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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기-행] 천 년의 도시, 백 년의 포구

[월간경실련 7,8월호][윤서기-행] 천 년의 도시, 백 년의 포구 - 경주시 감포항 - 최윤석 회원    2년 전 늦여름이었다. 모처럼 긴 휴가를 받아 동해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울산에서 출발해 강릉까지 가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시일이 다가올 때쯤 태풍 상륙 소식이 들려왔다. 요즘 가장 핫한 어떤 장성이 장갑차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바로 그때 그 태풍이었다. 그래도 별수 있나, 기왕에 정해진 휴가를 방구석에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대륙을 달렸는데 비바람이 대수냐, 무작정 울산행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욱여넣었다.  그러나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초속 7~10m 육박하는 바람이 앞길을 막았다. 그래도 첫날은 어찌어찌 겨우 달렸는데 다음 날이 문제였다. 새벽의 적막을 부숴버리며 장대비가 요란하게 내리고 있었다. 로비 처마 밑까지 사선으로 짓쳐 들어 온 굵은 물줄기에 맥없이 꺼져버리는 담뱃불을 망연히 바라보며 주행을 포기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게 된 곳이 감포항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곳, 더군다나 이동 수단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뭘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할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걸음을 뗀 지 얼마 안 가 나는 이 작은 항구에 매료되어 버렸다. 차라리 그 악천후가 요행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동의 제약은 오히려 두 발을 자유롭게 했다. 전체 일정을 고려해 더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고도(古都)의 이 뒤편을 언젠가 꼭 다시 찾아야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등대  금요일 오후, 이른 퇴근 후 쉬지 않고 네 시간여를 달려 감포항에 도착했다. 내해를 끌어안듯이 쭉 뻗어 있는 동방파제 끝으로 독특하게 생긴 하얀 등대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잘 찾아왔거니. 말은 저렇게 했어도 그때 지나갔던 동해의 항구가 어디 한두 개여야지.  아닌 게 아니라 감포항 답사는 등대에서 시작해서 등대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은 항구에, 암초 ...

발행일 2024.07.26.