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현산어보를 찾아서

관리자
발행일 2019.05.27. 조회수 3706
스토리

[월간경실련 2019년 5,6월호 - 문화산책]

현산어보를 찾아서


 

노건형 기획연대국장
infocore@ccej.or.kr


 



현산어보를 찾아서? 한 10여 년 전에 아버님이 암 투병을 하면서 형제들이 병 간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이 서울이라 저는 주로 주말 간병을 맡았는데 여동생이 시간이 잘 안가니까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렵고 두꺼운 책을 사서 한참도록 읽어야겠다며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 언뜻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현산어보? 뭐지? 옛날 국사시간에 정약전의 <자산어보>라는 책은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군요. 살펴보니 역시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해설한 책이 맞았습니다. 총 5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당시에는 4권까지만 나왔기에 4권을 전부 구입해서 읽어봤습니다.

저는 공대생 출신이라 문학이나 인문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향후에도 없을 예정입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시험에 나올까 봐 저자와 책 이름을 외운 것이지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 이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 제목을 보면서 우선 궁금했던 것이 “왜 자산어보가 아닌 현산어보일까”였습니다. 책을 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정약전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족들과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정약전이 유배를 간 흑산도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였으며 흑산도의 한자는 黑山이나 그 느낌이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기에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항상 玆山(자산)이라고 표현했답니다. 玆자가 검다는 뜻을 가질 때는 ‘자’가 아닌 ‘현’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네요.

제가 오늘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각종 상을 휩쓴 좋은 책이라서가 아닙니다. 저는 되도록 베스트셀러나 수상작품은 잘 안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읽고 좋아야지 남들이 판단한 책의 경우 읽고 후회한 적이 너무나 많았기때문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학생도 아니고 굳이 책을 통하여 지식을 쌓으려고 구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구입하였기에 그 목적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진짜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책을 금방 다 읽어 버릴까봐 조바심이 날 정도였습니다. 둘째로는 평범한 어류도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산해경>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본 적이 있는데, 조선시대의 책들은 어떤 것들을 소개할 때 반드시 중국의 책자를 인용합니다. ‘중국에서 정설이면 그것은 반드시 진리다!’라는 의식이 팽배했던 유교문화권 시대에서 정약전의 <현산어보>는 유배생활을 한 흑산도 주변의 어류, 조류, 해초류 등 정약전 본인이 직접 보고, 관찰, 필요시 해부까지 하면서 책을 완성하였으며 한술 더 떠 약재로 쓰는 방법과 조리 및 요리방법까지 적어놓은 실상은 ‘흑산도 서바이벌 안내서’였던 겁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이점은 작가(이태원)의 굉장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에 맞는 제목은 <현산어보를 찾아서>가 아닌 <현산어보, 사실이냐?>가 될 듯 싶습니다. 이 책의 서술형식은 우선 해당 어종에 대한 <현산어보> 내용을 설명한 뒤 작가가 20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사실인지 검증작업을 합니다. 작가 역시 정약전과 마찬가지로 주변 마을 주민 또는 섬 주민들의 면접과 인터뷰를 통해 사실을 검증하고, 사진 등의 기록물 형태로 책자에 소개합니다. 이 과정에서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 등으로 사실확인 작업에 꽤 애를 먹은 경험도 하게 됩니다. 200년 전에도 희귀 동물이었던 돌고래 비슷한 어종(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요)의 경우 확인 작업을 포기하려다 우연히 죽은 사체가 떠밀려 온 것을 보고, 마을 주민들을 통해 확인하기도 합니다. 정약전 시대의 어종 명칭이 현 시대와 달라, 모습, 형태, 습관 등을 관찰하며 유추하기도 하지요. 작가가 단순이 글을 옮기는데 치중한 것이 아닌 정약전의 최소 60% 정도의 노력을 하면서 책을 썼다고 판단되네요.

이 책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복어, 오징어, 숭어입니다. 복어의 경우 참복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매년 산란기에 한강에 올라올 때 왕명으로 먹지를 못하게 하였답니다. 매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복어를 먹고 죽었기에 왕이 명을 내렸다네요. 그런데도 왕명을 어기고 죽을 각오를 하고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고 합니다. 숭어는 정약전이 자신있게 말하기를 숭어알이 최고의 술안주라고 표현합니다. 오징어의 경우 작가(이태원)가 검증하는데 엄청난 고생을 합니다 흑산도에는 오징어가 잡히지를 않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갑오징어를 말하는 것이었답니다. 정약전이 살았던 당시에는 갑오징어를 오징어라고 불렀고 요즘 시대의 오징어는 꼴뚜기라고 불렀다네요.

사실 저는 5권은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병원생활 정리하면서 책이 유실이 됐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머릿속에서 한참 떠나 있다 우연히 기억이 다시 나는 책이었습니다. 책 소개를 하면서 내심 다시 한 번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읽어서 후회는 되지 않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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