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의 책보다 더 가치있는 경험, 경실련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39
칼럼

 


만 권의 책보다 더 가치있는 경험, 경실련



김상겸(전 경실련 정책위원장)



시민단체로서 경제정의실천연합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화과정에서 등장한 경실련은 그 명칭 그대로 경제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시민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분석하여 그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의 맏형으로 20년의 세월 동안 많은 활동을 해 왔다. 경실련 이전에 시민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실련이 결성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분야별로 많은 시민단체가 만들어졌고, 시민운동이 체계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의 경실련활동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지만, 시민운동의 그 순수한 열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경실련의 창립멤버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시민입법위원장을 하였고, 지난 대선 때는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경실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실련이 창립될 당시 필자는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인연을 맺으려고 했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누가 언급한 것처럼 인연이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하였는데, 필자 역시 우연한 기회에 경실련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여하였고, 이를 통하여 경실련에 가입하였다. 당시 경실련에는 사무총장으로 현 법제처장을 맡고 있는 이석연 변호사가 있었고, 시민입법위원장에는 숭실대 강경근 교수가 활동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지켜보았던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에 가입한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지 회원이었던 필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그냥 우연이었다. 당시 학회활동을 같이 하였던 강교수가 건강문제로 임기가 남은 시민입법위원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그 잔여임기 동안 시민입법위원장직을 대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 아닌 우연으로 ㎰坪攘汰?맡으면서 필자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시민입법위원회에 속하여 열심히 하지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대행의 딱지를 떼고 시민입법위원장으로 꽤 오랫동안 있었고, 2007년에는 정책위원장을 하면서 대선을 경험하였다.


경실련과 10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면서 필자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감시하면서 투명사회로 가기 위한 힘겨운 노력과 망국병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투기를 막아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경실련의 활동 속에서 필자는 ‘만권의 서적보다 더 가치 있는 경험’을 하였다. 또한 힘든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뛰어 다니는 상근자들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희망도 보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명암이 교차하는 것처럼, 필자가 활동하는 동안 경실련도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 참여정부가 들어설 즈음 몇몇 구성원들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로 인하여 내부적으로 갈등도 있었고 외부로부터는 시민단체가 정치권으로 가기 위한 정류장이란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경실련은 내부 윤리규정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또한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정책을 놓고 내부적으로 고심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재정적 어려움은 해소되지만 시민단체로서 활동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실련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하였고, 순수한 시민단체로서 남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민단체는 비정부조직이며,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고, 시민의 권익을 위하여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시민단체가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활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기부금도 선진국에 비하여 턱없이 적은 상황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구성원들의 무한한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필자는 그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활동하는 경실련을 보면서 때로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고, 때로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안정되던 사회는 금융위기로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가 초점이 된 사회변화 속에서 시민단체 역시 변화된 역할에 노선과 방향에 고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시민단체들이 자초한 측면이 많다. 지난 10년 간 시민단체의 활동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지만, 정치적 성향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정체성을 퇴색시킨 점도 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경실련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시민단체 본연의 자세로 활동하였다고 본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전면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다른 시민단체들에 비하여 관심을 덜 받은 것도 있다. 여기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경실련의 고민이 내재한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경실련이 순수한 시민단체로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 것 때문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활동의 범위나 방법도 바꾸어야 하겠지만, 비정부기구로 정부의 감시자 역할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이란 기본 방향은 유지해야 한다. 즉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면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활동하고, 정부정책의 비판자이며 감시자로서 태도를 견지해야만 한다. 또한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적 개선방안 등 대안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하여도 그동안 경실련이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던 부동산투기방지를 위한 활동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 그 외에 경실련의 갠오?알리기 위한 홈페이지의 활성화와 회원의 확보는 필수적인 활동이다. 어려움이 클수록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 경실련의 진정성을 알리고,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는 혜지를 가져야 한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초심을 잃지 않은 시민단체의 맏형으로서 경실련의 새로운 비상을 기대한다.


<약력>
전 경실련 정책위원장
   상임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시민입법위원장
   법제위원장
현 동국대 법학과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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