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스탠리의 도시락'에 어떤 젓가락을 올려놓겠습니까?

관리자
발행일 2013.10.03. 조회수 652
칼럼



‘스탠리의 도시락’에 어떤 젓가락을 올려놓겠습니까?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에 담긴 상처와 희망의 만찬

정의정 국제팀 간사
ejeong@ccej.or.kr

 

스탠리의 도시락 3.jpg

 

 나는 ‘반 급식 세대’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급식이 생겼었고, 고등학생 때는 대기업에서 하는 학교 급식이 있었지만 맛이 없어서 도시락을 두 개나 싸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엄마의 도시락 편지이다. 유별나다면 유별날까, 매일 매일 한마디씩 도시락에 넣어주는 엄마의 도시락 편지를 열어보며 어쩔 땐 울컥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재빨리 편지를 감추고는 했다. 난 늘 반찬을 빼앗기는 쪽이었다. 젓가락만 들고 어슬렁어슬렁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반찬을 집어 먹는 녀석들이 어찌나 얄미웠던지…. 하지만 역시나 말 한마디 못하는 소심쟁이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다 보면, 자기 밥은 다 먹어놓고, 반찬만 계속 집어먹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지난 학창시절의 점심시간을 보는듯하다. 도시락에 담긴 엄마의 사랑과 그것을 나누어 먹는 혹은 빼앗아 먹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

 

“영화 첫 장면부터 스탠리의 얼굴엔 멍이 들어 있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말썽쟁이 스탠리가 자신을 부당하게 괴롭히는 선생님을 친구들과 함께 쫓아내고 자신의 꿈과 사랑을 알아가는 귀여운 성장영화이다. 대부분의 성장영화가 그렇듯 해피엔딩이지만 스탠리의 성장 안에는 결론적으로 미소 지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이 있다. 시선을 끌어들이는 스탠리의 표정, 절로 입가를 둥글게 만드는 친구들의 다양한 캐릭터. 이러한 스탠리와 친구들의 유쾌한 움직임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는 선생님들, 조카를 학대하는 삼촌, 이에 무심한 어른들이 눈에 보인다. 스탠리는 잘 씻지도 않고 책도 찢어져 있고 엉뚱하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창의력이 넘치는 아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이런 스탠리를 말썽꾸러기라 여기지만, 상냥한 로지 선생님만은 스탠리의 글짓기실력과 창의력을 알아본다. 스탠리는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친구들은 감자요리,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커리 등 크고 작은 도시락 통에 엄마의 정성이 담긴 점심을 싸온다. 스탠리의 한 친구는 집이 부유한지 핸드폰도 몰래 가지고 다니고, 매일 4단 도시락을 싸오기까지 한다. 스탠리는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대신 물로 고픈 배를 채운다. 도시락은 스탠리에게 ‘결핍’이다. 스탠리에게 없는 부모님, 사랑, 가정을 나타낸다. 이런 스탠리 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친구들은 스탠리와 도란도란 둘러앉아 아침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다. 스탠리에게 도시락은 없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반면, 스탠리와 친구들을 방해하는 못된 선생님이 있다. 항상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다른 선생님들의 도시락을 몰래 훔쳐 먹는 베르마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의 눈에 스탠리 친구의 4단 도시락이 들어오고 말았다. 얼마나 맛있는 도시락일지 베르마 선생님은 그 도시락을 먹을 생각에 들떠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피해 스탠리와 함께 도시락을 먹기 위해 학교 이곳저곳을 도망 다닌다. 화가 난 베르마 선생님은 도시락 없이 학교를 오지 말라며, 스탠리를 쫓아내고 아이들의 도시락을 차지하고 만다.

 

 도시락이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스탠리. 교복을 입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여러 학교 학생들이 연합해 만드는 뮤지컬 연습을 보게 된다. 끼가 많은 스탠리는 결국 학교 대표로 뮤지컬에 참가해 거짓된 이야기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 뮤지컬에 참가하느라 식당일을 돕지 못하는 스탠리는 삼촌에게 폭행을 당하고,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거든다. 삼촌은 식당을 운영하지만, 스탠리는 이제까지 도시락을 싸
가지 못했다. 삼촌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스탠리는 식당의 남은 음식으로 4단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베르마 선생님에게 전해준다. 스탠리가 싸온 스탠리의 도시락이다. 스탠리의 아픔, 용서가 담긴 화해의 도시락이다.

 

 스탠리의 도시락 1.jpg

 

 이 영화는 영화반 아이들이 학교에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하루에 5시간 이하, 2번의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찍었다고 밝히고 있다.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에게 영화 촬영이 노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린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까. 충격적인 사실은 심술보 베르마 선생님이 이 영화의 감독이고, 스탠리역의 어린 배우는 이 감독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탠리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선생님은 영어에 능숙한 젊은 선생님으로, 스탠리를 괴롭히는 베르마 선생님은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 많은 선생님으로 표현된 것이다. 캐릭터를 확실히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자칫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 영어에 미숙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될까 우려가 된다. 그리고 베르마 선생님에게는 어떤 사정
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동학대, 아동노동착취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활동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다. 사람들이 그러한 단체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탠리와 친구들의 귀여움에 깔깔 웃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동학대와 아동노동착취의 심각성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스탠리의 상처를 짧고 간결하게 표현해 아픔보다는 희망을 강조했지만, 스탠리를 괴롭히는 베르마 선생님과 삼촌, 뿐만 아니라 아이의 상처를 무심히 지나쳐가고 이를 방관하는 어른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아동학대 혹은 아동노동착취는 우리사회와 너무나 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도 아동학대, 특히 가족에 의한 아동학대는 종종 뉴스 사회면을 장식하고는 한다.
대학교 1,2학년 때, 성폭력피해청소년 쉼터에서 학습봉사를 했었다. 그 쉼터에 사는 아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어야할 대상으로부터 오랜 시간 성적인 학대를 받아 정서적인 문제 또는 신체적인 장애까지 생기기도 했다. 자신을 학대한 부모 혹은 친척을 피해 쉼터에 살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도 쉼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내가 지난 학창시절 때 친구들과 나눠 먹던 ‘도시락’이 나에겐 무엇이
었을까 생각하며 과거를 떠올려 볼 수 있고, 귀여운 스토리 속에서 아동학대와 아동노동착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자, 이제 젓가락을 들자. 당신의 젓가락은 내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젓가락인가. 그걸 맛있게 친구들과 나눠먹는 젓가락인가. 아니면, 함부로 남의 도시락을 휘젓는 젓가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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