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경실련 창립 당시 만연한  부동산투기로 인한 주택 값과 전세 값의 폭등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다. 부동산투기로 횡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폭등하는 전세 값을 감당하지 못해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자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회부조리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민들이 땀 흘려 일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고, 아파트 분양 추첨에 당선되면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버는 불로소득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부정의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문제 제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적 상황에서 경실련이 창립하였다.
 경실련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 경제성장과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이루는 민주복지 건설”을 창립목적으로 내세웠다. 당시 반독재․반체제를 내세우며 민중계급을 바탕으로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사회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인 정책적 대안을 통한 비폭력적인 운동방식으로 사회개혁을 이루겠다는 경실련의 운동방식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좌우 양편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경실련 창립은 그 동안 방치돼왔던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언론과 시민들로부터는 많은 호응을 받았다. 경실련의 창립으로 우리나라의 사회운동이 민중계급에 기초한 계급적 혁명운동에서, 정책 전문가와 일반시민이 결합하여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민운동으로 변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은 경실련에 참여하는 불교인 200여 명이 주축이 되어 1991년 7월 13일 창립했다. 경불련(經佛聯) 창립 당시, 불교계는 우리사회의 민주화 진행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87년 대선 때는 호국불교라는 미명 아래 전국의 큰 사찰에서 노태우 당선 기원법회를 경쟁적으로 개최하여,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에 불교계가 앞장서는 역사적으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중불교 운동진영은 군사독재체제에 대항하여 투쟁하였으나, 직선제 이후 민주화 이행국면에서 보수화된 불교 종단과 불자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별다른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불교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불자들의 민주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하였다. 경실련에 참여하는 불자(佛子)들이 중심이 되어 일반 불자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 불교시민운동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경불련을 창립하였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아픔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늘 함께 하십니다”라는 창립목적?가지고 경불련이 태동하였다. ‘경불련 창립의의’에는 경불련을 창립한 이유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있다.  “여러 계층 간의 갈등과 대결을 최소화하고 더불어 사는 참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경제적 우위에 있는 계층의 양심회복과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건전한 시민의식이 함양되어야합니다. 아울러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이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민주복지사회가 이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경실련의  사회적 역량을 높이고, 천만 신도와 함께 민족문화의 뿌리를 이루어 온 불교의 시민운동 활성화를 위하여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운동연합을 창립하고자 합니다”


 경실련이 추구하는 경제정의의 사회정의를 불교사상과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를 불교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사회와 생활에서 실천하는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 창립취지에 나타나있다. 경불련의 창립으로 불교사회운동 진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경불련은 그 동안 사회참여에 소극적이거나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불교계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와 불교 내부의 전근대적인 관행과 모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개혁을 촉구하는 행동을 전개하였다.
 경불련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경실련과 함께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 활동과 다른 하나는 불교계를 대표하여 시민사회와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불교 내부를 개혁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사회(理想社會)를 건설하고자 했다. 가난하거나 인권을 짓밟힌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慈悲)를 실천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불교는 생명존중과 생명을 보살피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하며, 동․식물은 물론 하늘과 땅, 바다를 구성하는 모든 만물이 평등하게 사는 화엄세계(華嚴世界)를 꿈꾼다.


 경불련은 불교시민사회를 대표하여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명선거실천시민단체협의회, 정의로운 사회실현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우리 쌀 지키기 운동 범국민대책위원회, 정치개혁국민운동 등의 시민사회연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불교권의 대사회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93년에는 불교시민사회단체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불교의 시민운동을 활성화시켰고, 실천승가회 등의 불교계 진보적 운동단체들을 포함한 18개 단체와 연대하여 전국불교운동연합을 결성하였다. 전국불교운동연합은 한국불교가 탈바꿈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94년 ‘개혁불사(改革佛事)’의 모태가 되었다. 94년 불교개혁의 성공으로 독재정권에 기생하며 반민주적인 모습을 보였던 불교계는 면모를 혁신하여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종교로 변화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한편으로 경불련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慈悲)를 실천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봉사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1993년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촌인 상계동과 미아동에 상설무료급식소 ‘자비의집’을 개소하였다. 95년에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향상을 위한 ‘외국인노동자마을’을 창립하였다. 96년 (사)이웃을 돕는 사람들을 창립하고 첫 사업으로 네팔에 ‘비하니바스티(아침을 여는 작은 마을)’을 설립하고 제3세계의 빈곤퇴치와 자활을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97년 IMF를 맞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직노숙자들을 응급구호하고 자활을 돕기 위해 서울의 서소문 공원에 ‘아침을 여는 집’을 건립하고 무료급식과 진료, 재활을 위한 취업 알선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서울 미아동과  용두동에 방과 후 학교인 ‘희망만들기 열린학교’를 개소하였다. 이러한 봉사활동은 그 동안 사찰 단위로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던 불교의 봉사활동을 지역과 사회전반, 나아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대시킨 것으로  자원봉사 자원을 활용하여 자비사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사회화(社會化)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실련 창립 20 주년이라니 세월이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창립 당시 상집위원으로 참여하여 2004년까지 조직위원장, 시민사업위원장, 협동사무총장을 맡으며 경실련과 경불련 활동을 동시에 수행했다. 젊음이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을 척박한 아스팔트 위에서 소리치고 뛰어다니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기뻐하며 동지들과 함께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왔다. 경실련을 두고 많은 평가들이 오간다. 그 중 가장 큰 비판이 “백화점식 운동”이고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에 새로운 시민운동의 영역을 개척하고 금융실명제를 쟁취하여 사회부패의 근본 원인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우리사회를 투명한 민주사회로 진입하게 한 기초를 닦은 역사적인 성과가 가려서는 안 된다. 또한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계층의 이해와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당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이러한 시민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종합적인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가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경실련이 부합하여 활동영역을 확대한 측면이 있다. 시민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경실련은 우리사회를 민주복지사회로 만들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다.
 
 지금 경실련을 비롯한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실련은 아직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시민운동단체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운동 어젠다(Agenda)를 찾아내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으며, 골목마다 들어서는  대형마트에 생계형 소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내쫓기고 있다. 약육강식의 천민자본주의와 경제부정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시대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경실련 창립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경실련 창립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울러 무궁한 전진을 기원한다.



<약력>
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운영위원장
현 몽골바양노르섬 호수살리기시민연대 추진위원장
   한국체험학습협의회 이사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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