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다]‘조니 매드 독’, 존, 조셉 코니 그리고

관리자
발행일 2013.12.10. 조회수 1245
칼럼
정의정 국제팀 간사
ejeong@ccej.or.kr

2010 ‘조니 매드 독’

11월 3.jpg


르완다에서 ‘조니 매드 독(Johnny Mad Dog)’이라는 라이베리아 내전을 다룬 프랑스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무리의 무릎 꿇은 어른들에게 무표정으로 총을 난사하는 열댓 살 먹은 아이들. 이들의 복장은 희한하다. 웨딩드레스, 빨간색 여성용 가발,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패딩 등등…. 모두 희생자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몸집 작은 아이들이지만 행동만큼은 잔인한 군인이다. 
살기 위해, 승리 후의 그 무언가를 위해 그들은 마약에 취해 삶의 목적성을 잃은 눈을 지니더니, 곧 잔인한 군인이 되어갔다. 내전이 끝난 후 이들은 정부군의 편이 되어 허무함을 지닌 채 다시 삶을 이어간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무엇을 위한 죽음이었고, 희생이었는지 그리고 이 소년병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2007 존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가나에서 라이베리아 소년병 출신 동갑내기를 알고 지냈던 3년 전 그때로 돌아갔다. 그의 이름은 존(John). 라이베리아 난민캠프에 있던 그는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너무나 후회하고 있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전쟁이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에도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었다.

11월 1.jpg


캠프 안 사람들의 분노에 찬 표정, 그 속의 불안감이 나의 충격에 사실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의 16살 소년병 시절의 ‘일기’를 들었다. 그가 두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소년병이 되었던 16살 때, 난 그저 ‘god의 육아일기’에 빠진 16살 소녀였다. 존, 그가 내게 해줬던 그 이야기 전부를 난 사실이라 믿지 않는다. 아니 여전히 믿고 싶지가 않다. 중학교 학생이던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마을로 쳐들어왔다. 여동생 둘을 데리고 집으로 갔을 땐, 이미 집은 불타고 있었다. 그가 여동생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는 중 반군을 다시 마주쳤고 동생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그들 중 한명이 되어야 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를 순간이동이 가능하며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마술사라고 지칭했다. 정신이 없고 기분이 좋아지는 음료수를 계속해서 마셨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해쳤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너무나 후회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싸워야 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은 다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일 밤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자신을 본다는 존. 난민캠프에는 수천 명의 존이 살아가고 있었다.

2012 조셉 코니

11월 4.jpg


지난해, 페이스북에는 ‘KONY 2012: Invisible Children’이라는 동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동영상을 만든 Invisible Children이라는 단체는 미국의 한 학생이 2003년 우간다를 방문해 ‘조셉 코니(Joseph Kony)’가 이끄는 우간다 반군에게 다시 잡힐까 두려워 숨어다니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조셉 코니를 멈추겠다고 약속하며 생긴 단체이다. 

이 단체는 소년병으로 사라져간 보이지 않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동영상을 만들어 전 세계에 뿌렸다. 모든 사람이 조셉 코니에 대해 알고 미국이 그를 잡기 위해 행동을 취하고 국제전범재판소에 조셉 코니를 세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들로 인해 조셉 코니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조셉 코니는 국제적인 범죄자 리스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3만 명에 가까운 소년들을 저항군 활동에 투입하고 있다.

2013…

현재 나에게 ‘조니 매드 독’의 잔인한 군인이 되어야 하는 현실도, 존과 같은 소년병이었던 시절도, 조셉 코니와 같이 나를 위협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 중 하나가 내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라이베리아, 우간다와 같은 곳도 아니다. 또한 내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삶의 힘겨움은 나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책임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 이를 묵인하는 정치인과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비즈니스맨, 나아가 현재 아프리카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 더 나아가 과거 아프리카에 영향을 끼친 제국주의 국가들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눈과 귀를 막은 우리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전쟁의 아픔에서 울고 있을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그들이 묻고 있을 테니까. 지금도 뉴스를 켜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